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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y 15. 2017

여자 목수

과연 가능할까요.


10주간의 일정이 어제로 모두 끝났다.

 

 나무의 기초부터 시작해서 각종 기구와 기계 다루는 방법들을 익히며 본인이 원하는 가구 하나를 완성해내는 수업이었다.

 그 10주 토, 일요일마다 꿈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저 나무라는. 목수라는. 같은 관심을 갖고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하는 일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른 여러 사람들과. 오로지 동기라는 이름으로.

 간섭해주고 감탄해주며 그 어떤 모임 보다도 빠르게 끈끈해졌다.

 

 

 오직 토, 일요일을 기다리며 나머지 월화수목금이 빠르게 지나가길 바랬다.

 기다리는 시간인 월화수목금엔.

 나무에 대한 책을 읽고. 공방을 찾아다니고.

 좋은 정보가 있을 땐 동기들과 단체방에서 공유했다.


저 위에 보이는 저 나무는 이미 기계대패로 다듬은 모습이고. 실은 훨씬 터프한 상태로 온다.
저걸 재단해서 테이블쏘로 자르고 사포로 다듬어 집성.
오일 바르려고 준비
 터프한 나무 다듬어서. 잘라서. 사포질하고. 집성해서. 저 상태로 말린다.  평잡을 때 힘들다.


곡선과 두께를 쳐냈는데. 대부분 손으로 했다. 암튼. 손으로 하는게 재밌었다. 나중엔 너무 힘들어 자동대패의 힘을 빌렸다.
다리와 상판 합체후 오일 바르기.
오일바르고 번들번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저 남자분은 .. 잘 모르는 분입니다..


 왼쪽 아래 살포시 놓아둔 저 테이블입니다... 가로 1400, 세로 800으로 생각보다 크다.

 상판 작업할 때 혼자 뒤집을 수조차 없이 무거워 그 부분이 스트레스였다.

 

 

 

 

 

 저 아이를 완성하기 전에 중간중간 두 번째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실은 저 상판이 혼자 컨트롤이 안되니까 짜증이 나서)

 나무도 좀 남길래.


마침 저 기다란 다리가 딱 떨어지게 4개가 나오길래.  저 장부를 기계로 할 수 있는데. 그걸 손으로 파내다가.. 두쌍 파내니 티가 다 땀으로 젖어 있길래. 나머지 두쌍은 기계로 따냈다.
역시 기계로 하면 깔끔하지만. 난 어쩐지 손으로 하는게 더 재밌다.
요래요래 남은 아이들을 두개씩 집성해서 싸이즈를 맞춘다음.
크기가 잘 맞는지 맞추면서 끌로 다듬는다.


각각의 아이들을 미친듯이 사포질한 다음 집성. 하면 저렇게 완성.. 은 아니고.  아직 오일 바르기 전.


 그리하여 드뎌.

 (거의) 완성된 두 아이.




 저리 단순해 보여도.

 그 중간 나무를 다듬고 재단하고. 깎고 사포질 하여. 집성하고 뚫고 맞추는 과정들이 어마어마하다.

 진정 그 힘든 순간들을 다 공유해보고 싶지만.

 사진도 워낙-보다시피-그저 그런 수준이고.

 그 중간중간에 더럽게 힘들어서 사진 찍을 생각 따위 아예 못하고 지나간 순간들이 많았다.

 그나마. 아차~할 때마다 조금씩 사진을 찍어두었고.

 그걸 연결하니 겨우겨우 스토리가 보여 다행이다.




 너무 행복했고.

 가슴 뜨겁던 10주였다.

 

 가구에 관심도 별로 없었고.

 누가 좋은 가구를 자랑해도 알아보지조차 못했던 내가.

 오로지 손으로 나무를 다루며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탄생시킨 내 가구.

 애틋하고. 뿌듯하다.

 어설프지만 자랑스럽다.




 우드플래닛이라는 나무 관련 잡지가 있는데.

 이번호에 '여자 목수'(!!!)를 특집기사로 냈길래 사서 보았더니. (게다가 12명!)

 아. 내가 10주 동안 고민하며 고민했던 많은 부분들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과연 여자 목수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들은 어디서 나무를 배웠을까.

 어디서 무얼 만들고 있나.

 밥벌이는 되는 것인가.

 어떤 과정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걸 만들고 있을까.

 여자 목수가 혼자서 작업할 수 있을까.

 등등..



 오..  나의 고민에 답을 내려주시는....

 이것은 혹시.

 나를 이끄는.

 뭔가 운명적인...?

 (나는 항상 꼭 이것이 운명적인 게 아닐까 하며 혼자 짜맞춤을 억지로 열심히 해보곤 한다.)




 이번 주부터는 당장 수업이 없다는 허탈감.

 기다림의 설렘이 사라진 오늘.

 여느 월요일처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고.

 라면을 거하게 끓여먹고.

 그래도 맘이 허전해.

 저 잡지를 품에 안고 카페에 가서 달달한 커피를 홀짝거리며 보고 또 봤다.

 동네 근방에 가구공방이 있었다는 게 새삼 기억나 갑자기 또 버스 타고 달려가 기웃거리며 구경도 하고 왔다.

 가구를 만져보고. 조심스럽게 어디서 배우신건가 목수분께 말도 붙여보고.

 젊은 남자목수 두 분이 분주히 작업을 하고 계셨는데.

 그들이 부러웠다.


 손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근질거리고.

 기계는 아직도 무섭고.

 끌에 손을 깊게 베어 피가 뚝뚝 떨어지며 욱신거릴 땐 또 의기소침해지다가.

 웽~하며 돌아가는 기계음이 상쾌하기도 하고.

 사포질 끝내 말끔해진 가구들을 슥슥 다듬을 때.

 그 순간들의 쾌감. 뿌듯함.

 온몸에서 흐르는 땀의 상쾌함.

 욱신거리는 어깨. 팔. 손가락 마디마디.

 그래도 또 기다려지던 주말의 시간들.



  아. 모르겠다.

  미치게 재밌는데.

  어느 쪽으로 발을 옮겨야 하는 건지.


  내가 과연 정말 목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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