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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r 12. 2016

엄마모임 2

나는 또 쇼크상태.. 아 못살겠다 진짜.


 새 학기다.

 새 학기라는 것은 곧 엄마모임이 있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카톡방에 모임공지가 뜨고 날이 정해졌다.

 


 

 작년 이 동네에 이사와 첫 학기 시작쯤에도 엄마모임이 있었다.

 본격적인 엄마모임이 처음이라 그때도 무척 긴장을 했었다. 전학을 온 터라 아는 엄마는 아예 없었고, 다른 엄마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수다를 떠는데 멀뚱멀뚱 어색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반대표 엄마가 고맙게도 나를 챙겨주며 이것저것 알려주고 살갑게 굴어줘 너무 고마웠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 뻗어버렸는데 짧은 찰나라 한 엄마도 제대로 친해지진 못했다.

 

 

 며칠 뒤 반대표 엄마가 조심스레 전화가 왔다.

 첫 모임이라 꽤 긴장하고 있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애들끼리 친하기도 하니 잘 지내보자는 얘기였다.

 아. 은혜로운 분이구나.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학원 얘기가 나왔고 우리 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을 듣더니 당장 본인 아이 학원에 좋은 수업이 생겼다며 가보자고 했다. (그 아이를 미미라고 하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물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돌아온 아이에게 물어보니 좀 싫은 눈치였다. 이미 대형학원에 갔다가 보름 만에 나온 경험이 있어 금방 또 다른 학원을 알아보러 테스트를 받거나 하는 게 싫은 거였다

 미미엄마에게 전화를 해 애가 좀 그런가 봐요.. 했는데 양해를 구하더니 미미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그리곤 다짜고짜 우리 아이에게.

 -놀러 가는 거야. 온수야. 가서 학원 구경하고 수업받고 끝나면 아줌마가 빕스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눈치를 보던 아이는 미미와 놀 수도 있고 빕스도 먹을 수 있다니 좀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옷을 챙겨 입고 그 학원으로 향했고 테스트를 받고 또 얼결에 등록까지 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 둘을 데리고 빕스로 향하던 중, 갑작스레 시어머니가 올라오신다는 전화를 받고 맘이 분주해졌다.

 -정말 죄송한데.. 제가 집에 가서 좀 치우고 준비를 해야겠어요. 집도 엉망이고 한데 어머님이 오신다네요.

 -아이 뭐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고, 이따이따 오신다 하니 잠깐 들렸다 가세요~

-근데 그게.. 좀.. 죄송해요. 진짜.

 근데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버럭 화를 내시는 게 아닌가.

 아이들도 저렇게 기대하고 있고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는 건데 당신이란 엄마는 왜 애 기분은 생각도 안 하고 이런 식으로 구느냐. 는 거였다.

 O.O;;

 차 뒤편에 앉은 아이는 실망한 기색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시어머니 방문에 마음이 분주하던 와중에도 아 내가 잘못했구나. 오늘 나를 위해 이렇게 수고해주면서 학원까지 소개해주셨는데 이걸 어쩌나.. 내가 오히려 밥을 사는 입장인데 불구하고..

 그래도 역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달래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이나 맘이 너무 안 좋았다.

 


 

 미미엄마와는 항상 이런 식이였다.

 내가 항상 이 분의 뭔가를 건드려 화를 나게 했고 나는 그때마다 쩔쩔매며 사과를 하고 죄송스러웠다.

 근데 또 시간이 조금 흐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상냥하게 연락을 해왔고, 다시 만나고, 또 두 번에 한 번은 화를 내시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 은혜로운 미미 엄마가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미묘한 상황이 반복되고 나는 항상 죄인이고 잘못한 사람이거나 아이에게 무심한 엄마로 비판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암튼 그 만남을 반복하며 1년을 지냈고 다시 새로운 학기가 되어 또다시 엄마모임이 있는 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와 아이는 학원으로 나는 카페로 가는 길이였다. 미미는 요즘 잘 지내냐는 물음에 아이가 대답하길 미미가 전학을 간 것 같다는 것이다.

 어?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아이도 좀 이상하긴 한데 진짜로 새 학기 들어 미미를 학교에서 본 적이 없단다. 무슨 일이지.. 갑작스럽게 이사를 갔나.. 그래도 이사 가면서 얘기는 했을 텐데 참 의아했다.


 

 카페에 도착해 또 어색한 인사를 하고 이번에는 아무 말도 말고 가만히 앉아있어야지 다짐을 하며 묵묵히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어쩜 엄마들은 이리 아름다우신지.. 나는 상중하 중에서도 하였다. 대충 잠바에 운동화를 신고 온 엄마는 내가 또 유일했다. 아차차.

 마침 옆에 있는 엄마가 작년에 우리 반이셨다고 해서 슬쩍 미미엄마에 대해 여쭤봤는데. 대뜸 미미엄마랑 친하셨어요? 하신다.

 뭔가 있다. 이상한 기류가 느껴져 조심스레 더 여쭤보니.

 

 

 그분은 미미엄마와 1학년 때 같이 임원 엄마를 하셔서 반모임에 이것저것 챙길 때였는데, 맘고생을 많이 하셨었단다. 처음에는 본인이 문제가 있나 싶어 참고 참다가 한번 대판 싸우셨다는 거다. 그 뒤로 미미엄마가 본인을 이상한 여자로 없던 얘기까지 지어 소문을 내는 바람에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른 엄마들로부터 이 모든 사실을 듣고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는데.

 그 뒤로 슬슬 엄마들이 미미엄마를 피하게 되었단다. 미묘하지만 뭔가 모르게 서글서글한 웃음 뒤에 뒤통수를 치거나 본인의 뜻대로 휘두르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한 거였다.

 본인은 굉장히 귀족적인 사람이라는 뉘앙스로 상대방 남편의 직업과 연봉을 물어보곤 했단다.

 

  미미엄마가 점점 엄마들 사이에서 외면당하게 됐을 때 어쩐지 미미도 비슷한 일을 친구들 사이에서 겪고 있었단다.

 사실 우리 아이가 미미와 친했는데 언젠가 미미에게 가해자(왕따주동자)역할을 한 아이와 같이 지내며 방관을 했다며 비난한 적도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몇 시간을 죄송하다 얘기하고 아이를 혹독하게 야단쳤었다. (그 역시 모든 게 사실은 아니었다.. 아이를 믿지 못하며 혹독하게 야단을 친걸 아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진짜.)

 3학년 때 미미엄마가 미미담임과 엄청나게 싸웠었는데 그분이 다시 5학년 담임이 되어 결정적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 같다는 것.

 우리 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에 미미가 다녔었는데 그 학원 원장과 대판 싸워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는 것.

 동네 엄마들과 싸우고 학원 선생과 싸우고 담임과 싸우고 더 이상 이 동네에 있기가 뭐해서 떠났을 거라는 얘기였다.

 

 

 아. 정말 눈물이 줄줄 흐를 뻔했다.(저는 흥분을 하거나 화가 나면 눈물부터 나오는 망신스러운 시스템을 평생 지니고 있는 여자입니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한 게 아녔구나. 내가 다른 엄마들과 왕래가 없어 전혀 몰랐던 것이다.

 기존 엄마들이 슬슬 피하니 전학 온 엄마를 타깃으로 손을 내밀며 지냈다는데 내가 그 몇 번째 희생자(?)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나는 왜 이리 어수룩하고 바보 같을까.. 내가 좀 이상한데.. 했으면 이상한 게 맞는 건데, 그걸 믿지 못하고 나를 탓하며 1년 동안 맘고생만 실컷 했다.

 이 동네는 엄마들이 참 이상하구나. 아냐, 엄마들만의 룰이 있는데 내가 그걸 잘 몰라서 미미엄마를 화나게 하는 걸 거야.. 아 이 은혜로운 엄마에게 내가 무슨 나쁜 생각인가 하면서 질질 끌려다닌 거였다.

 집에 와 그 이상한 상황에 대해 얘기해봤자 신랑은 항상 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나를 단련시키려 들었다.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해 아이가 행여라도 손해를 볼까 봐 미미엄마라도 한 명 알았으면 잘 지내야지. 자꾸 쓸데없이 예민하게 군다면서.

 기가 막히고 화가 나는데 어디 하소연도 못하겠고 이따 들어올 신랑 한번 잡을 생각이다.

 왜 너는 마누라를 못 믿고 나를 이상한 여자 취급을 했냐고 말이다.

 


 

 엄마모임 나가기 전에 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슬슬 몸살 기운까지 있었는데 끝내고 들어오면서는 완전 맥이 풀리고 기가 막혀 몇 시간을 끙끙 앓으며 뻗어버렸다.

 내가 어수룩하고 잘 휘둘려서 우리 딸도 그렇게 살까 봐 진심 걱정이 된다.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하필이면 외모에 성격까지 나랑 판박이다.

 아. 정말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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