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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Apr 09. 2016

내시경이 불가능한 여자

명치에서 뭔가 자꾸 꿀렁거려요..


두 달 전부터 소화가 잘 안되고 잠자러 누우면 숨이 가쁘다.

 한 2주 전부터는 명치 쪽에 뭐가 꿀렁거리는 느낌이 든다.

 뭔가 확실한 존재의 꿀렁거림이라 이게 뭐지. 내장이 스스로 움직이나. 했는데.

 뭔가 '태동'하고 비슷한 느낌이다. 그 이상으로 '확실'한 꿀렁거림이 느껴지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수시로.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것저것 나와 있긴 한데 정확히는 원인을 잘 모르겠어서 좀 불안하다.


 


 나는 내시경이 불가능하다. 의사분들 보시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겠지만.

 3년 전에 처음으로 수면 내시경을 했었고. 뭐 별 얘기가 없어 별 이상이 없구나 하고 지나갔었다.

 2년 전에도 수면내시경을 하고 마취에서 막 깨어났을 때 의사 선생님이 나를 불러 의자에 앉히셨다.

 그때 내 팔을 부축하며 선생님께 데려가는 간호사분이 열심히 웃음을 참고 계셨는데.

 

 

 말씀인즉슨 내가 너무 강한 거부반응이 있어 내시경을 초기에 멈추고 진행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는  의사 선생님도 웃음을 참고 계신다. 나를 보며.

 웃는 거는 잘 모르겠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가 싶어 어질어질한 상태로 다시 물으니.

 뭔가 대단히 거부반응을 보여 진행을 못하고 멈추셨단 말씀을 반복.

 모니터를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

"아 작년에도 심한 거부반응으로 진행을 못했었네요."

 

 

 네? 작년에 그런 말씀 못 들었는데..

 아마 설명을 들었을 텐데 수면마취상태라 나중에 잊어버렸을 거라는 말씀이시다.

 수면마취는 일반 마취와 달라 그 상태에서 고통이나 거북함을 느끼긴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 자체가 없어진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수면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설명 듣고 좀 지나서 싹 잊어버렸단 얘기?

 어찌 됐든 나 같은 사람은 수면내시경이 불가능하니 내년에는 일반 내시경으로 진행하라고 하셨다.



 아. 나는 그 1박 2일의 데프콘처럼 수면상태에서 뭔가 이상한 행동을 했나 보다.

 연예인들은 돈 주고 일부러 맞는다는 프로포폴인가 뭔가 그걸로 마취한다고 들었는데. 나에게 그걸 놔주면 기분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흥분상태가 된다는 건가. 아. 연예인 안 했기 망정이지. 데프콘과 더불어 100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물로 유명세를 떨쳤겠구나.

 

 하지만 설명을 들은 기억도 없고 연달아 2년을 실패했다니 억울하기도 해서. CCTV라도 돌려 내 행동이 무엇인지 강력하게 확인하고 싶었으나 자꾸 웃음을 참고 나를 쳐다보는 그 선생님들께 차마 보여달라는 용기가 안나 얼른 나와버렸다.




 그리고 작년.

 일반 내시경을 신청해놓고 잔뜩 긴장한 채로 침대에 누웠었다.

 괜찮아. 의외로 일반 내시경이 견딜만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어.. 잘할 수 있어..

 

 

 

 "자 들어갑니다~ "

 그 뱀 같은 기구가 쑥 들어오는 순간.

 

 나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꺽꺽거리는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깊게 들어오는 그 무언가를 내가 정신없이 양손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러시면 안 돼요! 멈추세요! 식도가 다 찢어져요! 멈추시라고요!!!...."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식도가 찢어진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완전 패닉 상태.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제정신이었다면 식도가 찢어질까 무서워서라도 그 행동을 멈쳤겠지만 나를 말려대는 간호사분을 뿌리치며 기어이 다 뽑아내고 토하듯 기침을 해댔다.

 그건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하러 오는 사람의 머리를 물속으로 쳐 넣는 상황 같달까.

 그러니까 나를 구하러 왔으니 상대방의 머리를 잡아 물속에 넣으면 둘 다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서 공포에 질려 상식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는 그 상태.

 

 그러고 보니 지난번 치과에 갔었을 때도 마취가 잘 안되어서 의사 선생님이 한번 더 추가로 마취주사를 놔주시곤 했었다.

 마취주사를 놓으시고 좀 있다 올게요~ 하시곤 이제 마취가 됐겠지 하며 드드드득 거릴 때 내가 악! 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아. 마취가 잘 안되시네요.. 다시 놓아 드릴게요~ 하며 쿨하게 주사기를 꾹 누르셨다.

 나란 여자. 원래 마취가 잘 안 되는 체질인 건가.

 

 

 

 어찌 됐든 나는 태어나서 내시경이라고는 한 번도 못해봤다는 얘기.

 내 위가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40년 동안 확인을 한 번도 못해봤는데 지금 위인지 뭔지 내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꿀렁거리며 반응을 보이는 매우 불안한 상태라는 거다.

 내 친정아버지는 위암이셨었다. 5년이 지나 지금은 완치상태이시긴 하지만 내 친정 쪽으로 삼촌 한분, 고모 한분이 지금 암으로 투병 중이시다. 그러니까 가족력이 좀 걱정되는 유전자.

 

 

 아. 지금도 꿀렁꿀렁 태동마냥. 딱 태동마냥 심하게 움직이고 있다.

 동네 내과라도 가봐야 하나. 겁도 나고 귀찮다. 실은.




 

 이 와중에 패기 넘치는 신랑은 이 좋은 봄날에 가족을 버리고 동기들과 멀리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나 있다.

 동기들 보기 창피하다며 예쁜 새 빤쓰까지 장만해서.

 외박하면서 빤스까지 사는 남자.

 살수록 놀라운 이 남자.

 혹시 너무 재밌는 중이면 어떡하지.

 엄살이라도 좀 부려볼까 카톡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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