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수 Aug 17. 2017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 준비를 합니다.


 내가 종일 하는 일에 돈을 매겨 본다.

 지금 하고 있는 살림 하나하나에 굳이 임의로라도 가치를 챙겨가며 내가 오늘 얼마를 벌었는지 계산해보는 것이다.

 

 다림질을 하면

 한 장 다리면 3000원, 두장 다리면 6000원, 세장 다리면 9000원... 네 장 정도 다리면 한계점이다. 워낙에 다림질은 별로 즐기지 않는 살림 쪽이나 그래도 내가 안 다려주면 시위라도 하듯 그 바쁜 아침 출근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다려대는 신랑을 배려해 가끔 다리고 생색을 낸다.

 내가 오늘 다림질했다!

 오. 웬일이고. 하며 굽신거리는 신랑을 보려고.

 그러니까 주말에 미리미리 다려놓으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은근슬쩍 넘어가 버릴 때가 더 많고 가끔은 쭈그리고 앉아 연달아 다려둘 때도 있다.

 

 커피를 마신다.

 냉커피 한잔에 3200원, 두 잔째는 6400원, 세잔 9600원.. 거진 세잔이나 네 잔 정도.

 커피는 지가 마셔놓고 왜 돈을 매기냐고 한다면.

 어쨌든 나가서 사 먹으면 저 정도 비용인데 집에서 알아서 해 먹었으니 내 맘대로-어차피 내 맘대로 하는 짓이다-매겨둔다.

 

 아이 밥을 차려준다.

 아침 백반 4000원(한 그릇 음식이니 비싸게 못 치겠다), 점심 스파게티 8000원(간 소고기까지 볶아 넣었다), 저녁은 바지락 칼국수 특식이니 6000원. 간식 한번 2000원, 자몽에이드 1500원.

 

 아침에 청소기 돌리면서 20분, 빨래 돌리고 널면서 15분.

 수건 삶으면서 지키고 서있던 시간 15분.

 온 집안 걸레질 40분.

 아이방 정리 5분.

 화장실 청소 40분.

 총 135분.

 2.25시간.

 요즘 반나절 가사도우미분들이 받는 돈이 최고 5만 원이라고 한다.

 2시간 넘겼으니까 25000원.

 분리수거도 했고 음식쓰레기도 버렸으니까 시간 초과된 걸로 해서 5000원 추가.

 

 그렇다면 최종 계산.

 73,100원.

 괜찮은데.

 일찍 퇴근한 신랑에게 내가 오늘 번 돈을 자랑하며 생색을 낸다.

 이거 얼마, 저거 얼마 해서 내가 오늘 총 73,100원을 벌었고 결론적으로 그건 당신 돈을 그만큼 아껴준 거라고.



 컥. 하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안쓰럽게 나를 쳐다본다.

 "오늘도 연락 없었나.....?!"




 8월 초에 이력서를 한 군데 넣었었다.

 퇴직 후 최초로 내가 일해보고 싶은 회사가 생겨서였다.

 마지막으로 저장해두었던 이력서와 자소서를 참고해보려 열었더니 손발이 오그라들어 도저히 그대로는 보낼 수가 없었다.

 담당하게 된다는 일 관련 얘기도 좀 털어내어 녹여야 할 것 같아 관련 서적을 찾아봤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3-4일이나 걸린다고 해서 남아있는 단 한 권의 책들을 찾아 저 멀리 위치해 있는 서점에까지 쫓아가 두 권의 전문서적을 사들고 돌아오기까지 했다.

 배고파 죽겠거나 힘들어 죽겠는 상태로는 절대 다음 단계로 일을 진행시키지 않는 확고한 내 인생관을 깨고.

 사들고 돌아온 책의 목차를 휘날려 읽어대며 내 열정을 어느 부분과 어떻게 연결해서 자소서에 녹여낼지를 신중하게 검토했다.

 결론적으로 그 책에서 참고한 내용이 자소서에 녹아들어 가지는 못했지만.

 맨 마지막 이렇게는 썼다.

 온 서점을 다 뒤져 무슨무슨 책을 찾아 오늘 당장 사들고 왔다. 나는 이걸 정독하며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다....

 

 

 사실. 그 책은 이제까지의 관련 서적들을 집대성한 책으로 2017년 5월에 출간된 가장 따끈따끈한 책이자 유일한 책이었다.

 아무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릴 만한 책도 아니고.

 어쩌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조차 그 책이 존재하는 거 자체를 모를만한 책이므로.

 나는 이리 간절하다. 코미디 아니고 진심인데. 당신이 내 자소서를 읽고 빵 터져서-그렇게라도 된다면- "오.. 이 똘아이는(내 나이에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지) 한번 보고 싶은데??!" 하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성공이다.

 어찌 됐든 날 보고 싶어 질 무어라도 짜내고 싶었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실제로 난. 그 두 권의 책을 이미 정독했다.




 일을 하자고 제안을 받아본 적은 있다.

 그들이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일은 내가 전혀. 또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쪽이라 밥만 얻어먹고 도망가거나.

 아이고 감사합니다~하며 전화를 끊어버린 적도 있었다.

 괜찮았던 어떤 일은 할까 말까 망설이다 다른 분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까인 적도 있다.

 어차피 내 나이에 다시 조직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고. 그에 대한 바람이 강하진 않았었나 보다.

 

 이력서를 내 본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시간선택제 일들을 조회해보고 시간이 조절 가능한 곳만 골라 두세 군데 넣었었는데 그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바들바들 떨며 소심하게 면접을 봤으나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1차 면접 후 연락이 없었다.

 그 일들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고. 딱히 가고 싶은 회사도 아니었다. 월급도 박했다.

 단지 당장 아이를 돌보면서 내 시간 조절도 가능해 보여 딱 그 조건에만 맞추어 선택된 회사들이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이 간단한 명제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껴지는 요즘이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냐,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냐. 고 묻는다면.

 아주 정확히.

 둘. 다. 중요하다.

 아주 환장하게 '재밌는' 일이어서 일을 하는 과정이 '몰입'의 경지까지 이르게 한다면야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좋다.

 일 자체는 할 만하지만 때때로 이게 무슨 지루한 일인가 하고 느끼거나 예전의 그 스트레스로 찌든 나날의 도돌이표라면 돈은 상당히 중요해진다. 무조건 많이 받아야 한다. 자아실현 같은 거 필요 없이 돈이다.

 

 몰입의 시간으로 행복하게 적게 벌든지.

 좀 답답해도 섭섭지 않게 벌며 살든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몰입의 시간들은 취미로 즐길 수도 있는 것이고.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로 찌들어 있다 해도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와 내공이 예전보다는 생긴 것 같다.




 한 동안은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있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집 짓는 목수'편을 보게 됐는데.

 이동이 가능한 컨테이너 안을 나무로 꾸미기도 하고, 옮길 수 있는 크기의 나무집을 만들어 고객이 원하는 위치로 옮겨주는 일을 했다.

 꽤 높은 천장에 올라가 못을 박으러 건을 쏴대는 모습이 무척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순식간에 집 한 채를 뚝딱 만들어내는 노련함에 넋을 놓고 빠져들어 봤었다.

 전통 창을 손으로 만들어내는 목수들도 나오고.

 그걸 인테리어로 설치하는 과정들도 나왔는데.

 모두 나무를 능숙하게 다루며 일하시는 분들이라. 빠짐없이 모든 분들이 멋있어 보였다.

 진심으로 노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 존경과 부러움이 느껴졌고. 그들의 실력과 내공이 그 어떤 전문가들보다 진실되게 느껴졌다.

 

 같은 맥락으로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모든 달인들도 새삼 존경스럽다.

 예전에는 그저 흥미롭게 쳐다봤던 다른 이들의 모든 '일'들이. 요즘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몸을 움직여 자신만의 기술로 돈을 버는 일을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니까 내가 다시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이 조직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어서 이력서와 자소서를 좀 제대로 써야 하는 일이며. 운 좋게 서류에서 합격이 되어도 2번 정도의 면접을 봐야 하는. 꽤 어렵고 귀챦은 과정의 일이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이 일을 진행시켰다는 건 내가 꽤 그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는 말일 것이다.

 게다가. 이건 단기간의 알바직이 아니라 한번 들어가면 주구장창 더우나 추우나 출근해야 하는 다시 그 직장인의 대열에 들어간다는 의미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 스스로. 최초로. 맘에 드는 회사에 이력서를 내 본 것이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이미 나는 나이 많은 똘아이아줌마 취급을 받으며 인사 직원들에게 비웃음을 사며 까였을 수도 있고.

 업무에 너무 바쁜 나머지 아직 이력서들을 출력하는 일조차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 조건이나 경력은 너무 미천하여 앞으로 어떠한 회사에도 감히 이력서를 제출해 볼 만한 수준이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내게 갑자기 닥친 운명 같은 필연 같은 걸 굳게 믿는 사람이다. (대부분은 그저 우연으로 지나가지만)

 내가 그 회사에 눈독을 들이며 좋겠다, 좋겠군.. 해대며 홈페이지를 열었을 때 마침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떴고.

 어쩌면 내가 알법한 일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내게 생소할 수도 있을 그 자리에 번쩍 관심이 가 졌으며.

 하필 관련 서적이 올해 5월에 관련 전문가에 의해 '집대성'되어 집필해 출판을 했고. 그 책을 사기 위해 달려갔을 때 단 한 권의 책이 남아있었다.

 이 일에 관련해서 민간자격증도 곧 만들겠다는 둥 스멀스멀 뭔가 중요해지는 분위기가 기사에서도 느껴졌다.

 실제로 사 온 책 두 권을 읽다 보니 이 내용이 많이 어렵지는 않으나 분명 중요한 부분이라 앞으로 점점 더 사람이 필요할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서류통과가 되어 면접을 보는 것과 별개로 이 일 자체에 관심이 생겨 벌써 여러 번 책을 뒤척이며 공부를 해보는데 나름 재밌기도 해서 혹시 이번에 성사가 되지 않더라도 좀 더 공부해 자격증도 따 두고 다른 회사들에도 좀 기웃거려 볼까 생각이 든다.

 

 

 이력서를 뽑아 신랑에게 읽어봐 달라고 던져주니.

 역시나 마지막 부분에 빵 터지며 낄낄 거려 줬다.

 어때? 나 만나보고 싶겠어? 했더니.

 

 어. 확실히 만나보고는 싶겠어. 똘아이의 열정이 느껴져. 한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오늘도 책을 펼쳐본다.

 그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똘아이와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없기를 빌며.

 달리 더 해 볼 방도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뭐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