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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y 13. 2018

심란할 땐 공방

유니크 마이스터, 내 가장 애정하는 장소

 요즘도 마음이 심란할 땐 공방을 찾곤 한다. 
 아직도 그곳엔 내 공구함이 그대로 자리 잡고 있고,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한 가구 하나가 꽁꽁 묶인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항상 완성하지 않은 무언가를 남겨두고 오는 것이 공방과 나의 연결고리를 남겨 놓는 느낌이 들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공방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자리를 잡은 뒤 잘 묶어두었던 나무를 꺼내 와 이리저리 감촉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익숙한 나무 냄새,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인사하시는 조용한 선생님들, 스텝분들, 변하지 않는 편안한 공간.
 2층 사무실에 올라가 하루 자유 제작 신청을 하고 기웃거리는데 한쪽 테이블 위에 근사한 나무 숟가락이 잔뜩 꽂혀 있다. 세심하게 마무리된 숟가락들. 아. 이 단단한 나무로 어떻게 이렇게 작업을 하신 걸까..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나무 숟가락을 더듬고 있자니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웃으며 소개를 하신다.
 본인이 만드신 거라며 오다가다 시간이 빌 때 깎은 거라고 무심히 말씀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다른 선생님께 "우와. 이 분 뭐하시던 분이에요...?"하고 생뚱맞은 질문을.. 
 -맘에 드시면 몇 개 드릴까요,..?
 -예..?
 -두 개씩 있는 건 하나씩 드릴게요..
 -이거 하나 만드는데 꽤 시간이 걸리잖아요..
 -괜찮아요..
 하시며 선뜻 작품을 내주시는 이 남자. 오. 나 프러포즈받는 기분.


아.. 예술입니다. .. 나 막 흥분.
프로포즈 아니시랍니다. 그냥 주시는 거랍니다. 알고 있습니다만. 저 혼자 설렜네요. 저 작품의 창작자.

 선생님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시는 것 같아 숟가락을 소중히 품고 내려왔다.
 이 숟가락은 절대 쓰지 못하겠구나.
 지금도 우리 집 나무 테이블 위에 소중히 펼쳐 놓고 매일매일 쳐다보며 어루만지고 있다.
 선생님. 저 스토커 아니에요. 숟가락이 이뻐서 보는 거예요. 잘생겼다고 아무나 좋아하지 않아요.



  며칠 전부터 다시 일을 나가고 있다. 하던 일이라 어려울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다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니 혼자 지낼 때와 달리 자꾸 맘 속에 작은 소용돌이가 인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꾸 나 혼자만의 생각이 속에서 가지를 키우며 줄기를 쭉쭉 뻗친다.
  그건 어쩔 땐 내 자만심이기도 하고, 어쩔 땐 내 열등감이기도 하다.
 
 새삼 내가 눈치 없고 요령 없는 인간이구나 싶기도 하고. 그 짧지 않았던 직장생활을 어떻게 지냈던 건지 신기하기도 하고. 재야의 숨은 고수들이 이리 많은데 혼자 잘난 척은 다 하고 방정을 떨고 다닌 건 아닌지 자꾸 과거를 되새김질하게 된다.
 예전 직장 생활할 때 만난 사람들보다 요즘처럼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 일 잘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람 대하는 일에도 노련하고 눈치도 빠르며 이것저것 상황따라 어찌나 빠르게 적응을 잘 하시는지 나는 항상 쫓아다니는 기분이다.
 예전의 내 상사들이나 동료들이 날 두고 눈치 없고 굼뜨다고 욕한 건 아니었는지 자꾸 과거를 회상하며 곱씹는다. 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최근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며 한 회 한 회 눈물을 흘리며 봤다.
 가슴을 치는 대사들이 매 회마다 내 마음을 흔들었고, 나는 드라마를 보다가 드라마와 나 사이의 허공을 보며 초점을 잃기도 했다. 나는 자꾸 그 아저씨들에 빙의된다.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인 스님 겸덕이 절에 찾아온 이들에게 한 말이 있었다.
 내심. 외경.
 내 속에 있는 걸. 밖에서 본다.
 인간은 다 열망하는 걸 보게 되어 있고 내 속에서 보고 싶은 걸 밖에서 찾아서 보게 된다는 말이다.
 내 마음이 좋으면 밖에 싫은 게 하나도 없다는. 그러니까 외부의 어떤 일들이나 무언가에 의해 사람이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느끼는 게 아니라 내 속의 것들 때문에 밖의 것들이 그리 보인다는 얘기.
 딱 저 말을 듣는데 깊은 깨달음이 느껴져 그대로 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으니 공방으로 향할 수밖에.



 

 제일 좋아하는 기계실. 부앙. 다 갈아버리게써.
오일 마감하는 곳
완성하면 촬영할 수 있는 곳. 지난번 제 가구도 여기서 촬영을 했었죠. 저건 제 가구 아니구요..


1층 작업실 누군가의 책상.. 누군가의 작품.


겨울이면 여기 모여 불을 쬡니다. 가끔 고기도 구워 먹었습니다.


 공방 작업실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
 아이방에 놓아주려고 간단한 디귿자 협탁을 만드는데 짜맞춤 부분 손질하고 다듬고. 사포질 슬쩍슬쩍 했다가 다시 멍해진다.
 몇 시간 뒤 슬그머니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완성하지 못한 나무들을 틀어지지 않게 꽁꽁 싸서 위층에 잘 올려두었다. 잠시 빌린 누군가의 작업대를 물티슈로 깨끗이 정리하고 공구함을 천장 높이 올려둔다. 
 진도 나간 거 별로 없어도 왠지 머리는 한결 가볍다.
 나무를 다루는 시간이 내겐 수행자의 시간 같다.
 바쁘신 선생님들 몰래 자리를 정리하고 조용히 나왔다.





*지난번 제가 다니는 공방에 대한 글을 몇 번 올렸더니 조용히 공방에 대해 물어오시는 분들이 여럿 계셨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정체가 들통날까 봐 시원하게 답변을 드리질 못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공방은 유니크 마이스터입니다.
 이제 제 과정은 끝났고 가끔 하루씩 찾아가서 수행을 하는 곳이니 속 시원히 털어놓겠습니다.
 
 최근에 좋은 수업이 새로 개설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저처럼 목공에 관심 있으신 분 있으시면 한번 둘러보세요.
 규모면에서나 실력면에서 국내 최고인 곳이라 사실 무척 유명한 곳입니다. 제가 뭐 감추고 숨기고 할 만한 장소가 아니기도 하고요. 제 가장 애정하는 장소입니다.


http://cafe.naver.com/uniquemeister/5401



 몰입의 시간.
 경험해 보시길요.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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