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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y 30. 2017

일이 들어왔어요!

근데.. 월급 더 달라고 딜을 했더니 그 뒤로 연락이..


 마루 소파에 앉아 어슬렁어슬렁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평소 같으면 잘 받지도 않을 전화였건만.

 요 며칠 전 하필 어버이날.

 엄마랑 대선후보 얘기를 하다 대판 싸운 뒤. 어색하게 맘을 풀어 사과를 드리며. 궁색 맞아 보이려고 돈이 없네 어쩌네(진짜 돈이 없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얘기를 한 뒤.

 돈 없다는 딸이 걱정되어 요 근래 자주 안부를 물어오는 엄마의 전화일 줄 알았다.

 

 "여보세요."

 

 뜻밖에 인력 관리하는 회사였다.

 내가 마지막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된 곳이었는데.

 그때 나를 담당했던 젊은 남자분이 너무 잘 생겨 깜짝 놀랄 정도의 외모였어서 인상이 매우 좋게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아. 물론 월급도 많이 주셨고.

 이번엔 어린 여자분이신 듯했는데.

 일을 혹시 하는 중이냐 물으시며 새로 들어온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오. 나 돈 없다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위치는 그럭저럭 괜찮고. 월급도 마지막 알바만큼은 챙겨준다 했다.

 일도 했던 일이고. 약간의 행정일이 보태진다고는 했지만.

 음. 근데 기간이 좀 길다.

 6월 중순 시작하면 12월까지 해야 하고. 그다음엔 연단위로 연장되는 계약직 일이었다.

 2시 이전에 답변을 드리겠다고 하고 우선 끊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필 돈이 궁해 머릿속이 돈. 돈. 돈..으로 굴러가는 이 시기에 일이 들어오다니.

 실은 궁리만 하고 있었지 뭐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집값이 막 뛴다길래.. 어. 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나 살 집이라도 하나 잡아둬야 하는 거 아냐.. 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엉뚱하게 임장(현장에 가서 집도 보고 주변도 살피고 부동산도 막 돌아다니는)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돈 없다는 딸에게 부동산학원(?)이라도 다니며 월세 받는 법을 터득해보란 엄마의 말이 영향을 미친 건 아니고.(엄마. 그러니까. 지금 돈이 없다고요. 돈이)

 그저 정말 이러다 다음 전세 만기 땐 영영 저 멀리 어디론가 쫓겨나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이라.

 그것도 장기간 쭉 다니는 일.

 뭐 일을 안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지난번 4개월 반의 알바를 끝내고 너무 후련해서 지금의 이 한량 생활을 감사히 즐기고 있던 터였다.

 아침마다 꼬박꼬박 출근하는 신랑을 볼 때마다.. 어이. 참 안됐군. 수고하시게.. 하며 이 생활을 지겨워말고 감사히 생각합시다 하며 열심히 빈둥거리고 있었달까.

 

 

 신랑에게 톡을 쳐보니.

 재빠르게 조건을 물어오고.

 뭐 한번 해보던가~ 하는 속내가 뻔히 드러나는 답변이 왔다.

 요 근래 돈 아껴 써라 잔소리를 해대며 긴축 살림에 들어갔더니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는지 짜증내는 횟수가 현저히 늘고 있는 저 중년의 남자.

 버는 돈의 10% 정도가 당신의 용돈으로 적절하겠소.. 했더니.

 어느 날엔가는 돈 못 번다고 무시하는 거냐며 또 엉뚱 발랄한 짜증을 내시길래.

 아니. 내가. 언제. 그랬냐고 따지다 웃음이 났었다.

 이어지는 전화통화에선 딸아이 걱정을 한 아름 쏟아내며.

 그럼 우리 돼지(딸) 밥과 간식은 누가 챙기냐 약간 흔들리는 척을 했지만.

 결론은 니 맘대로 해라.로.

 

 

 뜬금없이 언니에게 전화해선.

 일 들어왔는데 나 어떡해? 했더니.

 음.. 너 또 그 일 할 거 같은데... 한다.

 음.. 근데 너 목수일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도 하고.

 그래? 내가 왜 할 거 같은데? 했더니.

 내가 일 들어오면 계속하더란다.

 아. 그랬나.

 

 

 주절주절 어쩌고저쩌고 수다를 떨다.

 언니와 전화를 끊고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맘은 반반이었다.

 다시 아이가 걸리고.

 매일매일 일찍 출근하는 게 두렵고.

 게다가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것도 갑작스럽고.

 하지만 꼬박꼬박 달마다 여유돈이 생길 것이며.

 다시 뭔가 일을 한다는 거.

 이 나이에 다시 조직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반반의 맘으로 전화를 걸어 내가 냅다 던진 말은.

 

 "음. 제가 마지막 알바 때 30분 덜 일하고 깎인 금액이 그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번엔 정시에 가서 정시에 퇴근하고 20만 원 더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 회사마다 책정되는 금액이 다르겠지만."

 

 하며 엉뚱한 딜을.

 

 상냥한 젊은 여성분은 다시 협의를 해보겠다며 연락드릴게요~ 하고 끊었다.

 

 뭐 좋아.

 어차피 맘은 반반인데.

 20만 원 더 주면. 그걸로 출퇴근 옷 사 입고 함 나가보지 뭐. 하는.

 나 정말 정장은 다 갖다 버렸는데 옷은 어쩌나 싶기도 했고.

 20만 원씩 더 준다 해도 사실.

 예전 직장 연봉의 반도 안 되는 월급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연봉이 높으면 높은 만큼의 스트레스가 따르는 법이고.

 나는 높은 연봉보다 스트레스 안 받고 상쾌하게 일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결론이 당장 날 수도 있겠다 싶어 전화기만 쳐다보며 빙글빙글 돌다.

 괜한 긴장감이 들어 에너지를 정리하자 싶어 씻고 동네 카페로 나가버렸다.

 전화로 말은 그렇게 해놓고.

 어. 이러다가 진짜 올려주면서 하자 그러면 어떡하지..

 아냐. 영영 연락이 없을지도 몰라.. 그러곤 후회되면 어떡하지..

 이따위 생각을 하며 벌렁거리는 가슴을 좀 눌러보다가.

 역시.

 에라~  하는 맘으로 박차고 나와 맛난 반찬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녁 6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까지 연락은 없었다.

 이대로 영영 연락이 없을 수도 있고.

 이러다가 또 며칠 내에 갑작스레 "내일 어디 어디로 나오세요. 면접 있으세요." 할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내가 뭔가 적극적으로 손을 쭉 뻗어 진취적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이런 뜬금없는 전화에 화들짝 놀라며 일을 해오곤 했다.

 그러니까. 혼자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거다.

 아. 나는 친구도 거의 없고. 오로지 혼자 외톨이 생활을 하는 중인데.

 이런데도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되어 내게까지 들어오는 전화가 있다는 것은.

 무슨 계시일 거야.. 하며 굉장히 숭고한 알바 신의 부르심을 받은거마냥 깊게 고민에 빠지곤 한다.

 (목수의 신은 나를 버리신 겐가..)

 




 내가 최근에 읽은 책.

 

 <어떻게 월세 부자가 될 것인가>-전용은-

 <공방 예찬>-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 이승원-

 <우에무라 나오미의 모험 학교>-탐험가이자 산악인이 쓴 모험 얘기인데 의외로 꽤 흥미롭고 재밌었음-

 

 그리고 뭐니 뭐니 심란할 때 최고인 사노 요코의 책.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 그러니까.. 월세 부자 고민도 좀 했다가.

 목수가 들려주는 나무 얘기에 그래그래 나도 알겠어.. 무슨 말인지. 깊은 공감대.

 모험가의 얘기엔 또 에스키모인들은 날고기를 먹으며 진짜 짐승의 가죽과 털로 옷을 만드는구나.. 돈이 뭐가 필요하겠어.. 이런 극한의 세계에선 그저...

 

 

 그리고 마지막엔.

 그렇지. 남들 비위 맞추지 않고 나답게 살아야지 하며 요코 언니의 글에 깊은 끄덕거림을.

 

 

 

 그러니까.

 결론은.

 나도 모르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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