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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Jan 30. 2017

저도 사봤습니다.등골브레이커.

라는 그 패딩.


 명절이 되면 차를 끌고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길을 나선다.

 며느리로서의 당연한 도리로 시댁에 가야 하는 의무가 있겠으나.

 그보다 솔직히는 동서와 조카를 만난다는 게 더 큰 이유가 되었다.

 

 신랑에게 단 한 명 있던 남동생(서방님)이 몇 년 전 돌아가신 뒤 덩그러니 남겨진 조카와 동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그다음 해에 바로 조카를 낳은 동서는 나보다 5살이 많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아무 생각이 없던 우리가 결혼한 지 4년 만에 우리 딸을 낳았으니 아랫동서가 낳은 조카가 딸보다 3살이 위다.

 

 시댁에 가는 길에 장사를 하는 동서를 대신해 동서의 친정에 들러 조카를 태우러 간다.

 이제 완전히 사춘기에 접어든 조카는 볼 때마다 키가 쑥 자라 이제 제법 처녀티가 나고 조금 까칠해졌지만. 그래도 일 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는 큰아빠, 큰엄마를 반기며 기꺼이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간다.

 이때가 아니면 보기 힘든 손녀딸을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시어머니가 안쓰럽다.

 돌아오지 못할 아들을 대신하여 조카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지만 사춘기 조카는 이내 자기 좋을 대로 컴퓨터를 켜고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말이 없다.

 오직 맛있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려는 듯 시어머니의 손이 바빠지고 한상 그득하게 조카가 좋아할 음식이 차려진다.

 

 

 명절 당일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그리고 그 윗대의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가 모셔진 절에 가 인사를 드리고.

 그 절 조금 다른 칸에 모셔진 서방님을 뵈고 온다.

 이쁜 딸을 끔찍이 사랑하던 서방님은 딸의 처연한 눈빛이 서운하실까..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고.

 너무 어린 딸의 충격이 두려워 장례식장에도 부르지 못했던 동서를 나는 이해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아빠에게 인사는 꼭 해야 한다며 억지로 조카를 부르게 했던 시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서방님의 영정 앞에 아이를 데려와 가슴 찢어지게 바라보던 가족 앞에서 아이는 휘청 쓰러졌다.

 

 

 절에 다녀와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동서와 시내 구경을 하겠다며 집을 나섰다.

 자영업을 하며 조그마한 가게를 하는 동서는 명절이나 주말이 없이 문을 열어야 했다.

 가게에 들러 안을 둘러보던 동서가 차나 한잔 하자며 나가자고 했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며 올 때마다 듣긴 했지만. 요즘엔 경기가 너무 안 좋은데 자영업자에게는 대출도 안 나오다며 이제는 완전 포기상태라 씁쓸히 웃었다.

 아침 일찍 가게에 나가 일을 보다 저녁 늦게 조카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아르바이트생을 두고 데리러 가는 일상.

 씩씩하게 장사를 하며 공부 잘하는 딸을 키워내는 동서는 조금 지쳐 보였다.



 서방님 돌아가시고 그 일 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일상이 넋 나간 동서에게 너무 잔인했지만.

 딸아이 보며 살아내고 견뎌온 그 시간을 누구에게 쉽게 하소연하거나 털어낼 수조차 없었으리라.

 너무 일찍 철이 든 조카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항상 공부 잘하고 얌전하던 조카는 작년에 심하게 사춘기를 앓았고. 동서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이제 중학생이 되어 엄마보다 키가 커진 조카의 맘속에 들어있을 그 허기진 구멍을 이 중년의 큰엄마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이내 가게를 열겠다고 돌아가는 동서와 헤어지며 인사를 하고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조카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룻밤을 더 자고 돌아오는 차에 시어머님이 싸주신 음식을 담고 짐을 실었다.

 조카의 과외시간을 핑계로 좀 일찍 나와 시내로 갔다.

 평소에는 서점에 들러 갖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사주었는데 이번엔 새로 생긴 백화점에 구경을 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 바글거리는 그곳에서 꼭 먹어보고 싶다던 식당에 예약을 하고 1시간을 기다려 식사를 했다.

 기다리는 시간 중에도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맛있어서 유명하다는 빵과 군것질거리를 사 먹고. 아이스커피도 한잔 마시며 싱글거리며 신이 나 했다.

 

 그 전날 절에서 추운 날씨에 코트하나 입고 바들거리던 생각이 나 아이를 데리고 패딩을 보러 갔다.

 요즘 중학생이 도대체 무슨 브랜드를 좋아하나 알 수가 없는 큰엄마는 어제저녁에 폭풍 검색을 해서 두 가지 브랜드를 찾아낸 터였다.

 전혀 생소한 브랜드였으나 어쨌든 요즘 아이들이 최고로 치는 브랜드라 했다.

 

 "큰엄마. 저 패딩 필요 없어요.. 입지도 않아요.."

 조카는 항상 내 제안에 필요 없단 말을 한다.

 그래도 잠바는 하나 있어야지 하며 억지로 끌고 매장에 갔더니.

 까칠한 중2 여학생은 조금 흥분된 모습으로 이 잠바 저 잠바 순순히 입어보고 빙글빙글 돌아준다.

 내가 보기엔 '김연아 패딩'으로 불린다는 긴 패딩이 좋아 보였지만. 그 옆에 좀 짧지만 엄청 두툼한 아저씨 패턴(내 눈에는 처음에 그렇게 보였는데 입혀보니 이쁘더라..)의 디자인을 골라냈다.

 그래. 이쁘다. 두툼하니 따뜻하겠다. 이걸로 하자!

 아이는 또 수줍게 '고맙습니다..'하는데 가슴이 시큰하다.

 

 한창 철없이 입고 싶은 옷을 사달라며 부모를 조를 나이이다.

 이유 없이 짜증을 내며 엄마와 싸우고 아빠한테 혼날 나이인데.

 선물을 하면서도 조심스럽고 안타깝고 대견하다.



 계산을 하다 보니 헉소리나는 가격대였지만. 뭐 어떤가.

 혹시 누구 앞에서 기가 좀 덜 죽고. 마음이 훈훈하고. 몸도 따뜻하게 추운 사춘기와 겨울을 잘 보낸다면 됐다.

 한창 그 나이에는 그놈의 '브랜드'옷 때문에 기죽을 일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이 큰엄마가 말이야. 요즘 알바를 좀 해서 돈이 좀 있거든.. 하며 으쓱해 보였는데.

 가격표 바라보던 신랑도 좀 흠칫 놀라는 눈치였지만.

 이 가슴 아픈 조카 앞에서 큰아빠는 항상 너그럽다.

 

 다행히 아직 브랜드를 모르는 우리 딸은 언니 패딩 이쁘다며 졸졸거리며 쫓아다닌다.

 이번 겨울에 패딩 하나 좋은 거 사보겠다며 열심히 돌아다닌 나로서도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이긴 했지만.

 그건 비싼 패딩이라기보다.

 조카가 나중에라도 시린 사춘기를 기억하다가.

 "그래도 그때 말이야.. 우리 큰엄마랑 큰아빠가 나를 참 이뻐하셔서 이쁜 잠바도 사주시고 그랬거든.. 그래서 따뜻했었어.. "하는 추억한 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그런 내 마음이다.

 내 딸이 어느 날 그 브랜드의 패딩을 소원하며 나를 조르면.

 말이 되는 가격이냐. 꺼지라. 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내 조카는 철없이 졸라댈 아빠가 없다.

 

 외가댁에 사는 조카를 문 앞에 내려주고. 가방을 챙겨주고. 용돈을 주고.

 내려올 때마다 챙겨주는 만화책 10권(나와 만화 취향이 비슷하다! 항상 내가 갖고 오는 책들에 기대를 잔뜩 해줘서 우리 집에 있던 내 애장판들이 서서히 조카의 방으로 옮겨지고 있는데. 뭐. 괜찮다. 이 책들이 조카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면야).

 잠바를 입히고.

 

 그래. 잘 들어가고. 공부 열심히 하고.

 사춘기 잘 넘겨줘서 고맙다.

 일 년에 몇 번 잠시 들려가는 큰엄마, 큰아빠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거나 하면.

 든든한 기둥 하나 정도는 되어줄게.

 서럽지 말고. 춥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가끔 보는 큰엄마 반겨줘서 고맙다.

 그리고.. 큰엄마 선물에 너무 머리 숙여 '고맙습니다' 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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