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수 May 07. 2016

"그건 다 핑계로 들려."

쉽게 '핑계'라고 말하지 마라.


 남동생은 대기업에 다닌다.

 처음에 작은 회사에서 일을 했었는데 일자체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고 회사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몇 년 후 경력직으로 대기업에 옮겼을 때. 부모님이 '집안의 경사'인 거 마냥 너무 좋아하셔서 약간 충격을 먹기도 했었다.

 예전 직장도 본인 스스로는 만족하며 다녔는데 혹시 부모님은 그게 아녔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며 좀 씁쓸하기도 했다고 했다.

 

 

 최근에 동생이 외국에 먼저 나가 있는 선배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다.

 먼저 옮겨간 직장선배는 지금 하는 일에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회사에 제의를 하고 동생을 설득했다.

 좋은 기회였다.

 미국에 있는 큰 기업이고. 영어는 물론 아이 교육에. 본인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누구나 바라는 기회였다.

 하지만 동생은 고민 끝에 거절을 했다고 한다.

 당장 혼자서 나가는 거라면 기꺼이 나가겠지만. 외벌이인 데다 첫째는 2살이고 올케는 지금 임신 5개월이다.

 주재원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현재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는 형태라 언제 혹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영영 미지수이고.

 영어가 서툰 상태에서. 당장 하는 일도 바뀔 테고.

 한국에 혹시 돌아오게 된다 해도 다시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 이미 나이가 적지도 않고.

 

 

 

 이 모든 고민을 듣고 올케는 동생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오빠. 오빠가 말하는 그 모든 건 핑계로 들려.. "


 



 나와 같이 퇴직한 동기 중에 강남 아줌마가 있다.

 강남에서 십 년 이상을 버티며 거기에 터를 잡고 살아왔고. 강남 아줌마라는 타이틀에 스스로 크게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욕심이 많은 친구다.

 그녀의 신랑은 대기업이다.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제일 잘 나가는 대기업에 다니는데.

 

 

 동네가 동네인지라 옆집, 윗집, 아랫집 흔하디 흔한 전문직 아빠와 전문직 엄마들에 기가 죽는다고 한다.

 이 친구는 자녀 교육에도 욕심이 많아서 어떻게든 신랑을 외국 주재원으로 보내고 싶어 한다.

 그중에서도 좋은 나라로 나가서 아이 교육에 올인하며(지금도 올인 중이다) 지내는 게 맞다고 확신하는데. 지금 신랑이 나갈 수 있는 나라는 이 동기가 원하는 나라가 아니어서 갈등이 많다.

 그렇다면. 신랑은 그 나라에 보내고. 자신은 아이 둘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가서 아이 교육을 시키겠다고 한다.

 그렇게 각각 다른 나라로 가도 교육비가 지원이 된다고 하니 좋은 회사는 좋은 회사다.

 주말마다 독박 육아를 마다하지 않고 신랑에게 공부를 하고 오라며 집 밖으로 내모는데. 신랑이 이번에도 영 영어시험을 못 본 것 같아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단다.

 

 

 사실 그 신랑은 외국에 절실히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니. 그냥 한국에 있고 싶어 한다.

 

 

 동기는 그런 신랑이 너무 답답하고 성에 차질 않아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작년에만 가방을 세 개나 질렀단다.

 그녀는 백화점 VIP회원이다.

 (같이 밥 먹다 저 얘길 듣고. 아이고 이년아~ 하며 숟가락을 번쩍 들었다.)


 



 업종이 그렇기도 하지만.

 퇴직을 같이 했던 수백 명의 퇴직자 중에 좋은 곳으로 이직을 했다는 소식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나마 받았던 만큼이나 그 이상의 연봉협상에 성공한 이는 거의 드물다.

 받던 연봉의 반을 받고 이직하신 남자분은 크게 축하를 받았었다.

 1년 동안이나 아내에게 퇴직 사실을 숨긴 채 지내시다 자살하신 분도 있다.

 

 

 물론 나처럼 육아 때문에 관둔 여직원들이 많았다.

 어쨌든 당장은 신랑이 벌고 있기도 하고. 방목되는 아이들을 위해 결심을 한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는 당장 다시 일자리를 찾지 않는다.

 이번에 내가 알바를 나가면서 동기 카톡방에 같이 알바하자며 올렸더니.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부분이 거절했다.

 물론 그렇게 말하자면 나도 아이 때문에 길게 일을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남자들 경우는 다르다.

 떠밀려서 원치 않는 퇴직을 한 경우도 많고. 대부분 집안의 가장들이니.

 어찌 됐건 열심히 다시 일을 찾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해마다 수천 명의 동종업계 퇴직자들이 줄줄이 떠밀려 나오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동종업계로 다시 취직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정말 솔직히.

 내가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면 퇴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건강이 나빠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하나 한 집안의 외벌이 가장이었다면 나는 직업을 내려놓고 쉬었다 가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언젠가 더 좋은 일을 찾을 거야.. 하는 맘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순순히 접어 버렸을 것이다.

 앞서 간 퇴직자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그들의 이직이 얼마나 힘든지. 때로는 얼마나 처참한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왔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하고.

 짜릿한 성공담을 얘기한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짜릿하고 아름다운 성공담은 그리 많지 않다.

 몇백 명에 한 명쯤 축하받을 사람이 있고. 나머지 사람들 중에 꽤 많은 사람이 퇴직을 후회했다.

 

 

 

 배우자가 죽는 스트레스 다음의 스트레스가 이직을 해서 새로운 일터에서 일을 해야 할 때라고 한다.

 

 같은 일터에서 업무분장만 바뀌어도 한두 달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점이 새로 발령 나도 또 되게 심란하다. 새로운 사람과 다시 친해지고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점에서 본점 갔다가 영어 못해서 쫓겨 나오거나 도망 나오기도 하고.

 어떻게 어떻게 버틴다 해도 외국인 상사에게 영어로 욕을 먹기도 한다.

 중년의 아저씨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게 있다. 어디 쪽팔려서 말을 안 하는 거지 누구나 쑥쑥 영어가 느는 건 아니다.

 외국계 회사는 대부분 연봉계약직으로 계약을 하고.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다 느껴지면 가차 없이 메일이 날아온다.

 당신 해고라고.

 한국기업처럼 사람이 사람한테 설득하고 퇴직을 종용하고 그런 거 잘 없다.

 어제까지 일하던 책상에서 주섬주섬 짐 꾸려서 나가줘야 한다. 그런 경우를 주변에서도 종종 듣는다.

 


 

"당신이 말하는 그 모든 이유는 핑계로 들려... "

 

 

 이 말이 내 가슴을 때렸나 보다.

 솔직히는 좀 울컥했다.

 내 동생이어서 그랬을까.

 한 집안의 가장으로써. 새로운 모험에 대한 압박감이 얼마나 심했을지 가슴이 저렸다.

 방향성은 분명하다.

 누구나 원하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좋은 나라에 좋은 회사에. 아이 교육에. 더 좋은 연봉까지.

 그러나 모든 게 새롭다. 터가 바뀌고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언어로. 이직하는 그 순간. 내가 받는 연봉의 일을 해내야 한다.

 

 아무도 기다려주거나 봐주지 않는다.

 

 모든 상황은 나 혼자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 그 압박감을 이겨내면 한 단계 올라갈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순간까지 모든 매 순간을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솔직히. 모든 이가 그 상황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걸 '핑계'라고.. 말한다면.

 속상하다.

 많이 속상하다.

 

 

 

 

 어쩌면 저 말이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넌 핑계를 대고 있는 거잖아? 이것저것 겁내고 따지기만 하고 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지?"


 



 동생은 그 선배의 거듭되는 설득과 올케의 설득으로 다시 맘을 바꿔먹었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도전하는 쪽으로.

 방향성은 맞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도 응원한다.

 너의 그 압박감을 모두 이겨내고 멋지게 성공해 내기를.

 다만. 누나의 입장에선 너의 그 조심스러운 거절을 '핑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마.

 나는 그 마음이 이해되고 실은 너무 안쓰럽다.

 

 

 그래도. 나는 응원한다.

 너의 새로운 시작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