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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y 15. 2016

알바를 나가요

일을 하고 돈을 버니. 돈 쓰는 재미가 또 쏠쏠하군요.


 예정됐었던 알바가 시작되었다.

 기존 같이 일했던 멤버들이 거진 다시 모여 분위기가 좋다.

 다녔던 회사에서 진행되는 전산 테스트 일인데. 회사 소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회사의 계약직을 관리하는 또 다른 회사에 계약서를 쓰고 단기간씩 일을 하게 된다.

 

  

 새롭게 도입되는 전산에 대한 테스트이니.

 퇴직자들 중에 사람을 쓰면 진행이 편할 것이다.

 15년에서 25년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이것저것 업무에 경험이 많아 대충 설명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기존(작년)에 했던 알바는 대출서류를 검토하고 도장 찍고 스캔해서 넘기는 일이라 정말 너무 편했다. 중간에 사람이 와서 관리를 하거나 간섭할 일도 없었고 우리끼리 넓은 회의실에 앉아 종일 서류만 보며 일정 안에 끝내면 그만이었다.

 어. 이렇게 편하게 일하고 간식받아먹고 커피 받아마시고 돈 받아가도 되는 건가 할 정도로.

 봄날에 기분 좋은 알바였었다.

 

 

 이번 일은 새롭게 도입될 전산에 대해 미리 테스트를 하는 일이니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새로운 시스템을 미리 설명 듣고 숙지한 상태에서 지점에서 일어날 전산을 미리 조작해보고 에러를 찾아내야 한다.

 정상적으로 넘어가는 건이나 에러를 일으키는 건들은 모두 스캔을 떠서 또 다른 전산에 입력을 하며 보고를 해야 하는데 것도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질 듯.

 다만 여러 부서의 사람들이 몇 명씩 같이 앉아 기간 중에 같이 협업해야 한다니 그건 좀 불편하겠으나.

 어차피 다녔던 곳의 직원들이라 돌아가는 분위기는 금방 적응될 것이다.




알바 멤버들은 각자 경험치가 다르고 개성이 다르니 각자의 역할이 있다.

 

 같이 퇴직한 내 동기는 -연봉협상이 아닌- 일당 협상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우리가 뭐 돈 없어서 일하는 사람들도 아니고요.(나는 돈 없어서 하는데. 얘는 강남 아줌마라 바람 쐬러 나온단다) 일당은 최소 이 정도 수준은 맞춰주세요. 수수료 너무 떼 가시지 마시고요. 야근은 못해요.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 없으니까 시간 내에 못 맞춰지면 그건 저희 탓 아닐걸요~?

 간식비는 모자라면 더 주실 거죠?

 휴가는 하루 정도 쓰게 해주세요. 한 달 넘어 일하는 거잖아요. "

 

 오. 저 싹수없는 이쁜 것.

 우린 흐뭇하게 팔짱 끼고 앉아 옆에서 열심히 응원을 한다.

 저 싹수없고 직설적인 말이 계약서 받아가시는 부장님을 찔끔찔끔하게 만들어 꽤 효과를 거두곤 했다.

 우리를 관리하게 되는 회사에서 30% 정도의 수수료를 떼어간다는 얘기를 들어온 것도 이 동기이다.

 그러니까 일을 진행하는 예전 직장에서 10만 원을 준다고 치면. 우리를 관리하는 알바 회사에서 3만 원을 가져가고 우리에게 7만 원을 준다는 것. 일마다 돈이 다르고, 수수료율도 좀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간식비를 주거나 가끔 밥을 사러 오시는 부장님(우리 알바팀 관리하시는 부장님)도 우리가 일을 끝까지 잘 끝내줘야 다행인 거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관리를 열심히 하시는 것 같다.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으신 왕언니는 역시 경험이 제일 많으신 베테랑이라.

 오늘처럼 연수만 받는 날에도 거침없이 질문을 쏟아내며 날카롭게 지적한다.

 에러는 담주부터 찾으면 된다는데-지금은 교육 중이니- 벌써부터 매의 눈으로 찾아내어 상대를 당황시킨다.

 물론 아주 공손하게.

 그러나 그런 질문들을 받은 그분들은 그 질문이 반가울 것이다.

 어차피 그 부서에서 직원들끼리 해보려다 일의 양이 너무 방대하여. 어렵게 추가 비용을 승인받아 우리를 부른 것이고.

 지적 많이 받고 허점을 많이 발견해줘야 에러 없이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므로.

 왕언니 막 질문하시면 또 우리는 응원한다.

 오. 우리까지 막 능력 있는 것 같아. 

 근데 난 아직 뭔 말인지 잘 모르겄소. 이를 어쩌나.

 

 

 

 기존에 이런 전산 테스트 쪽으로 일을 주로 해서 경험이 많은 한 분은.

 상황 정리가 빠르고 요구조건이 확실하다.

 전산 권한 승인에 시간이 많이 걸리니 우리가 일을 하기 전에 권한 승인부터 미리 받아주시라.

 이런이런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 이 시스템을 깔아줘라.

 4000건을 두 번 반복은 불가능하다. 한 명당 하루 25건 이상은 불가능할 테니 한 번만 가자.

 오. 역시 뭘 알아야 요구를 하는구나.



 나는.

 어제오늘 연수중에 말귀를 못 알아들어 질문을 하나도 못했다.

 눈 부릅뜨고 열심히 듣긴 했으나. 나 빼고 다 알아듣는 것 같은 분위기에 조용히 손을 들어 이거 하나는 부탁드렸다.

 "설명으로만 하지 마시고 프린트된 설명서를 먼저 주세요. 이렇게 듣다가는 월요일 되면 기억이 하나도 안 날 것 같은데요."

 설명을 멈추시고 프린트하러 가신 틈을 타 간식을 나눠주고 화장실에 갔다.

 나는 주로. 심드렁하게 말끼 알아듣고.

 어차피 해봐야지 뭐. 설명 듣고 뭘 알아. 

 좀 하다 익숙해지면 조용히 성실하게 일하며 진도는 부지런히 뺀다.

 뭐 하나라도 역할은 해줘야 하니까.

 

 

 

 

 어제오늘은 연수를 받고 회의 비스름한 걸 하느라 오후 2시부터 5시 정도까지만 진행됐다.

 여러 부서에서 직원들이 나와 서로 협업하는 모습이 새삼스럽고 신기했다.

 본점 있었으면 이런 일들을 진행하며 회의하기도 하고 했겠구나.

 우리야 스트레스 없이 시키는 대로 기간 내에 주어진 일을 끝내주면 된다.

 기간 내에 일이 제대로 끝나지 않으면 본인은 잘릴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시며 스트레스를 호소하시는 직원(이 일의 전체 책임을 맡고 계신 분)분이 계셨으나.

 그렇게 말씀하셔도 우리는 야근은 절대 못한다고요. 얼렁 가서 애 밥도 챙겨줘야 하고, 숙제도 봐줘야 하는데.

 암만 협박해봐야 우리가 꿈쩍도 안 하고 티 안 나게 개길 수 있는 건 분위기 돌아가는 게 뻔히 보이는 '다녔던 직장'이어서 그런 거고.

 그래도 뭐 걱정은 마시라.

 멤버 중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 없고 웬만하면 기간보다 빨리 말끔하게 끝내고 나온다. 일당은 해야지 싶으니까.

 그리고 그 스트레스받으시는 거 이해되고. 어찌 됐든 다녔던 직장이니 약간의 동료애나 측은함이 있다.

 실제로 알바생중에 배우자분이 아직 이 직장에 다니시는 분도 있고.

 내 배우자도 예전에 여기 있었고.

 아는 사람도 우글우글 있으니.


 



 알바 나가기 바로 전날까지 그놈의 '티 안 나게 시크하고 댄디해 보이는' 마이를 사려고 돌아다녔었다. 실은.

 두리번거리며 백화점의 여성 코너를 열심히 돌아다니다.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지하철 택배를 하시는 어르신을 봤다.

 하얀 와이셔츠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 구두까지.

 그러나 어깨에 이고 지고 열개가 넘는 종이가방을 내려놓는 그분의 이마에 땀이 흥건했고 너무 지쳐 보이셔서 마음이 측은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또 내 모습일 것 같아. 그대로 집에 돌아와 셔츠를 다렸다.

 

 내가 평소에 택배일을 하시는 어르신들을 무시한다거나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그분들의 노동을 존중하고 때론 존경한다. 그건 그럴만하고 나는 그분들을 응원한다. 어르신, 힘내세요~ 하는 쪽.

 하지만. 그 날의 그분은.

 하필 날씨가 더워 다들 가벼운 옷차림에 산뜻하게 쇼핑을 다니는 와중에.

 어떤 사연이나 사정으로 양복을 입고 그 일을 하시고 계신 건지도 모른 채로.

 (어쩌면 본인의 일에 대한 예의로 아침마다 양복을 입고 상쾌하게 출근하실 수도 있는 거고. 차마 배우자에게 사정을 얘기하지 못해 회사에 출근하는 척하며 정장을 하고 나오실 수도... 뭐 이런저런. 나름의 이유나 사정이 있을 테지요.)

 나는 그저 내가 알바를 나가면서도.

 굳이 '티 안 나게 시크하고 댄디해 보여 기죽지 않을' 마이를 사려고 한 게 좀 많이 창피해져 버렸던 것 같다.

 그건 좀 나답지 않은데.

 왜 자꾸 기죽어서 엉뚱한 허영인가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날엔 갖고 있던 정장에 평소 신지도 않던 힐을 신고 나갔다가.

 양쪽 엄지발가락에 이따시만한 물집이 잡혔고.

 둘째 날엔 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편한 차림에 단화, 얇은 바바리를 입고 갔다가.

 비도 오고 서늘할 거란 날씨가 왜 또 어찌나 화창한지.

 내가 입고 간 바바리가 너무 덥고 초라하게 느껴져.

 근처 옷가게에 들어가 여름 마이를 하나 사 입고 가긴 했다... 고 솔직히 고백한다.

 아.. 어쩔 수 없었다.

 초라했다고! 바바리가 날씨에 맞지 않아 초라했다고..!

 그리하여 어쨌든. 이틀 치 일당은 이미 써버린 상태.




 내일부터는 9시 출근이다.

 일주일간은 시스템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고 하니 크게 부담은 없으나.

 다들 알아듣는 듯 끄덕이는 와중에. 나도 알아듣는 척 끄덕이긴 했으나.

 실은 뭔 말인지 전혀 말끼를 못 알아먹었는 탓에.

 이따가 받아온 서류를 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성실하고 깔끔하게 일을 끝내어 부디 그 스트레스 만땅에 지쳐 보이는 관련 직원분들의 맘이 좀 편안해졌음 싶다.

 그분들, 저 테스트를 일주일 정도 몇 명이서 같이 하다.. 그랬다네요. 동시다발적으로다가.

 아. 도망가고 싶다..라고.

 워워.. 퇴사는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라고요. 적어도 명퇴 때까지는 버티셔야죠..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이거 좋다.

 나는 요즘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이 느낌이 참 좋다.

 기분이 산뜻하고.

 돈 번다고 은근 이것저것 물질적 요구를 해대는 요 영악한 딸내미한테 못 이기는 척하며 쓸데없는 문구류도 사주고, 어제는 참 조르는 족발(엥.. 족발을 언제 먹어봤지. 나도 거의 안 먹어봤는데)까지 시켜주었더니 야무지게 뼈까지 뜯어먹었었다. 

 아. 부지런히 돈 벌어서 내 딸 여름옷도 좀 사주고.

 날씨 더 더워지면 출근용 내 옷도 슬쩍 하나 더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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