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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서정 Mar 14. 2024

주산학원

주산을 배워 학교에서 시험결과 정리하기

국민학교 다닐 때 주산학원에 다녔다. 아마 4학년 쯤 이었을 것이다. 주산학원에 다니면 계산실력이 늘고 계산능력이 좋아지면 산수(그때만 해도 학과목이 수학 아닌 산수이었다)도 잘하고 산수를 잘하면 학교성적이 나아질 것이다 라는 어머니의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수학의 기초는 암기와 반복이다. 1+1=2 라는 당연한 명제를 논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더욱 복잡하다. 단순하게 외우는게 증명하는 것보다 쉽다. 수학도 많이 외워두면 쉬워진다. 주산은 단순한 계산을 반복하여 연습하고 연습한다.

주산학원의 수강생은 많지 않았다. 반이 3개 정도 있었고 내가 들어간 초급반은 10여명 정도 있었다. 초급반은 강사가 칠판 앞에 대형 주판을 세워 놓고 수업을 했다. 주산의 계산 원리와 주판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주산을 주판을 이용하여 계산을 하는 수업이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주판알을 위로 아래로 움직여 계산을 했다. 주산은 우리가 공책에 계산하는 방식과 달리 큰 수부터 작은 수 순서로 알을 튕겨 계산했다. 주판은 한 줄에 마름모 꼴의 둥근 알이 꿰인 직사각형 틀이다. 한 줄에 5 단위를 나타내는 알 하나와 1 단위를 표시하는 알 4개가 가로막대로 나눠있어 한 줄에 5개의 알이 있다. 초급자인 경우 전체가 열댓 줄인 주판으로 충분했으나 실력이 늘어나면 20줄이 넘는 긴 주판을 사용했다. 실력이 늘수록 계산 단위가 커졌다. 플라스틱 주판알 보다 대나무로 만든 것은 비쌌다. 알을 꿴 줄은 대나무 또는 쇠 철사로 되어 있었다. 대나무를 만든 주판은 계산하면서 튕기면 소리도 경쾌했고 부드러웠다. 주판알이 부드럽게 움직여야 계산을 빨리할 수 있기에 주판을 매일 손질했다. 주산학원에 등록하고 새 주판을 사서 길들이기 위해 양초로 주판알과 줄을 닦아 번들번들하게 윤을 냈다. 뻑뻑하던 주판알이 부드럽게 굴렀다. 위 아래로 튕기면 바로 반응하고 지나치지 않아야 했다. 주판은 잘 굴렀으므로 장난감으로도 이용했다. 수레처럼 타고 놀거나 자동차 처럼 굴려서 시합을 하기도 했다. 학원 강사는 주판을 체벌의 도구로도 사용했다. 숙제를 하지 않거나 성적이 좋지 않으면 학생을 불러내어 주판으로 머리 정수리 부위를 밀었다. 당시 남학생은 상고머리로 머리카락이 많지 않았기에 주판으로 머리를 밀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주산학원의 강사 겸 원장은 30대 남성이었다. 학생들이 노총각이라고 놀렸는데 키가 크고 미남이었다. 원장은 항상 수업에 들어올 때 겉이 초록색인 맨솔 담배와 ‘원비’라는 자양강장제를 가져와 강의 탁자 위에 놓았다. 원비는 수업하다가 조금씩 마셨고 담배는 쉬는 시간에 피었다. 당시 자양강장제로 박카스가 유명했는데 원장은 항상 원비만 마셨다. 하루에 몇병씩 마신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외국에서는 박하향이 나는 맨솔 담배를 여성들이 애용한다고 하던데 원장은 맨솔 담배만 피었다. 원장은 강의 중이라도 학생들이 연습을 하는 동안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고 은은한 박하향을 맡을 수 있었다. 주산학원에서 강사의 역할 중 하나가 학생이 계산할 수 있도록 숫자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특유의 억양으로 ‘이백사십구만 이천사백팔십구 원이요 사천 칠백팔십이만 육천사백칠십 원이요 등등’의 숫자를 계속 부르면 학생들은 주판에 코를 쳐 박고 열심히 주판알을 위아래로 튕겨야 했다. 매일 수백 수천번 숫자를 큰소리로 불러줘야 했으니 목을 보호하기 위해 음료를 마셨을 것이다.

나는 주산 공인 2급 자격을 땄다. 학생이 일정 수준이 되면 원장이 학생을 모아 주산시험에 응시하고 같이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보았다. 2급 시험에 합격하니 원장이 이제 암산을 연습하라고 하였다. 암산은 주판을 사용하지 않고 머리속으로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주산실력이 올라갈수록 계산 단위가 커졌다. 백만이상 십억단위 20개 숫자를 계산했던 것 같다. 한번 계산하면 오차가 거의 없었다. 암산은 다른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십자리나 백자리 숫자를 계산하였다. 직접 주판을 이용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자니 어려웠다. 원장은 머리속에 주판을 상상으로 그려놓고 손으로 그 주판을 이용하여 계산하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주판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빈 책상 위에서 손가락으로 머릿속의 주판을 튕기다 보면 어느새 주판이 사라져 버렸다. 당시 TV에 서울여상 출신의 주산 9단이 출연했는데 십억 단위의 계산을 암산으로 아주 쉽게 했다. 은행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주산 실력이 필수였다. 암산을 좀 배우다가 주산학원을 그만 두었다. 학원장은 좀만 더하면 1급을 따고 1단으로 승단할 수 있다고 더 다니라고 했지만 핑계를 대고 그만 두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주산을 괜히 배웠다고 후회를 한 적이 있다. 입학하니 선생님이 신상 조사를 했다.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윤리 담당이었는데 주산을 할 줄 아는 학생을 조사했다. 몇 명이 손을 들었고 주산급수는 2급인 내가 가장 높았다.

중간고사를 마치는 날 담임선생님이 나보고 남아서 일을 도와 달라고 했다. 교무실에 가니 성적을 집계하고 통계 처리를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한 반에 70명 정도였다. 우리 학년의 국민윤리 시험 성적과 우리반의 시험성적을 정리해야 했다. 우리 반 학생 70명이 1번부터 70번까지 번호/이름/성적/과목 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학생별로 성적의 합과 평균을 계산해야 했고 과목별 합/평균을 계산해야 했다. 12 학급 전체의 윤리 성적도 집계했다. 주산을 하지 않은지 몇 년이 되었고 70명의 숫자를 반복해 계산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었고 선생님이 슬쩍 보더니 “한참 더 해야겠구나.” 하면서 집에 가서 부모님께 “오늘 밤 선생님 댁에 가서 일을 도와 드려야 한다” 라고 말씀 드리라 하셨다. 집에 가서 말씀드렸더니 다녀 오라고 하신다. 속으로 “애를 부려 먹는 그 딴 선생이 다 있어. 가지 마. 내가 말할께” 라고 하시길 바랬다. 그날 밤 선생님 댁에 가서 저녁을 먹고 밤 늦게 까지 주판으로 성적표를 처리했다. 가로 숫자를 더하고 세로 숫자를 더하여 맞추면 서로 일치해야 하는데 1 또는 2가 틀렸다. 어디선가 계산을 잘못했다. 다시 일일이 계산하고 검증하는데 엄청 짜증이 났다. 선생님이 내어 준 구석방에 앉아 계산을 맞추고 또 맞추었다. 그후로는 성적 집계에 동원되지 않았다. 2학년부터는 주산을 할 줄 안다고 손들지 않았다. 1학년 담임이 소문을 내지는 않았는지 2학년 담임은 방식이 달랐는지 나를 찾지는 않았다. 아마 나보다 주산 고수가 동원되었을 것이다.

최근 챗GPT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제는 누구도 주판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전자계산기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엑셀 프로그램을 쓰면 더 편리하고 빠르고 정확하다. 수많은 데이터도 입력만 해 놓으면 1초 내로 계산하고 통계를 내고 그래프를 만들어 보여준다. 많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려면 엑셀 함수를 알아야 하는데 챗GPT 를 이용한다면 엑셀의 함수를 외울 필요도 없다 한다. 질문만 제대로 한다면 챗GPT 가 다 처리해 준다고 한다. 아마 그래도 여전히 학교에는 덧샘과 뺄샘을 배우고 구구단을 암송하고 기하와 도형을 배우고 미적분을 공부할 것이다. 기계의 도움으로 우리의 삶은 더욱 편리할 것이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한다. 결과를 책임지려면 과정에 대한 검증과 확인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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