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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Apr 21. 2016

혹시 40이란 나이가 궁금하신가?

난 궁금했는데


 대학 3학년 때쯤이던가.

 개강 후  첫 강의시간에 담당교수님이 선배 한 명을 소개했다.

 우리보다 20살이나 많은 여자 선배님이셨는데 졸업을 하지 않고 결혼을 했었다고 했다.

 아이 키우고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학교를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로 돌아오신 거였다.

 엄마 또래는 아니더라도 20살 차이가 나니 처음엔 좀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나. 이내 잘 친해져서 다들 잘 지내게 됐었다.

 

 몇 개월이 지나 꽤 편한 사이가 됐을 때. 그분이 빈 강의실에 앉아 담배를 물고 얘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니들은 40 넘어가면 아무 재미가 없을 거 같지? 나는 니들 하나도 안 부러워..

 얼마나 재밌는데. 애들 다 키워놨으니 신경 쓸 일도 없고. 골프 치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면 되게 재밌어~ "

 

 하며 활짝 웃으시는데. 그분 얼굴이 되게 조그맣고 되게 이쁘셨었다.

 그러니까 그때 그분은 40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는 까마득한 미래의 삶을 살고 있는 여자였다.



 나는 이제 그 40대의 여자가 되어 있다.

 아직 아이는 다 키워내지 못했고.

 골프 치러 다닐 팔자는 되질 못했다.

 사실 한 달 정도 배워본 적은 있었는데.

 무척 재밌긴 했지만.

 주말에 아이까지 밀쳐내고 돈을 몇십 만원씩 쓰며 필드에 나갈 주제는 역시 되질 못했다.

 골프레슨을 받은 것도 사실.

 세일즈를 제대로 하기 위한 절차로써의 과정이었고. 그건 내 상사의 반강요와 내 호기심이 반인. 그저 그런 거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스트레스 만땅 받아. 개새끼소새끼 씩씩 거리며 나 혼자 길거리를 미친 듯이 걸어 다니다.

 문득 보여 들어간 코인 야구장... 의 연장선이었다.(들어보면 안다.)

 나는 운동에 영 취미도 없고.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 종자인데.

 그 날따라 그 코인 야구장이 이상하게 땡기던지.

 그대로 쑥 들어가 동전을 집어넣고 방망이를 휘두르는데 그대로 "탕~!" 하고 공이 제대로 날아간 거였다.

 아. 이런. 개새끼랑 소새끼가 저렇게 제대로 탕~ 날아가며 주는 쾌감이란~!

 

 

 근데. 그 한번뿐. 그 뒤 제대로 맞는 공이 없었고. 실컷 허공에 팔을 휘두르다 집에 왔는데.

 그다음 날 출근해 책상에 앉았는데 팔이 책상 위로 올라오질 않았다.

 덜덜덜덜 떨리며 양 팔에 감각이 없을 정도. 였으니 얼마나 운동을 안 하는 육체인지 알만할 것이다.

 

 

 덜덜 떨리는 팔로 억지로 자판을 두둘기는데.

 매일 오는 그 잘생기고 키 큰 업체 총각은 어찌나 싸가지가 없었는지.

 나는 또 코인 야구장에 가서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어느 날부터는 대충 맞기 시작하더니. 어라. 이제 웬만큼 다 맞추는 경지에 이르렀다!

 스트레스가 만땅인 어느 날엔가는 2만 원을 쓰고 온 적도 있었다.

 

 신랑의 직장동료들이 듣더니. 그 돈이면 차라리 골프를 시키라고 했다나.

 공 잘 맞추면 되는 거는 똑같다며.

 

 

 

 어느 날엔 그 싸가지가 술이나 한잔 같이 하자길래. 거기 두 명. 내편도 한 명. 이렇게 넷이 술을 진탕 먹고. 코인 야구장에 데리고 갔다.

 

 -여긴 왜 왔어요?

 -아.. 저 여기 자주 와요. 한번 해보시던가.

 

 어라. 잘생기고 키 크고 싹수없는 이 자식은 꽤 멋지게 공을 날려버렸다. 역시 운동도 잘해. 운동도.

 나도 함 보여줘야지 싶어.

 멋지게 바바리를 흩날리며 탕~! 하고 날려줬더니. 디게 좋아하며 박수를 쳐주더라.

 누구 생각하며 그렇게 쎄게 날리냐길래.

 

 "저기 날아간 거? 너야. 너."

 

 괜찮다. 걱정 마시라. 그 뒤로 좀 친해져서 편해졌다.

 

 


 



 

 거진 10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기억난다.

 그때 그 술집의 고기 냄새며 늦은 저녁의 차가운 공기며. 술 취해 꼬장 부리던 저 여자가 나였다는 게. 사실은 먼 예전의 일인데 말이다.

 

 

 이석원 작가가 말했듯이.

 평균수명이 길어져 20대와 30대, 40대가 같은 고민을 하고 앉아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난다 작가님이 말했듯이.

 이제는 화장을 해야만이 자연스러운 민낯처럼 보이는 슬픈 시기도 됐고.

 

 근데 어쩌랴.

 나는 20대와 30대의 일들이 어제처럼 생각나고. 맘도 그대로인걸.

 아직도 계속 손을 휘저으며 아니 내가 언제 이 나이가 된 것이지 하며 부정을 하고 있다.


 



 40대가 되면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고? (누가 좀 궁금해줘 봐요..)

 

 우선 의외로 맘이 편하다. 젊은 그대들보다.

 

 당시로써는 꽤 어린 나이로(26세) 이미 결혼도 해버려서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고.(성공적인 결혼이라고는 말 안 했다. 그저 고민이 끝났다는 것이지)

 결혼 초기 몇 년 동안 싸우고 볶고 하면서 사네마네 하는 시기도 지났다. 시어머니 덕에 이 시기도 매우 빨리 왔었는데 삶에 많은 가르침을 얻으며 깨우친 게 꽤 있었다.

 

 이 나이가 되니 신랑에 대한 집착 같은 거는 완전 내려놓게 된다.

 어려운 난관을 함께 겪어온 깊은 전우애 같은 거는 느끼지만. 남녀로서의 달달함이 사라지니 그 또한 오히려 편할 때가 더 많다.

 술 취해 늦게 들어온 남편을 혹시나~ 하는 맘으로 와이셔츠를 뒤집는다거나 주머니를 뒤지는 일 따위가 아예 없어졌다.

 저 사람을 굳이 되게 믿는다기보다는.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다 해도.

 나는 알고 싶지 않으며.

 혹시 그런 일이 있더라도.

 저 사람은 내 딸의 아빠로 여기 이 가정에 있어야만 한다는 확고한 가치관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저 사람이 무슨 결정적인 실수를 한 적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내가 모르고 있는 걸 수도 있겠으나) 어찌 됐든 뭔가 의심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진다.

 성욕저하로 인해 집착이 좀 사라지고. 질투도 아련히 사라지려고 하니.

 그저 동지처럼 전우처럼 내 옆에 내 아이를 같이 양육하는 존재로써의 존재도 괜찮다 싶다.


 또한 이 나이는.

 취업난에 머리 뜯으며 자괴감을 느낄 시기도 지났다. (다행이다. 정말)

 이미 15년 직장생활을 끝내고. 괜찮은 퇴직금까지 챙겨 나온 상태인 데다가. 아이 돌본다는 핑계도 있기 때문에 당분간 놀며 지내도 좀 눈치가 덜 보인다.

 물론 언젠가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긴 하지만.

 

 게다가 그 직장생활이라는 건. 15년 차보다 3년 차가 훨씬 힘든 거다.

 혹시 3년 차 이신분~?

 당신이 지금 제일 힘들다.

 좀 만 더 참아봐라.

 시간이 흘러 승진도 좀 하고. 밑에 애들도 들어오고 그러면 좀 편해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 책임은 더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3년 차보다는 5년 차가. 그보다는 10년 차가 조금 숨 쉴 구멍이나 유도리가 있다.

 당신 상사들이 하는 얘기를 다 믿지는 마시라.

 그들은 당신들이 12시까지 야근할 때 술 마시며 놀기도 하고. 중간중간 담배도 피고. 싸우나도 다녀온다.




 

 가장 좋은 점.

 나이 들면 책 읽거나 배우는 게 무지 재밌어진다.

 그러니까 이 나이가 되어서 자식이 옆에 있는데. 그 자식이 공부를 안 하면.

 "공부란 다 때가 있는 거다. 얼마나 좋으냐. 공부만 하면 되니." 하는 말을 해대나 보다.

 

 나는 솔직히 지금처럼 책 읽는 게 재밌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 책이 재밌다.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너무 설렌다.

 대충 그동안 관심 있었던 분야의 책이나 분야의 공부를 하게 되지만.

 전혀 새로운 걸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들어진다.

 

 이 욕구는 정말 멋지다!

 진작에 한 번도 최선을 다해 달려본 적이 없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라도 배움에 재미를 느낀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내 또래의 전현무가 그랬다.

 

 "우리 땐 발표를 해도 그저 줄줄 읽는 거였어요. 당연히 듣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당연히 애들도 듣질 않았죠.

 요즘 사람들 발표하고 논쟁 벌이고 자기 PR도 잘 하는데. 우리 땐 없었다고요. 정말 없었어요. 그런 분위기..."

 

 왠지 감사했다. 저 말이.

 진짜 그랬다. 우리 땐 없었다.

 

 시대가 슬슬 바뀌어가며 스스로 PR을 하라고도 했지만. 끝내 쑥스러워 잘 하질 못했었다.

 묵묵히 내 일을 하면 알아주겠지 했었는데.

 그건 착각.

 그저 혼자 묵묵.. 이였지.

 

 이런 얘기 하면 또 꼰대 취급할라나.

 

 근데 저런 얘기도. 내가 전현무와 비슷한 나이라 공감하는 거겠지.

 전현무도 그 앞에서 말 잘하고 토론 잘하는 20,30대 애들이 신기했던 거다.


 



 내가 40이 되어 20대 때와 똑같은 맘이라고 계속 우기고 싶어 지는 걸 보니.

 나이 더 들어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도 그 맘만큼은 변하지 않더라.. 하는 걸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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