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좋은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수 Apr 06. 2016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유쾌한 사노 요코를 만나보세요.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가 열네 살 때 좋아하던 남학생은 수재에 문학 소년 타입이었고, 그래서 그가 창백하고 휘청거리면 거릴수록 더 섹시해 보였다.

 공을 던져도 톡 하고 1미터 50센티 되는 곳에 떨어져 버리는 수재를 보면 실신할 지경으로 멋있어 보여서 가슴이 두근두근했고, 나도 따라서 1미터 50센티 되는 곳에 톡 하고 떨어뜨렸더니 체조 강사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제대로 해라아!"하고 고함쳤던 일이 생각난다."

 

 

 

 작가 사노 요코는 1938년생 여성으로 이혼 후 일러스트와 글을 쓰면서 아들을 홀로 키웠다.

 이 책은 중년의 나이에 쓴 수필집으로, 너무 애쓰지 않아도 즐겁고 여유로운 그녀의 삶과 추억이 담겨있다.

 죽음 전 70대에 쓴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가 2015년 한국에서 발표됐었다.

 그녀의 책은 하루키 같은 유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와 읽는 내내 사람을 웃게 만들지만, 삶에 대한 본인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고 내공이 남달라 읽다 보면 '내가 졌소~'하는 맘이 생기게 된다.

 

 

 "이미 나는 신데렐라에게는 공감하지 않는다. 예전에 가난했던 사람에게만 공감한다.

 나아가 그런 사람이라 해도 기특하게 깨끗하고 올바르고 내일을 믿고 구질구질 눈물을 흘리며 싸우는 사람을 보는 것은 우울하다.

 가난 속에서, 교활하고 명랑하게 질투심과 비뚤어진 심성을 숨기고 넉살 좋게 사는 사람에게 공감한다."

 

 

 옛 고향의 어느 장례식장에 참석했을 때

 "거실 안은 어린 시절 친구들의 아버지들뿐이구나 싶었는데, 그게 실은 어린 시절 친구가 아버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아버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라고 생각한 것은 실은 그 아들들이었으니, 핏줄이란 정말 으스스하다."

 

 

 

 ".. 그중 빈자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책의 요리 순서 사이에 훌륭하게 묘사된 소위 상류사회 가정의 모습을 읽다 보면, 왠지 이누카이 미치코의 <어느 역사의 딸>이나 <꽃들과 별들과>와 마찬가지로, 표현이 곧 자만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나의 이 빈자의 표현을 보고 사실의 왜곡이라고 할 것이다."

 

 

 

"언니, 언니,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운전할 줄 알고 책 좋아하는 여자는 전부 이혼했어, 내가 아는 범위 안이긴 하지만."

 

 아. 정말? 운전을 못해서 다행이군요.

 물론, 저 글을 쓴 때는 작가가 40대쯤이었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일 겁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등장한 이후로 나는 매우 헷갈리고 있다. 나는 더스틴 호프만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나온 영화라면 대부분 다 본다. 그리고 볼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 그런데 이게 곤란하다... 문제는 그 사람은 뭔가 인연이 될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왕 돈 내고 보는 영화인데, 스타와 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보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타와 나 사이의 관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상정하려 든다.

 <존과 메리>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내가 사는 싸구려 아파트의 옆 옆방에 사는 학생 같은 느낌을 주었다. 때때로 내 방을 두드리고 "미안하지만 간장 좀 빌려줄래요?" 하는 관계인 거다."

 

 저 구절이 왠지 무척 공감이 되었는데.

 송중기가 자꾸 내 방을 두드리며 "미안하지만 간장이 필요하지 말입니다."라고 자꾸 껄떡대면.. 나는 더 좋은 여자 만나라고 그를 보내주리라 맘을 먹고 있어서일까.

 

 



 <옮긴이 후기>에 들어 있는 글이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어 적어본다.(옮긴이 서혜영)

 

 ".. 그러므로 우리가 읽고 '아, 참 좋다'라고 하는 수필은 기본적으로 작위가 아닌, 살면서 그 사람 안에 한 켜 한 켜 쌓여 오던 것이 마침내 그 사람 됨됨이의 그릇에서 자연스럽게 넘쳐 나오는 그런 것일 터이다.

 그래서 수필의 기본적인 덕목을 달리 표현하면 꾸밈과 대비되는 '솔직함'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 쌓인 것들을 '사실대로' 뱉어 냈다는 것만으로 독자의 마음에 깊은 공감과 감동을 끌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많은 웃음을 주면서도 그의 글이 읽는 이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 소소함 속에 그의 인생의 깊이와 깊은 통찰력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죽는 게 뭐라고> 가 훨씬 좋았다.

 그 책을 읽고 팔았다가 다시 샀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작가는 그 길로 얼씨구나 평소에 눈여겨보던 비싼 외제차를 구입한다. 이제 2년 정도 남았다니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 계산을 해도 얼추 맞출 수 있다는 생각하에서.

 근데 생각보다 급격히 나빠지지 않는 건강에 대해 의사에게 상의하자.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우왓! 그래요? 남은 날이 2년이라고 한 건 누구예요? "

 "... 2년 안에는 죽지 않아요."

 "그래요? 아, 곤란하네. 2년이라고 해서 기세 등등하게 돈을 전부 다 써버렸어요.

  아 싫다. 곤란해요! 계획이 틀어져요! 딱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전 이제 일 안 해도 괜찮을 나이잖아요. 전 일흔이라고요."

 

 

 저이는 정말 저렇게 생각할 만한 사람이다. 읽다 보면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심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녀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도 담담히 기술했다.

 생각해보니 죽음 직전에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에 대한 글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자세히 얘기해주겠소~라는 투로.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직접 운전해 요양원에 가는 차 안에서도 여전히 담배를 피워대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죽는 게 뭐라고>를 더 권합니다.

 유쾌하지만 유쾌할 수만은 없는 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