알바는 계속 연장 중입니다.. 퇴직금 나오겄어요..
하는 일이 계속 연장 중이다..
두 달이 석 달 되고. 석 달이 다시 석 달 반.
석 달 반이 다시 넉 달 반.. 이 됐을 때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아이에게 돌아오려 했었다.(는 두 번째이고.. 나 좀 쉬고 싶다..)
그러나 앞날의 일정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 나 혼자 중간에 나온다는 게 참 그렇기도 하고.
옆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언니께 좀 죄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이 방학 끝자락에 방학숙제라도 챙겨 보내려면 1월 말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남겨놓고 나와야 했다.
정중히 거절한 다음 날.
또 다른 부장님이 자리에 오셔서 연장 못하는 이가 누구냐 물으며 사정을 물어오셨다.
나는 구질구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사정을 솔직히(일을 하며 아이 때문에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거 정말 싫어하늗데) 말씀드리며.
1월 말에 1주일은 아이 숙제라도 봐줘야 할 테고.
2월엔 다시 개학을 하지만. 보름 뒤에 또 봄방학이며. 2월 말엔 이사까지 나가야 한다고... 주저리주저리.
"그럼 안 되는 날이 언제 언제이신가요?"
"예?.. 그러니까.. 1월 말 1주일 정도와.. 2월에는 뭐.. 이사를 해야 하니까.. 이사하는 날과 다음날은 좀 정리도 하고 쉬어야 하니까.."
"그럼 딱 그 날짜 빼고 하시면 되지 않나요?"
(훅 들어오셔서 미처 도망을 못 쳤다..)
"아..... 예.. 그럼.. 그럴까요.."
음. 얼결에 연장을 하고. 하자마자. 또 심란하고. 이거 이렇게까지 배려해주시는데 딱 잘라 거절했다가 다음에 안 불러주면 어쩌나. 아이는 괜찮을까. 밥은 뭐 혼자서도 좀 챙겨 먹고(실은 점점 엉망이지만-과자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밥을 해놓고 나간다고 해봤자 한 그릇 음식 들이다..) 한다지만.
에라 모르겄다.
며 다시 연장.
일하는 언니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제는 좀 더 속내도 알게 되고.
내 시시콜콜한 얘기도 많아지고. 고민상담도 많아진 모양이다.
이미 지금 내 나이의 시간들을 보내고 지나온 언니들에게 터놓고 나면.
지금 내겐 한없이 심각한 아이의 학원문제나 적응기도. 예민해지는 딸아이의 사춘기도. 쉽게 술술 풀어지고 받아들이게 됐다.
다 지나간다. 별거 아니다.
집집마다 문제없는 집이 없고. 다정하기만 한 시부모도 없으며. 아이가 속을 썩이지 않았거나. 남편이 완벽한 집도 없었다.
다만 말을 안 하거나.
차마 입 밖으로 내놓을 수조차 없어 말을 못 한다뿐이지.
나처럼 술술 떠들어대는 정도면 그리 심각한 게 아니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맘 불편한 일을 내놓아도 그녀들의 인생의 내공 앞에. 그건 그저 '지나가는 일'일뿐이었다.
근데 어느 날 내가 좀 지나쳤다보다.
아니. 내가 좀 그런 성향이 있다는 알고 있었지만(어렴풋이. 정도랄까). 이 언니들이 너무 편하게 받아주셔서 그랬던 걸까.
한 날은 한 언니께 충고를 들었다.
"온수야. 너 속상한 거는 알겠는데 당장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걸 자꾸 생각하며 무한반복으로 걱정하지 말고. 얘기도 딱 한번 하고 머리에서 생각을 끊어. 그리고 일해. 그렇게 반복적으로 걱정하거나 화를 내봤자 지금 해결될 일이 아니잖니.."
아차. 싶었다.
편해진 언니께 내 고민들을. 혹은 열 받은 그 날의 어떤 사건들을(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의견 차이로 직원들과 좀 서운한 일이 생긴다.) 반복적으로 쏴대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실은.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생각해보니 그랬다)
그걸 알면서도. 속에서 불이 나면 그걸 어쩔 줄을 몰라하며 곁에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하며 반복하고 반복했던. 지긋지긋한 습관 같은 게 있었던 거다.
특히. 시댁문제가 그랬으리라.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 수많은 사건들에 가슴속 천불이 올라오면.
그걸 혼자 어쩌지를 못하고 아무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하소연을 하고. 욕을 하고. 화를 내고. 의견을 묻고. 속앓이를 하던.
아. 나 좀 지긋지긋했구나.
내 무한반복을 제일 잘 받아준 한 친구가 생각나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사과 문자를 보낼 뻔했다.
부끄러웠다.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구나.
애처럼 응석 부렸구나....
누군가에게 충고를 듣는다는 게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실은 마지막으로 충고를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기억도 안 날만큼 그건 참 간만의 경험이었고.
화끈거렸지만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줄 친한 친구가 오랫동안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언을 해주는 일도 망설임 끝에 용기를 엊어 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언니의 충고가 고마웠다.
불과 며칠 전에 나는. 누군가의 얘기를 그 언니에게 하며.
"좀 그렇지 않나요..? " 했었다.
"그럼 그 사람에게 얘기해줘 봐.. "하셨다.
"에이. 이제 다 성인인데 누가 누구한테 그런 얘길 해요..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요. 보통"
"온수야. 그래도 얘기를 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얘기를 해 줘야 맞지 않을까. 그걸 못 받아들이고 바뀌지 않는다면 그다음부턴 얘기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그 대화의 마지막에 나는.
"글쎄요... 저도 뭐 완전하지 못한 사람인데. 그런 얘기 할 자격이 있을까요.. "했었다.
근데. 내가 딱 저런 층고를 들으니.
이래저래 드는 생각도 많았고.
고쳐야지. 생각이 먼저 들고.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이젠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어 진심을 조금씩은 드러내 보기로 한다.
충고는 조금 더 있었다.
일을 하며 조율할 때도 그랬고.
아이가 새로운 영어학원에 적응을 잘 못해 속을 섞여 달래도 봤다가 화도 냈다가. 심지어 처음으로 딸아이 궁뎅이를 손바닥으로 세게 때리고 온 날에. "아이 키우는 거 넘 힘들어요. 저는 엄마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요.." 했다가 혼줄이 났다.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
우리가 일하는 이 곳에서 우리는 '갑을병정' 중에 '정' 정도 되는데. 내가 마치 을이나 병처럼 굴며 다른 직원에게 따져 물었던 날도 좀 놀림을 당했었다. 아무도 우리의 일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그저 보조적인 일을 하는 건데.
내가 '책임' 운운하며 부당하다 느낀 어떤 일을 거부했던 날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좀 오버했던 걸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한편. 아니 뭐. 그래도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건 또 뭐 있나 싶어.('정'은 따지지도 못하나요? 예? 나 입도 있고! 대가리도 있다고!)
언니 덕에 떨어진 내 자존감 물어내라고 눈을 흘기기도 했다.
(그 뒤로 시키는 건 다 한다. 이건 좀 경우에 맞지 않으니 직접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의 말 따위는 쑥 들어갔다. 어차피 내가 이 알바를 끝내고 들어간 뒤에 어느 누구도 '아. 그 알바는 정말 훌륭한 알바였어!' 할 가능성은 제로.
누군가 남겨진 자료에 올라간 내 이름을 보고. 아 참. 걔 일 이상하게 해놨네.. 해도 어쩔 수 없는 거고.
가장 중요한 건. 서로 부딪치는 일 없이 순조롭게 끝내 져야 그나마 좀 편안한 인상으로 남는다는 거다. 나도 안다고.)
그러고 보니 요즘 한 가지 가슴 절절히 느껴지는 부분은.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거쳐온 사람들에 대해 좀 더 배려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내가 직장을 다닐 때 가끔 마주쳤던 아르바이트생들에 한 마디라도 더 친절하게 얘기하였었을걸. 점심이라도 사주며 편안하게 대해줄걸.
지난번 알바를 할 때 혼자 뻘쭘히 잘 끼지 못하셨던 그 50대 중반의 알바 아저씨께 좀 더 살갑게 얘기를 걸걸.. 하는 후회들이다.
사근사근한 내 옆의 언니는 오다가다 만나게 되는-이제는 좀 익숙한- 직원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하시는 편인데.
"아. 점심은 맛있게 하셨어요?" 하며 웃으면. 고개만 끄덕거리고 지나가는 직원들에 크게 맘을 상해하시곤 했다.
그 상대방이 원래 무뚝뚝한 성격일 수도 있고. 살갑지 않은 성격이면 거기 맞추어 "아이고. 예예.. 맛난 거 드셨어요?" 하면서 답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나는 생각하는데.
그걸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라고까지 생각해 버리는 부분에선. 오.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시다니. 하며 좀 놀랐다.
우선은 내 성격이. 누군가에게. 싱긋 웃으며.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라는 말이 쉽게 내뱉어지는 살가운 성격이 아닌지라. 당연히 그런 인사는 건네지 않고. 내가 건네지 않으니 누군가의 살가운 인사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솔직히 지금처럼. 우리에게 큰 관심 없고. 일 시킬 게 있을 때만 와서 업무지시해주는 상황이 나쁘지 않은데.
똑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매우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몰랐었다.
알바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걸 기대한다는 말은 아니다.
음. 굳이 말하자면.
지시받은 일을 어렵게 시간 내에 끝내고 보고를 하러 갔을 때.
"아.. 정말 오늘 내로 다 끝내주셨네요. 수고하셨어요."라든가.
( 여기분들은 주로 "네~" 가 끝이다.)
"회식이 있는데 일 끝내고 같이 가시죠.." 하시길래
"아뇨 저희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했을 때. 그냥 휑 가는 게 아니라.
"아니. 그래도 같이 가시면 좋을 텐데.. "하는 빈말 한마디 정도랄까.
조곤조곤 따지고 들면 끝이 없고. 사람 참 치사스럽고 부끄러워지지만.
사람과 사람 간에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아. 나는 오늘도 내일의 출근을 위해.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산처럼 끓여놓고.
보온통 두 개를 식탁 위에 미리 챙겨 놓았다.
매일 아침마다 준비되는 두 개의 국통과 두 개의 햇반이 딸아이의 두 끼니다.
주말마다 빨래는 세 번, 네 번을 돌리고.
토요일은 대청소. 일요일은 장보기로 주말조차 후딱 이지만.
뭐 아직 괜찮다.
월급날엔 또 힘이 쑥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