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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Jul 16. 2017

드디어 가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손이 근질근질합니다.. 

 내내 장마가 계속되었다가 지난 목요일쯤이었던가.

 오후 잠깐 비가 그치더니 해도 잠깐 보이는 듯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소강상태라 금요일까지는 비가 잠깐 멈출 거라 했다.

 빨래나 한번 더 돌려볼까 하다.

 아냐. 가구들을 데리고 올까. 하고 정신이 퍼뜩.

 

 지지난주 마지막 제작을 끝마치면서 원칙상으론 만든 가구들과 공구, 남은 나무들을 집으로 가져와야 했지만.

 이미 시작되어 버린 장마 덕분에 용달차를 불러 걔들을 실어 올 수가 없었다.

 공방 선생님께 장마 끝나면 얘들 데리러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간단히 인사만 드리고 나온 터였다.

 

 어차피 비가 너무 오니 달리 의욕도 없고.

 원래 별 할 일도 없는 입장이라.

 간만에 공방 갈 핑계가 생겨 맘에 생기가 돌았다.

 

 선생님. 오늘 가구 데리러 가려는데 아시는 용달차 있으실까나요..

 카톡을 치니.

 한 시간쯤 뒤에 용달차가 도착할 거라는 답변이 왔다.

 어. 어.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막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자기 두고 어딜 나가냐며 짜증을 부렸다.

 

 "엄마 오늘 가구 데리러 간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정말?을 연발하며 딸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신나 하며 설렌 얼굴이다.

 어. 그러니까 간식 니가 챙겨 먹어~ 하고 얼른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아. 얼마 만에 하는 '신나는' 외출인가.

 공방 선생님들은 여전하시겠지.

 동기들 생각도 나고. 손도 근질거렸다.

 급한 마음에 잡아탄 택시 창문 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쏟아졌다.

 

 도착한 공방은 똑같은 모습이다.

 평일 전문가반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 중이고.

 반가운 선생님들, 스텝분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한두 번 마주친 잘 모르는 학생들의 얼굴도 괜히 반갑다.

 나와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 그냥 그 한 가지로 다들 통하고 친근해진 사람들.

 

 

 가져가기 전에 사진부터 찍자는 선생님 말씀에 어줍잖은 작품들을 흰 종이 위에 올려놓고 조명도 팡팡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나중에 보내주시겠다고 하신다.

 나도 옆에서 핸드폰으로 열심히 찍어봤는데 영 어설픈 사진발.


2인용 식탁.세 식구인데 2인용 식탁.


 그래도 솔직히 마냥 좋았다.

 어느 한 부분 내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는 오롯이 내가 손으로 만들어 낸 내 가구들.

 때 빼고 광내서 이제 정말 집으로 데리고 가는구나 가슴이 벅차오를 지경.

 

 마침 용달 기사님이 막 도착하셨단 소식을 듣고 남은 나무와 공구를 챙겨 내려가 보니.

 이미 선생님과 스텝 선생님께서 가구를 옮겨 트럭에 실어주고 계셨다.

 처음 뵙는 어느 남자(아마도 배우는 분 중에 한 분 같으신데) 분도 트럭에 휙 뛰어 올라가 가구가 흠집이 나지 않도록 줄을 세심하게 감아 당겨주고 계셨다.

 일반 가구와 달리 줄에 너무 힘을 주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마음 써 주시는 공방 분들께 맘이 뭉클했다.

 

 가구를 다 싣고 인사를 드리는데 맘이 헛헛하달까.

 영영 못 볼 것도 아니고. 맘만 먹으면 다시 와서 작업하면 될 텐데.

 우선 짐 다 싣고 떠난다 생각을 하니 괜히 그랬었나 보다.

 

 공방 대빵 선생님이신 마이스터는 위에서 수업 중이시라 미처 인사를 드리진 못했다.

 수업 끝나는 마지막 날.

 가구 옆에 서서 동기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품평회 할 때.

 대빵 선생님이 나보고 그러셨다.

 10년 공방을 하면서 기계 말고 손으로 작업하는 거에 가장 애착을 보인 학생이었다고.

 이 분은 앞으로도 이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가뜩이나 범상치 않은 외모에 묘한 기운을 풍기시는 분인데.

 허. 마치 나 우주의 계시를 받은 거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사진 찍어주시고 짐 실어주신 선생님이 대빵 다음이신 선생님이신데.

 이 분도 조직생활 십몇년을 하시다 관두시고 이 공방에서 수업을 들으신 뒤에 여기 선생님이 되신 분이다.

 내가 처음 내 소개를 하며.

 직장생활 십몇 년 하다 관두고 저 좋아하는 일 찾아 여기 왔습니다.. 했더랬는데.

 그 부분이 어쩌면 본인의 입장과 비슷하게 느껴지셨던 건지. (사실 많은 이들이 하던 일을 접고 여기에 온다..)

 수업 내내 열정적인 가르침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공방의 살림을 도맡아 하시는 터프한 여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항상 열정적으로 작업을 도와주셨던 여러 스텝분들과도 인사를 했다.

 

 날씨 시원해지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두 손을 배꼽에 대고 공손히 머리 숙여 진심으로.




 용달차에 몸을 싣고 섭섭한 맘으로 길을 나서는데 옆에 타신 기사님이 말을 걸어오셨다.

 어떤 수업을 들었느냐. 기간은 얼마간이고 수업료는 구체적으로 얼마이냐. 등을 물어오시며.

 이 곳에 자주 와서 가구를 옮기곤 했다고 하셨다.

 원래는 이삿짐센터에서 일을 하시다가 너무 힘이 들어 요즘은 원룸같이 작은 규모의 이삿짐만 하신다고 했다.

 햇빛에 검게 그을린 얼굴과 마르고 다부진 몸이 한눈에 고된 노동을 하시는 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하시는 반전의 말씀!


 소리를 하신단다.

 젊은 시절엔 그게 그냥 그랬는데 나이 들어 소리가 좋아져 오랜 시간 동안 취미로 해오셨다고 하셨다.

 자주 가는 술집 사장님이 본인이 소리하는 걸 아시고선. 

 술집에서 한 번씩 소리하는 걸 들려달라 해서 그리 하셨더란다.

 어느 날엔가 그 소리를 듣던 누군가가 연락처를 물어오셨는데.

 트럭 하는 사람이니 트럭 명함을 드리고선 잊어버렸는데 어느 날엔가 전화가 와선 부모님 팔순잔치에 와서 소리를 들려달라고 하셨단다.

 가서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을 해드렸는데 어찌나들 좋아하시는지 그 맛에 무대에 오르는 거구나 느끼셨다고.

 

 장구도 2년째 배우고 있는데 그것도 너무 재밌고.

 

 요즘엔 자이브(그러니까 그 자이브. 그 열정의 댄스. 자이브)를 배우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으시단다.

 워낙에 사교댄스를 오래 해오셨던 터라 별 무리없이 배우고 계시다고 하시는데.

 

 허허허허허.

 이쯤 되면. 이 오빠의 정체가 참 궁금해지는데. 암튼 서로를 더 알아갈 시간은 없고.

 서로의 취미와 재미났었던 일, 그리고 그 일이 돈으로 잘 연결이 안 되더라.. 그래도 삶에 재밌는 일은 참 중요하다는 의견에 깊은 공감의 꽹과리를 쳐드렸다.



 조심조심 가구를 내려 자이브기사님과 힘을 합쳐 끙끙거리며 가구를 집에 들여놨다.

 오히려 내가 탕탕거리며 터프하게 움직이려 하자 이런 가구는 작품 이잖아요.. 하시며 조심스레 다뤄주시는데 무지 쑥스러웠다.

 땀 뻘뻘 흘리며 수고하신 기사님께 비용을 드리고 차가운 물 한잔과 간식거리를 드리며 꾸벅꾸벅 여러 번 인사를 드렸다.

 나중에 내가 가구 많이 옮길 일이 생기면(그러면 정말 좋겠지요) 꼭 기사님께 전화를 드리겠다고 다짐을 했다.


크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 사실이나.. 이건 정말 너무 크다.. 마루에 침대롤 놓은 느낌이랄까. 헛웃음이 나올 지경.
딱 저 자리
가져온 그날부터 딸이 저기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지 전용 탁자라며 매우 흡족해 하는데 뭘 흘릴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와 가구를 닦고 옮기며 자리를 잡았다.

 너무너무 좋다며 방방 뛰는 딸아이의 흥분된 목소리에 나도 같이 기분이 흡족했다.

 아. 드디어 집에 왔구나. 내 가구들이.

 

 

 순식간에 3개의 가구가 늘어난 집은 예전과 왠지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항상 미니멀리스트를 외치며 최소한의 것들로 살겠노라 외쳐왔건만.

 어쩌겠는가.

 당분간은 미니멀리스트는 망했다.

 더 많은 가구를 만들어 집안 여기저기 두고 싶어 진다.

 부엌 한쪽과 현관 근처에 둘 스툴도 한두 개 만들어보고 싶고.

 소파 옆에 미니 사이드 탁자도 만들고 싶다.(신랑 요구사항이었으나 완전 무시당함)

 아이는 나무로 된 연필꽂이를 갖고 싶다고 하고.

 친정엄마도 넌지시 마루탁자가 필요하다고 하셨었다.

 

 집에 남아도는 게 의자인데 제대로 된 의자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고.

 항상 여기저기 어질러놓는 딸아이 방에 수납장도 넣어주고 싶고.

 참. 침대 옆에 협탁도 하나 해달라고 했었다.(요건 딸아이 요구사항이었으나 역시 무시됨)

 나무로 된 아기 장난감도 만들어보고 싶으나 줄 사람은 없고.(어린 조카들이 멀리 가버려서리)

 

 머릿속으로 계속 구상만 하고 있다.

 손이 근질거린다.

 나무도 없고. 기계도 없고.

 소품 만든다고 조각도와 끌로 깎아봤더니 톱밥 날리고 시끄럽고 난리도 아니다.

 작업을 하려면 작업실에 가야 한다.

 

 날이 더워 멈추고는 있는데.

 어느 날 또 훌쩍. 공방으로 달려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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