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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Apr 06. 2016

<어떻게 살 것인가>

              두 번째 스무 살의 고민.


"나는 글쓰기로 돌아왔다. 정치가 싫다거나,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다.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아서다. 그래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자문해본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 삶은 훌륭한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가?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들은 내게 의미가 있었는가? 나는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지금 하는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내 마음이 이렇게 대답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 글 쓰는 일로 돌아가자. 마음이 설레고 일상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자."

 

 

 나는 지금 두 번째 스무 살인데.

 첫 번째 스무 살 때 했어야 할 고민을 요즘 하고 있다.

 나는 마치 대학생 때 했었어야 할 고민을 요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일은 이제 돈이 주목적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 슬쩍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20살의 고민에 머물러 있다.

 그때 치열하게 고민했었어야 할 문제를 시기를 놓치고. 정신없이 돈을 벌며. 돈 버는 게 궁극적인 목표인 거 마냥 15년을 지내왔다.

 딱 40의 나이에. 두 번째 스무 살의 시간에. 나는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다.

 

 

 나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막막하고 어렵고 힘들다.

 어느 날은 또 희망에 부풀어 혼자 방방 뜨기도 했고 이내 실망해버리기도 했다.

 내 능력의 한계나 현실적 책임감.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 아이의 교육. 부모 봉양. 내 노후. 등이 나를 지그시 눌러온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현실적인 울타리 안에서의 고민을 놓을 수는 없다.

 

 

 20살의 나와 달라진 점은 뭘까.

 남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을까.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나.

 글쎄. 그때보다야 조금. 아주 조금.


 답답한 마음에 삼일에 한 번 정도 신랑에게도 물어본다.

 "내가 커서 무엇이 됐으면 좋겠어?"

 

 신랑은 내가 다 컸단다.

 이미 애엄마도 되었고, 마누라도 되었으니 부디 더 커지지는 말아달라는데.

 스무 살로부터 별로 크지 않은 것 같은 아찔함이 드는데. 40이다.

 

 

"마흔 살 새 아침에 찾아든 자각 때문에 독일 유학을 중단했다... 공부보다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서른네 살에 떠난 유학이었다. 석사학위를 받고 나자 금세 마흔이 되어버렸다.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면 마흔다섯 살이 될 것이다.."

 

 그랬단 말이지. 유시민 작가도 40살쯤에 심각하게 고민하며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박완서 작가님도 40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 또 누군가가 40쯤에 뭔가를 했다는 얘기를 계속 듣고 싶다.

 나는.. 계속 생각 중이다.

 

 

 

 "평범한 삶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평범해도 평범하지 않아도, 인생은 훌륭하거나 비천할 수 있다. 내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그저 현실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정치를 관두고 난 뒤.

 "무엇보다 먼저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그 일이란, 배우고 깨닫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작업이다.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형제자매들, 삶과 세상에 대해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적은 수의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공감.

 

 

 





 

 작가는 죽음에 대해서도 깊은 호흡으로 고민하며 글을 썼다. 죽음과 자살, 존엄에 대한 그의 얘기에 공감한다.

 

 "사지가 마비되면 자살한다는 준칙은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라몬 산페드로의 준칙은 그것이 아니었다. 라몬이 제안한 준칙은 '기쁨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 남은 상황에서, 그 고통을 견디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데 스스로 아무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자유의지에 따라 죽을 권리를 인정해주자"는 것이었다.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학문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끈질기게 삶을 지속하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있다.

 그는 최첨단 과학시술의 도움을 받아 특수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입 웅얼거림, 뺨 근육 움찔거림, 눈 깜박임, 눈동자 초점 이동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뇌파를 활용해 생각을 읽어내는 장치를 개발하는 미국 의료기 회사의 임상 실험에도 참가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최악의 조건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간 것이다.

 

 

 사지가 마비되는 상태에서 한 사람은 죽음을, 한 사람은 삶을 택했다.

 그들은 모두 존엄을 지켰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만 둘 다 존엄할 수 있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벌써 주변인의 죽음을 종종 겪는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죽음을 마냥 죄악이라고 비난하지만도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그 당시 그들의 선택이었고 그들이 어느 만큼 힘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무엇이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미성년의 자식이 있는 부모의 경우라면 그게 어떤 상황인지의 경우를 떠나서 나는 비판한다.

 그것은 죽어서도 비난받을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낳은 자식이 적어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건 내 삶을 넘어 내가 꼭 지켜야 하는 유일한 이유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 진보주의에 대한 생각.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라고 이해하면 그 차이를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진보는 서민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부자증세에 찬성하지만 보수는 반대한다. 진보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와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내국인의 이익과 민족문화의 고유성을 중시한다. 진보는 동성애에 대해 너그럽지만 보수는 동성애를 혐오한다. 진보는 전쟁에 반대하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부국강병을 좋아하고 외부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선호한다. 진보는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매우 강조하지만 보수는 덜 그렇다. 진보는 무순 문제가 있으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는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중시한다.

 뭉뚱그려 말하면 보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진보는 진화적으로 새롭고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는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쪽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어도 대체로 진보주의 쪽에 마음이 간다.

 선거철마다 참 꾸준히도 신랑과는 반대의 정치인을 뽑는다.

 신랑은 무슨 기득권 세력에는 얼씬도 못할 위치면서 왜 그리 선거철마다 기득권 인척 유세인지.

 처음엔 몇 번 싸워보려다 이젠 관두고 각자 투표한다.

 


 




불운에 대한 그의 자세.

여러 번의 실패와 불편한 상황들을 겪은 그의 솔직한 생각.

 

"삶에는 인과관계를 찾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냥 일어나는 일이고, 일단 일어나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만큼은 어떤 초월적 존재 또는 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교만에 빠지지 말라는, 어두운 골짜기에 떨어져도 희망을 잃지 말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에 공감한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신을 숭배하든,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그 신앙을 존중한다. 그러나 나 자신은 종교가 없다.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나는 세상의 부조리와 설명할 길 없는 불운을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운에 대해서는 감사하되 불운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선택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정치를 관두고 작가라는 직업으로 다시 돌아와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한 작가의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진지하고 솔직하게 이 책을 써 내려갔다.

 그의 삶의 지혜가 궁금해서 슬쩍 엿보려다 많은 생각을 얻어 간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많은 부분에 띠지를 붙였다. 많은 부분이 새로웠고 다시 읽고 생각해야 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처럼 좀 단단하게 살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고 TV에서 보이는 모습은 영 호감이 가질 않았었다.

 요 근래 유시민의 책을 몇 권 읽고 그가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고 글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도 여겨진다. 적어도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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