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더러운 이야기가 있으니 속이 부대끼는 분은 끝까지 보지 마세요..
운동이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어 보이는 신랑이 자전거에 푹 빠져있다.
가뜩이나 배 나오고 다리는 얇아지는 -번쩍 일어나 있는 개구리 상의 몸매입니다- 체형에 걱정이 됐었는데 어쨌거나 반갑다.
실은 몇 년 전에 다짜고짜 딸의 자전거를 사주었던 게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주재원으로 나가 있을 때라 일 년에 몇 번 못 보던 시절이었는데 어쩌다 한국에 와서는 애틋한 딸아이에게 커다란 자전거를 안겨 주고 다시 떠나버렸었다. 암만 가르쳐주려고 해도 자전거가 당시 아이한테 너무 커서 제대로 탈 수가 없었다.
그게 이제 몇 년 지나 지난가을에 드디어 끌고 나가 쓱 올라타더니만 단박에 배우게 된 것이다.
와. 컸구나.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빠를 끌고 나가 자전거를 탔다. 킥보드와 자전거.
주말뿐만 아니라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평일에도 가차 없이 아빠를 데리고 나갔다.
킥보드도 지가 타고, 자전거도 지가 타고. (그 당시 신랑은 자전거가 없었다.)
한 번은 자신이 붙었던지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나갔던 모양이다. 동네에서야 아빠가 지켜보거나 같이 뛰어다니면 됐는데 한강은 꽤 멀단 말이지.. 애아빠는 킥보드를 타고 한강까지 쫓아갔다고 한다. 물론 죽어라 달렸겠지만 자전거 속도에는 따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빠는 또 딸이 넘어질세라 죽어라고 쫓아다닌 모양.
몇 시간을 끌려다니다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는 잔뜩 신이 나 있고 애아빠는 얼굴이 반쪽에다 무시무시한 다크서클이..
암튼 그걸 계기로 본인도 자전거를 사러 갔고, 이제는 둘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신랑도 이젠 자전거에 자신도 붙고 재미도 생겨 가끔 애를 떼어놓고 혼자 멀리까지 갔다 오곤 한다.
신랑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날에는 꼭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를 해주어야 한다.
한껏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고 나는 니가 죽은 줄 알았다. 어딜 이래 멀리 갔다왔노~~ 안 힘들었나!!??"
전쟁통에서 돌아온 아들마냥 끌어안으며 요란법석을 떨면.
자랑스러운 얼굴로 앱을 하나 열어 보여준다.
-내가 말이야~오늘 팔당까지 갔었어. 옆에 한강이 보이고~캬.
얼마나 경치가 좋은데. 니도 자전거 하나 살래? 같이 타자!
나는 전혀 자전거를 같이 탈 생각이 없으나 이 인간은 꼭 운동을 해야 하므로.
법석을 좀 더 떨어준다.
"왜 그리 멀리 갔어. 위험하게. 그것도 혼자서.
.. 어. 근데 여기 95킬로미터로 달린 거는 뭐야? 이 앱 엉터리 아냐?
밖에선 날아다니는 거? 혹시 당신은 슈퍼맨....?"
-어... 올 때 전철 탔거던.. 그게 그때 찍힌 거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뭐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에 힘을 꽉 주며 근육 한번 만져보라고 난리다.
뭐 만지는 척을 하지만... 근육 어딨니. 내 손길 느껴지니.
나는 언제나 복근 있는 남자랑 살아보나. 복근 있는 남자 배 한번 쓱 어루만지며 잠들어지는 밤은 영원히 없겠구나 싶지만.
그래도 나이 들어 운동이라는 취미가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요즘엔 심지어 너무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다 보면 이 사람이 어딘가에서 죽어버릴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창 신경 써야 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술을 너무 마신다.
실은 며칠 전에 충격적인 일도 있었더랬다.
술이 만취가 되면- 아주 가끔- 같이 마시던 사람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오곤 하는데.
나는 군말 없이 술상을 차려 같이 껴서 술도 마시곤 했다. 그걸 왠지 되게 기분 좋아하길래.
어차피 뭐 다 거기서 거기라. 껴도 대충 얘기는 된다.
그날도 인사불성이 되어 무작정 사람들을 데리고 오겠다며 전화가 왔는데.. 진짜 그 날은 좀 그랬었다.
집에 아~무겠도 없고. 집안꼴도 엉망. 나도 엉망. 피곤하기도 했고.
암만 전화기에 대고 오늘은 아니야, 진짜 아니야.. 해도 인사불성이 되어 인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설마. 설마. 집을 대충 치우며 후닥닥 뛰어다니는데.. 이미 띵~동.
그의 상사분과 젊은 직원 한분이 매우 미안한 척하며 뒤에 서계시고 신랑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하고 냉장고를 털어 과일 한쪽 내고, 먹어도 되나 싶은 와인병을 찾아내 꺼내갔다.
양쪽에 두 분은 멀쩡하신데 이 남자만 횡설수설.
이 남자 술 먹어도 정신은 바짝 차리는 쪽인데 이거이거.. 오늘 이상한데..
행동과 말이 이상했다. 회를 먹었구나. 신랑은 회를 잘 못 먹는다. 빈속에 안주 없이 술을 들이부은 것이다.
(오래 같이 살면 대충 냄새로 안주도 뭘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 상사한테 막말도 한다!! O.O;; 듣기로 이 분이 만만챦은 분이라던데.
아이고. 정말 미쳤구나. 나도 취한 척 거든다.
"부장님~ 요즘 신랑이 힘들어하던데 부장님이 싸대기 때리셨던 거셨어요?
좀 봐주세요~ 이 사람 빽도 없고 돈도 없고 암것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잖아요.. 왜 그러셨어요..
오늘 또 맛이 갔네요......"
부장님 슬슬 웃으시더니 억울하다신다. 본인이 신랑한테 맞고 다닌다고. 쟤가 말을 너무 안 듣는다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봐도 그렇네요.
암튼 손님들은 가시고 의식이 날아간 신랑이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얼결에 술을 같이 먹어 나도 얼굴이 벌갰다.
속도 울렁거리고. 아이고 정신이야. 아이고 술냄새야.
겨우 상을 대충 치우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잠들 무렵에.
웩!!!!!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로 발사되는 무언가에 놀라 잠을 깨 불을 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온수아빠!! 온수아빠!!!!!!!
침대는 온통 핏빛이었다!
분수처럼 쏟아낸 그 무엇은 온통 검은 핏빛이었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정신이 없었다.
나는 애아빠가 죽는 줄 알았다. 피를 토하며.
.
.
.
.
허나 .. 그건 와인이었다.
내장의 일부가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 그것은.. 저녁으로 먹은 횟조각.
미칠 것 같은 온갖 술냄새. 소주. 맥주. 그중에 제일은 와인. 아 미쳐버릴 냄새. 내 침대. 내 침대.. 내가 애정 하는 내 침대..
짜증이 올라와 미쳐버릴 뻔했다. 정말 눈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정신이 없고. 저 쪽에서 화장실을 찾고 있다. 화장실을 애타게. 찾고 있다.
우선 샤워기를 틀어 욕조에 앉혀놓고.
이불, 베개, 침대커버를 모두 버리고 빨아 놓은 여분을 꺼내 다시 깔았다.
참고로 나도 취한 상태라 속이 울렁거려 치우면서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환기를 시켜놓고.
욕조에 널브러져 있는 신랑을 씻기고. 닦아. 옷을 입히고. 침대에 눕혔다.
그제사 눈물이 좀 났다.
그 와중에도 이 사람이 죽었나 살았나 벌렁거리는 코를 지켜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쓰면서도 창피한데 이 사람이 평소 이런 사람은 아닙니다. 저도 이런 모습은 16년 결혼생활 동안 처음입니다)
(그다음 날 출근하는 신랑에게 10분 동안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무척 창피해하는 와중에 기억은 또 가물가물하다며..)
예전 직장에서 나이차 많이 나는 왕언니가 무심히 했던 말이 생각난다.
"40 중반 넘어가면 신랑이 별로 필요가 없어.. 뭐 그래.. 살아봐.."
아. 대단히 충격적인 말이었다만.
나는 요즘. 가끔 실감한다.(미안하네.. )
저 배 나오고 냄새나는 중년의 아저씨가 한없이 가엾다가도.
아. 나는 원래 혼자 살았어도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을 구조를 가진 여자였구나. 싶기도 하고.
저 아저씨와 더불어 같이 찾아온 시댁이라는 울타리가 너무나 답답하기도 해서.
챙겨주길 바라며 졸졸 따라다니는 모양새가 두 번은 이뻤다가 한 번은 귀챦다.
미안. 근데 당신도 가끔 그렇겠지. 뭐.
난 괜찮아. 이해해.
그래도 너무 크게 상심하진 마.
대체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으니까.
나는 굳게 믿고 있어.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냥 종교처럼 믿는 거야. 무작정. 무조건.
그걸 믿지 않으면.. 영 힘들어지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