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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서정 Mar 14. 2024

실업급여

실업급여는 공돈인가?

작년 5월까지 실업급여를 받았다. 퇴직 이후 9개월 동안 하루 66,000원씩 4주 마다 184만원을 받았다. 실업급여를 받는다 하니 친구가 “너는 고용노동부의 기간제 공무원으로 재취업하였다.” 라고 농담하였다. 일할 때 보다 많이 줄었지만 실업자에게 월 200만원 수입은 적지 않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대부분의 일자리가 월 200만원 정도의 최저시급이었다. 돌봄, 경비, 청소나 주차관리 구인이 많았다. 나는 그 분야에서는 초보이다. 어느 분야 어느 곳에서나 고수인 전문가는 존재한다. 남들이 잘하는 분야에 뛰어들 자신이 없어 미적일 때 실업급여는 훌륭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30년간 월급쟁이로 살아 왔고 내가 하는 일은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으나 나를 가장 잘 아는 조직에서 잉여 인력이라고 퇴출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새 일을 해야 하나 자신이 없었고 덜 절실했다. 실업급여는 든든하게 비빌 언덕이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비 자발적으로 퇴사하고, 일정 기간 이상 고용보험료를 냈고, 구직을 위해 노력하고 그 증빙을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 홈페이지에는 실업급여를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가 실직하여 재취업 활동을 하는 기간에 소정의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을 극복하고 생활의 안정을 도와주며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해주는 제도” 라고 설명한다.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공고하면서 단서 조항을 달아 놓았다. “이번 신청자에 대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라고.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자발적 퇴사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희망퇴직이라면 자발적 퇴직이 아닌가? 희망퇴직은 회사가 희망한 퇴직이다. 대다수 직원은 바라지 않는 퇴직이다. 굳이 한자를 빌어 쓴다면 희망(希望, 바랄 희 바랄 망)이 아니라 희망(稀望, 드물 희, 바랄 망) 일 것이다. 직원 개개인은 재직중에 있어서는 안되며 발생하더라도 어쩌다 드물게 생겼으면 하고 바라는 퇴직이다. 

희망퇴직을 강요받고 아내와 상의했다. 만화 미생의 명언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가 맞는 말일 것이다. 내겐 회사가 지옥이 될 수 있었다. 퇴직하지 않는다면 회사 인사팀은 저승사자로 변할 것이고 나는 지옥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회사는 내게 며칠 여유를 주고 7월말까지 희망퇴직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7월 31일은 일요일이었다. 인사팀장에게 주말에 생각해 보고 월요일인 8월 1일에 가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마음 속은 이미 정했지만 미련이 남았다. 주말 동안 미련 때문에 갈등했고 잠을 잘 수 없었다. 8월 첫날 월요일에 출근하자 인사팀장에게 퇴직하겠다고 알렸다. 건네 주는 희망퇴직 신청서를 작성하고 자리에서 미적거리며 PC의 파일을 정리하고 A4 박스에 집에 가져갈 짐을 정리하였다. 5시전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퇴근하였다. 5시반이 퇴근 시각이지만 조금 일찍 회사를 나섰다. 퇴근 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 직원들과 마주치기 싫었다. 회사를 나서 집으로 걸어오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생각했다. 그는 저승에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가까스로 찾아 이승으로 향한다.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는 “절대 뒤를 되돌아 보아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에우리디케를 보내준다.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보아 아내를 다시 저승으로 빼앗긴다. 회사 출구를 나와 집으로 향하면서 회사라는 전쟁터 이자 지옥을 자꾸 되돌아 보았다.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고용노동부에 비 자발적 퇴사자라고 신고를 해야 한다. 인사팀에서는 서류 작업이 며칠 걸릴 터이니 퇴사 후 여유를 두고 고용노동부에 신청하라고 하였다. 출근할 때는 아침잠이 꿀맛이었는데 백수가 되니 눈이 일찍 떠졌다. 멀리서 들리는 지하철 기적 소리를 들으며 어렴풋이 잠이 깼다. 지하철 소리를 들으며 좀 더 잘 수 있겠구나 하면서 꿈속을 헤매다 아침을 맞이 했다. 백수로 일주일을 보내고 고용노동부에 가서 실업신고를 했다. 번호표를 받고 상담을 하니 담당 직원이 아직 회사에서 퇴직 서류를 보내지 않았다고 하면서 일단 실업신고는 접수하겠다고 했다. 어떤 회사는 직원을 구조조정 하고서도 자발적 퇴사라고 신고하여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있다 한다. 신고 후 실업교육을 1시간 받았다. 넓은 교육장에는 중년 남성 보다는 여성이 많았고 젊은이도 꽤 있었다. 백명 이상이 모여 교육 아닌 강의를 들었다. 실업급여란 무엇이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알려 주었다. 특히 부정수급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실업급여(구직활동 중 지급하기에 구직급여라고 한다)를 받기 위해서는 한달에 한번씩 구직활동을 하고 증빙을 제출해야 했다. 실업급여는 나이와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최소 4달 많게는 9달까지 받을 수 있었다. 나는 9개월을 받을 수 있었고 구직활동을 처음에는 월 1회, 후반기에는 1주에 한번 해야 했다. 구직활동 방법은 다양했지만 정부에서 운영하는 워크넷을 이용하였다. 워크넷을 이용하면 구직활동 증빙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구직 사이트를 이용할 경우 구인공고 화면과 구직신청 화면을 캡쳐하여 고용부에 제출해야 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월 1회 구직활동 의무가 있었지만 스스로 빨리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워크넷에 들어가서 열심히 구직 신청을 했다. 결과는 서류 탈락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내 이력서를 열람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헤드헌터 업체에 근무하는 친구는 “45세 이상의 구직자는 서류를 보지도 않아.” 라고 했다. 내가 했던 업무와 관련이 없는 다른 일을 해 볼까 하고 찾아 보니 급여가 적었다. 대부분 최저시급이거나 시간당 10,000원 정도이었다. 실업급여가 월 200만원 정도이니 일하고 최저시급을 받느니 차라리 실업수당을 받는게 나았다.  

실업수당이 끝났다. 9개월짜리 고용노동부 임시직 계약이 끝난 셈이다. 직업을 찾기 위해 구직 활동을 했고 몇 업체 면접도 보았다. 근무조건도 급여도 마음에 들지 않아 포기했다.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글을 쓰는게 좋았다. 요즘 정부에서 실업급여를 줄이겠다고 한다. 실업급여로 명품을 산다느니 해외여행을 다닌다느니 하면서 심지어 ‘시럽급여’ 라고 비아냥거린다. 고용노동부 의도대로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을 극복하고 생활의 안정을 도와주는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아니면 명품 값을 대폭 인하하고 해외 항공료는 구간에 상관없이 KTX 수준으로 내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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