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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Jul 04. 2016

알바를 끝내고

알바비로 뭘 할까요. 끊임없이 소소한 사건이 발생하네요.

 알바가 끝났다.

 한 달 반의 길지 않은 알바였지만 다시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게 만만치 않았고.

 이내 익숙해지고.

 끝자락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일이 재밌었다.

 

 

 6월 말 일을 끝내고.

 이틀 뒤 월급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내가 알바를 나가기 전인 4월은 신랑의 상여금이 나오는 달이였다.

 꼬박꼬박 날짜를 챙기지 못하는 영 덜렁거리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불어나는 마이너스를 생각하다 4월이 상여금이 나오는 달이라는 걸 생각해냈다.

 월급날이 되어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월급 외에 별 다른 얘기가 없길래.

 상여금 나오는 달인 거 아니까 꼬불치지 말고 순순히 보내라.. 는 카톡을 보냈다.

 

 

 한참만에 온 답변은.

 이번에는 상여금이 안 나와 못 보낸다는 얘기.

 나는 의심반의 심정으로 이 사람이 또 무슨 꼼수인가.. 하다 또 이내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술을 먹고 들어온 신랑은 내게 불쌍한 사슴 같은 눈망울로(더럽게 불쌍해 보였다)

 나도 네게 상여금을 주고 싶었다.. 근데 이번에 그게 없다더라..

 내가 오늘 술 먹고 상사한테 막 뭐라 했다..

 회사가 어렵다며 슬쩍 넘어가려는 대표에게도 대들었다는데.. 그건 뭐. 알 수 없고.

 

 직장생활 20년 만에 거진 처음으로 상여금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쇼크와 위기감.

 그리고 마누라에게 목돈 쥐어주고 한껏 으슥해 보이고 싶었을 저 더럽게 불쌍한 중년의 남자의 넋두리에.

 등을 토닥이며 약속했다.

 내가 알바비 받으면 니 다 주께.

 상여금 안 받았다고 대들면 쓰나.

 누나가 니 다 주께.

 니 다 써라...

 

 

 

 그로부터 한 달 뒤 어찌어찌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일정 부분의 상여금이 입금되었고.

 신랑은 조금 으슥 거리며 내게 입금을 해주었다.

 고마웠다.

 수고했어. 신랑.



 맘 약한 내가 불쌍한 신랑에게 기팍팍 차원으로 꽂아주려던 내 알바비가 드디어 입금되었다.

 한 달 반가량의 월급이 한꺼번에 들어오니 꽤 쏠쏠했고.

 간만에 받아보는 월급에 기분이 업.

 까짓 거 상여금도 나 다 줬는데.

 이거 신랑 주고 기분 좋아지게 해줘야지.

 그나저나 신랑이 쓰는 계좌가 뭐였더라..

 

 나는 인터넷뱅킹으로 들어가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예전에는 신랑 인증서를 내가 관리했었는데 한 3년 전 쯤에던가.

 다른 은행에 돈을 꼬불치다 들키더니 인증서를 싹 걷어가 숨기고 있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나 은행원 출신이다.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면 거래내역은 볼 수 있다.

 그것도 눈치를 챘었는지.

 '계좌숨기기'를 해두었더만.

 내가 또 해제해서 계좌는 보이게 해뒀었다.

 

 어디 보자.. 계좌 계좌..

 어라.

 잔고가 왜 많지.

 용돈이 떨어질 때가 됐을 텐데.

 간만에 또 안 보고 싶은 거래내역을 보게 되는구나.

 

 

....

..

.

.

.

 

 내가 모르는 수천의 돈이 입금되고.

 다시 그 반이 나가고.

 상여금을 받던 날엔 상여금만 내게 보내고.

 월급은 보내지 않았었던 거였다.

 그 와중에 시어머니에게 또 이백의 돈이 송금.

 

 도대체 무슨 거래가 일어난 것일까.

 

 시어머님 사시는 집을 팔아 돈으로 내놓으라고 하셨었는데.(그 집은 신랑 명의이고 돈도 우리가 다 낸 셈의 집이다)

 그 집을 팔고 다시 조그만 집을 산 것인가.

 시어머니에게 입금된 몇백의 돈은 이사비용인 건가.

 집마저 처분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왜 내게 상의도 없이.

 조그만 집을 사면 그 차액을 당신에게 달라고 하셨었다.

 돈을 쓰고 싶어서 궁리 끝에 오른 집값을 계산해 팔고 조그만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셨었으니까.

 

 

 그 짧은 찰나에 또 알고 싶지 않은 수만 가지 경우의 시나리오가 지나가고.

 나는 마음이 싸늘해졌다.

 

 모른척할까.

 모른척하며 또 며칠 지켜보다 슬그머니 물어봐야 하나.

 어머님께 직접 전화를 해볼까.

 아냐. 돌직구.

 난 이제 내면연기하기도 넌더리가 났다.

 

 '이 돈들 뭐야.'

 

 한참을 눈치를 살피더니.

 내가 돌직구 질문을 딱딱 찍을 때마다 여지없이 변명의 답변이 돌아온다.

 큰돈은 자기 돈이 아니고. 누군가 환전을 부탁해서 이번 출장길에 가져가기로 했으며.

 남아있는 잔고도 큰돈은 자기 돈이 아니란다.

 

 시댁으로 들어간 돈에 대해서는 아예 묻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묻고 싶지 않으니.

 너도 부디 내게 아무 말도 말아라.

 

 

 그중에서도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월급을 보내지 않고 말도 없이 꼬불친 것.

 물론. 어머님이 또 뭔가 요구를 하셨을 테고.

 내게 말하기 뭣해서 그렇게 했으리라고 예상도 되지만.

 나는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러한 상황들을 더 이해하고 겪으며 넘기고 살아야 할까.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부모님의 염치없는 욕심.

 여태껏 시댁에 들어간 돈이 3억이 넘는다.

 7년 전쯤부터는 매달 모든 생활비와 세금, 보험비까지 부담하고 있다.

 우리 집은 매달 마이너스이고.

 그나마 가끔 들어오는 상여금으로 그걸 갚고 조금씩 저금도 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시부모님의 노후를 봉양하기 위해 우리 부부의 노후가 저 멀리 날아가고 있다.




 우선 받은 월급으로 친정아버지께 30만 원을 보내드렸다.

 아버지. 맛있는 거 사드세요. 나 월급 받았어요.

 무뚝뚝한 아버지는 항상 내 용돈을 사양하며 돌려주곤 하셨는데.

 이번에는 조금 고마운 티를 내시며 잘 받아주셨다.

 

 내가 단 30만 원을 우리 아버지께 드리고도 이렇게 뿌듯하고 좋고 죄송한데.

 당신은 시댁에 생활비도 모자라 이백을 또 보내드리고.

 얼마나 기분이 좋고 뿌듯했겠어..

 너는 좋겠다.

 앞뒤 안 보고 그렇게 보내드릴 수 있어서.

 나도 우리 부모님께 턱턱 목돈 드리며 살고 싶었는데.

 애 학원비 생각하고. 우리 생활비 생각하고. 노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50을 보낼까 30을 보낼까 고민하며 지질해지고 있을 때.

 너는 참 시원하게 효도를 하는구나.

 너는 좋았겠다.

 기분이 좋았겠다... 그래 좋았겠구나.

 



 꽤 오래 같이 산 부부 사이에도.

 가슴이 싸늘해지는 건 한 순간이다.

 항상 참는 쪽이 참게 되고. 참다 보면 또 참아지고.

 참다가 참다가 가슴 한편에 응어리가 지고.

 가슴 싸늘해지며 차갑게 식어가는 날이 또 쌓이고.

 

 그러나 세월이 또 지나.

 신랑이 늙어가기 시작하면.

 이내 이 남자가 불쌍해지면.

 정말 이젠 상황이 이도 저도 아닌.

 한숨만 푹푹 나오다가도.

 이 더럽게 불쌍한 중년의 남자가.

 불쌍해지기 시작하면.

 상황이 끝이 난다. 끝이 나고 만다...

 아 진짜.

 제기랄.

 불쌍하고 지랄이야.



 꼬불친 돈이 창피했는지. 시댁에 보낸 사연모를 돈이 미안했는지.

 어김없이 술을 먹고 들어오는 저 주정뱅이를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말없이 안아주었다.

 늦게 왔네. 나 이제 잔다.

 겸연쩍은 얼굴로 어색하게 안아준다.



 그 며칠 뒤 출장을 간다며 새벽 일찍 짐을 싸서 신랑이 나간다.

 업체 사람들 만나러 외국 간다는데.

 한 여름 운동하며 갈아입을 멀쩡한 속옷도 개수가 부족 하대고.

 입고 나가는 폼이.

 면바지에 남방인데.

 남방이 무슨 와이셔츠 같기도 한 체크 옷이라 영 구색이 그렇다.

 운동할 때 입는 옷도 몇 년이나 되어 산뜻하지 못하고 헐었던데.

 그렇게 그지같이 입고 출장을 간다고 나서는 신랑이.

 나는 또 불쌍했다.

 

 너는 니 옷 하나 제대로 못 사 입고 죽도록 일하면서.

 저 불쌍한 행색의 아들을 시부모님은 모르시겠지.

 그저 잘난 아들이라 믿으며. 그 끝없는 허영을 아들에게 내보이며 애 같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내 신랑을 잡고 흔들고 계신다.

 




 내 알바비는 끝내 신랑의 계좌에 입금하지 않았다.

 불쌍했지만. 미웠고.

 불쌍했지만. 가슴이 싸늘해졌다.

 다만 불쌍해서.

 좋은 메이커를 파는 할인매장에 가서 예쁜 티 두 개와 남방을 하나 샀다.

 제발 출장 갈 때는 그지같이 입고 가지 말고.

 운동할 때도 이쁘게 입으라고.

 

 나머지 돈은 내가 다 쓸 거다.

 우리 딸내미 이쁜 티랑 원피스도 한벌 사줬고.

 먹고 싶다던 음식도 사주고.

 비싼 디저트 가게에 가서 망고빙수도 사줬다.

 책도 사주고.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그림도구도 사줘버렸다.

 삔도 사주고 고기도 월수금으로 먹였는데.

 돈이 한참 남았다.

 

 

 남은 알바비로 뭔가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고 싶다.

 그래 봤자 그리 큰돈도 아니건만.

 이번 알바비로는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나 기분 좋을 소비만 해대고 싶다.

 

 

 나 로또 되면 하고 싶었던 거.

 그런 것들이.

 이 알바비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쓰지 못했던.

 내 어리석은.

 내 바보 같은.


 

 




 9월부터 넉 달간 또 일이 잡혀있다.

 아이 방학엔 같이 지내다가 선선해지면 다시 일 시작이다.

 그때는 월급 받으면 내 친정아버지께 꼬박꼬박 50만 원씩 보내드리고 잔뜩 생색을 내야 겠다.

 

 

 신랑은. 국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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