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질문자 그리고 스님의 답변
한동안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마음공부를 하고자 법륜스님 책을 모두 사다 읽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아픔 속에 있었고, 또 비슷한 경험들을 하며 살고 있었다.
우연찮게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 강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이 손을 잡고 찾아갔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겨우 도착한 강의실 안은 이미 사람으로 꽉 차 있었고, 스님께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선착순으로 끝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아이를 달래며 자리를 잡으니 스님이 강의실 강단으로 들어오셨다.
아. 나는 왠지 눈물이 글썽여졌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첫 번째 질문을 하신 아주머니는 드디어 스님께 질문을 하게 됐다며 자신이 몇 번이나 이 기회를 놓쳐 오늘은 맘을 먹고 일찍 오셨다고 했다.
-스님 그래서 제가 질문을 적어 왔는데요.
1. 제가 하도 사는 게 힘들어서 점을 보러 갔는데요. 그 점쟁이가 저보고 자꾸 '직선'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왜 왔냐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2. 식당을 조그맣게 하고 있고 제 앞으로 조그마한 집이 하나 있는데, 그걸 아들한테 주고 싶어요. 아들이 사업이 자꾸 망해서 지금 되게 어렵게 살고 있거든요. 근데 그걸 아들한테만 주자니 딸년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아 힘들어요.
3. 식당을 끝내고 나면 옆에 있는 절에 가서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는데요. 바로 옆에 있거든요. 근데 제가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고 있으면 누가 자꾸 옆에서 경을 외는데요. 정말 기가 막히게 경을 잘 읊는 거예요. 근데 그게 누가 그러는 거예요? 근데 정말 기가 막혀요.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경을 잘 읊긴 하는데. 저는 주로 유행가 노래에 맞춰서 노래하듯 하거든요~
다소 정신없이 질문을 해대는 이 분의 말투와 내용이 황당해서 사람들은 와~하고 웃고 말았다.
질문 중간에 본인도 같이 웃어대느라 말이 두서없이 나왔다.
스님 말씀하시기를.
절에 가서 기도를 할 때 옆에서 경을 읊어대는 것은 귀신이다. 사람이 아니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을 거다. 근데 그런 걸 본인이 너무 몸이 힘들어지거나 해서 받아들이는 이도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그걸 너무 신경 쓰거나 하지 말아라.
그 점쟁이가 직선이 있다고 얘기하며 자기한테 왜 왔냐고 하는 얘기도 같은 얘기다. 스스로 점칠 수 있을 텐데 본인한테 왜 왔냐는 얘기다.
어수선하게 웃던 사람들에게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나도 놀라 흠칫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들은 단지 그 아주머니가 정신없이 얘기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을 뿐, 그분의 질문과 모습에서 그런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스님의 말씀에 다들 놀라 조용하고 숙연해졌다.
또 말씀.
본인이 아직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식당을 아들 주겠다고 걱정은 왜 미리 하느냐. 본인 죽으면 아들, 딸이 알아서 할 터이니 걱정 말고 가시라. 그래도 영 신경이 쓰인다면 스님에게 달라. 내가 알아서 좋은 곳에 잘 써주겠다.
그리고 아까 경을 노래로 부른다고 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답변을 줬으니 한번 불러봐라. 하셨다.
사람들이 다시 웃으며 박수를 치자 수줍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깜짝 놀랄 만큼 잘하셨다. 그저 트로트 노래의 음률에 경을 가사처럼 부르는 거였는데 그 추임새의 솜씨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사람들은 오~하고 감탄하며 큰 박수를 보내줬다.
두 번째 질문을 한 분은 젊은 여자분이었다.
자신에게는 10년 이상 사귄 남자 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운동을 하러 간 센터에서 마음 설레는 남자를 만났었단다. 남자 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맘이 끌려 사귀게 되었는데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되었다. 근데 그 짧은 만남 후의 이별이었는데도 너무나 가슴이 아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란다. 최근에는 다른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는데 단념이 안되어 너무 괴롭다고 했다.
10년 사귄 남자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고, 그 친구는 자신과의 결혼까지 생각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지만 현실적 여건이 너무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잊지 못하는 그 남자 때문에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을 했다.
스님은 두 번째 남자를 놓아주라고 했다. 이미 여자를 떠난 사람이고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나기까지 했다는데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건 당신의 욕심이며 부질없는 일이라고. 그걸 모를 리 없는 여자였겠지만.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을 정리하고자 그 자리에서 어렵게 말을 꺼낸 것 같았다.
세 번째 분은 내 또래의 젊은 엄마였다.
두 아들을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주부인데 작년부터 친정엄마가 아프셔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직장생활과 더불어 아이들을 돌보고, 친정엄마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 너무 기운이 달려 힘들었는데 남편은 도와주기는커녕 경제적으로 무능한 상태라고 했다.
근데 본인이 가장 힘들고 아파하던 시기에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았단다.
너무 실망스럽고 가슴이 찢어질 듯 배신감을 느꼈는데. 아이들을 봐서 그래도 같이 살 생각을 하다가.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본인은 아직 너무 젊고 솔직히 남자한테 사랑도 받고 싶은데 아이들 아빠가 너무 용서가 안되어 같이 지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게다가 그분은 선생님이었다.
스님이 말씀하신 답변은.
아이가 20살까지는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 20살이 넘어가면 상관없다. 그러니 오늘 집에 딱 들어가는 순간 이렇게 맘을 먹어라.
아이가 20살 때까지는 같이 살고, 그 이후에 딱 이혼을 하자. 근데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마음으로 저 남자와 이혼을 했다 생각하며 관심 두지 말아라. 단, 아이들 밥 챙길 때 밥 한 그릇 더 떠서 애들 아빠에게 주고 그럭저럭 아이들한테 상처 주지 말며 살아라.
하지만, 그분은 저항했다. 한 집에 살며 밥까지 떠먹여 주기 싫다며. 펄펄 끓는 상처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분이 안쓰러웠다. 그분의 분노가 이해가 됐고. 아직까지 그 상처는 뜨겁게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 한분이 일어나 그 여자분의 말을 거들었다.
"스님. 스님은 스님이시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저분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용서할 수도 없고 당장 마음을 딱 끊고 살 수도 없어요. 저는 저 여자분이 이해가 돼요.
저는 몇 년 전에 와이프를 잃었습니다. 예. 죽었죠. 그리고 몇 년 동안 살려고 이런 강의도 듣고 마음공부하러 다닙니다.
근데 안돼요.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힘듭니다. 몇 년이 지나도 힘들어요.."
마음속에서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여자와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아파하는 사람도 있었고 여기저기 한숨소리가 들렸다.
질문자 세명의 얘기와 스님의 답변으로 2시간가량의 강의는 금방 지나가 버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슴에 안고 위로받으러 찾아오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은 나도 질문 한 가지를 안고 찾아간 거였는데 내 순서는 오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아픔과 스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많이 위로가 되었다. 다른 이들의 아픔이 안타깝고 토닥여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가슴 뜨겁게 박수를 치며 공감해주는 방법밖에는 없었지만 그들도 그 박수에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법륜스님의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많은 위로를 얻는다.
책이 참 여러 권 있는데 겹치는 부분들이 있으니 한 권도 안 읽으신 분께는 최근에 나온 <야단법석>을 권한다.
그 책에 법륜스님 말씀이 대부분 모아져 있고, 공감되고 위로받는 얘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