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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r 27. 2016

현직동기 퇴직동기

 너무 애쓰지 말아요


 옛 직장 동기가 연락이 왔다.

 점심 먹으러 오라는 얘기였다.

 그 동기는 아직 직장에 남아있는 내 입행 동기이다. 또 한 명의 동기와 함께(이 동기는 나와 같이 퇴직을 한 동기) 다음날 바로 만나러 갔다.

 현직 동기와 퇴직 동기와 나.

 

 

 현직동기는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아직 30대이고 두 딸의 엄마인 그녀는 머리에 흰머리도 왕창 늘었다. 얼굴이 홀쭉했다.

 -너 괜찮냐.

 -언니... 나 이번 달 내 실적 목표 좀 물어봐줘..

 -얼만디.

 -....

 - O.O;;;

 숨이 턱 막히는 숫자를 말한다. 어. 은행이 미쳤구나. 그게 가능한 숫자냐.

 너 안괜챦구나.. 답답해서 우릴 불렀구나.

 

 

 

 친했던 동기 네 명 중에 두 명은 회사에 남고 두 명은 명퇴를 했다.

 같이 나온 동기와 나는 퇴직한 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남은 동기 두 명은 정말 좋냐고. 살만 하냐고 계속 물어온다.

 그리고 다음 명퇴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겠단다. 그건 또 모를 일이다. 사실.

 

 

 

 그래도 이렇게 가끔 만나면 참 반갑고 좋다.

 현직동기는 우리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 자신의 현재를 가장 잘 이해할 우리에게 하소연을 열심히 한다.

 그래.. 그때 그 미친놈은 여전히 미친 짓을 하는구나.. 아 그래그래. 뭔 놈의 캠페인은 365 일 이래니.. 똑같구나 똑같어.

 우린 또 우리대로 새삼스러워진다. 아. 나도 저기 다녔었지. 저렇게 실적 때문에 사람 때문에 가슴 뭉개며 살았었는데.

 정말 이젠 까마득히 느껴진다.

 

 

 

 

 이 현직동기는 꽤 잘 하고 있다.

 말로는 우리와 같이 관두고 싶다고도 했었지만 워낙 잘하고 칭찬이 많아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세일즈직군에 들어가는  PB업무를 하던 시점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승진 후에는 아예 빵 터지며 달려 나가 버렸다.

 처음엔 나와 비슷한 속도로 나가더니 점점 비교도 안되게 앞질러 나가버렸다.

 

 

 근데 그게 잘 판다고(주로 투자상품) 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말 그렇다.

 왕창 팔아 좋다고 지화자를 부르다가 갑자기 주가가 훅! 떨어지면 정말 미춰버리는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실적순으로 더 많이 괴롭다. 많이 판 놈부터 순서대로.

 

 증권사 직원이 3명 자살해야 주가가 바닥을 치고 다시 오른다고 했던가.

 한 달 정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땐 그 말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정말 잠이 안 온다. 내 돈도 아니고 남의 돈 가져다 좋은 상품이라고 가입시켜 드렸는데. 그놈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쭉쭉 떨어지는 걸 매일 지켜보며 고객님께 전화를 돌려야 하는 그 심정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암튼. 이 현직동기는 너무 잘해버려 선상파티에도 초대되었었다!

 정말 선. 상. 파. 티. 다.. 어깨 드러낸 공주드레스 입고 화장 찐하게 하고 아주아주 커다란 배 위에서 술잔을 부딪치는 그 선상파티 말이다.

 나라별로 몇 명씩만 초대하는(글로벌 기업이라 나라 별로 뽑혀서 온다) 영광스러운 자리!

 그러니까 외국의 어느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가서 전 세계 우수한 직원들과 같이 상도 받고 파티도 한다는 거다. 배 위에서. 드레스 입고.

 

 

 아. 나는 그 순간에 축하를 하면서도.

 야. 겨털 어쩔거야.

 드레스?! 그런 드레스가 우리나라에서 구입이 가능한 거냐. 니가 연예인도 아니고 협찬도 안될 텐데 우짜냐.

 하는 매우 현실적인 걱정을 해줬었다.

 

 

 같이 일을 하고 있었을 때 그 동기에게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실적 목표의 90% 정도만 하라고 그렇게 외쳤거늘.

 100%는 물론 120%, 130%.. 이렇게 목표를 초과해버리니.. 어어.. 얘 되게 잘 하는데~ 하면서 PB 중에서도 급수를 점점 올리더니 최고 급수까지 올라가 버린 것이다. 현재는.

 그러니까 직급은 그대로인데 PB 중에서 등급만 오른 거다.

 다시 말하면 '월급은 그대로인데 목표만 오른다' 거다.

 한마디로 아니 내가 왜 이 월급으로 저 목표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매우 황당해지지만. 세일즈의 꽃이네 뭐네 하면서 엄청 추켜세워주고 본부장님이 얘 생일 되면 친히 오셔서 생신상을 사주시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다.

 무척 부담스럽지만 그러나 틀림없이, 꼭 그 목표를 채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게 된다는 얘기시다.

 

 

 

 -그러게. 내가 예전부터 적당히 하랬쟎어. 니 나이에 이 많은 흰머리가 웬 말이냐. 응. 이게 얼굴이 뭐냐..

 그 동기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간 있었던 속풀이를 한참 해댄다.

 힘들어 죽겠는데 말할 곳이 없어 외로웠을 것이다. 너무 승승장구하다 보니 말도 많고. 속 편하게 터놓을 곳도 없고.

 아이고. 얘를 데리고 우리가 탈출이라도 시켜줘야 하나...

 그러게. 나와도 다 산다니까. 살아지니까 걱정 말고 나오든지. 재밌는 것도 많고. 새로운 일도 또 생겨.. 동기야. 맘 좀 내려놓고 좀 적당히만 해. 니 몸 안 망가지게. 칭찬 안 받아도 되는 거야. 그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한편.

 옆에 얌전히 있던 퇴직동기의 놀랄만한 고백.

 퇴직금을 1년 넘게 고이 간직한 채 고민고민하다가 투자를 했단다.

 대출을 좀 받아 보태기는 했지만 목이 좋은 곳에 상가를 구입해 높은 월세를 받고 있었다.

 처음엔 그 가격을 듣고 눈이 튀어나오게 놀랐다.

 금액이 어마어마한 자리였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평소 얌전하고 여성여성한 스타일이라 그런 결단력이 있을 줄 몰랐다.

 어찌 됐든 성공적으로 잘 고른 것 같다. 웬만한 월급 정도의 세가 나온다고 한다. 가끔 세입자랑 핏대를 세우며 싸워야만 한다지만.

 

 

 이 동기는 아이들 교육에 헌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직장을 다닐 때도 어찌나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며 직접 공부를 시키는지 우리가 정말 '인정'했던 열렬엄마!

 퇴직 후 아이들에게 더욱 헌신적이다. 간식도 직접 만들어 먹이고, 공부도 직접 시키며 아이들 곁에 있어 줘야 해서 동기모임에도 잘 안 나온다.

 그 와중에 어느 대학에서 몇 개월째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분야의 자격증을 차곡차곡 따고 있다.

 참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친구다.

 그 자격증을 최고 급수까지 따면 강의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꽤 어려운 공부라는데 꾸준히 해내고 있다.

 파이팅이다. 내 동기!

 


 



 

 
  맘고생을 하며 우리라도 불러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동기를 보니 안쓰러웠다.

 그 친구는 너무 잘해 다른 직책으로 바꿔주지도 않는다. 암만 높은 사람한테 하소연을 해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얘기만 돌아온다.

 그러게. 내가 너무 성실하지 말랬쟎아, 이년아.

 

 


 그래도 간만에 동기들 만나 좋은 곳에서 맛난 것 먹고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들어오니 좋았다.


 나는 노화방지에 좋은 견과류를 선물로 나눠주고. 니들만 먹어. 새끼도 주지 말고. 비싼 거다.

 2시간 실컷 수다를 풀고 회사로 돌아가는 동기에게 힘내라고 해줬다. 그리고 적당히 하라고도.

 

 

 

 퇴직동기랑은 팔짱 끼고 지하철로 향하며 다시 아이 얘기다.

 사는 동네 얘기도 하고. 서로 새로 시작한 일에 응원도 해주고.

 다음에 또 보자.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언제 한번 애들까지 같이 공원에라도 가자. 애들은 애들대로 놀리고. 우리는 우리끼리 얘기하고.

 그래그래. 지난번 나만 못 갔었는데 무척 재밌었던 모양이다.

 

 

 

 아. 또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추억 돋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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