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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서정 Mar 28. 2024

파리

훈련소에서 파리를 잡고 수를 센 이야기

군 훈련소에서 훈련병은 취침시간에 두 시간씩 내무반 주위 불침번을 서야 했다. 번호순으로 불침번 차례가 정해졌고 일주일에 한번꼴로 순번이 돌아왔다. 불침번 순서가 첫번째나 마지막이면 운이 좋은 날이다. 먼저 불침번을 서고 좀 늦게 자거나 일찍 일어나면 되었으나 중간이면 힘들었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곤히 자다 일어나야 하는 것도 고역이고, 깊은 잠에 빠진 다음 차례 불침번을 깨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밤은 자정을 지난 불침번 순서이었다. 같은 시간대 2명이 불침번을 섰고 위치는 달랐다. 나는 내무반 복도 담당이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불이 환한 복도에 서 있었다. 한쪽 구석에 인사계 사무실이 있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방을 잘 주시하고 있어야 했다. 언제 당직이 나타나 점검을 할지 몰랐다. 불침번 대신 얼차려를 받다가 다음 순서를 깨운 훈련병도 있었다. 임무를 교대한지 몇 분 되지 않았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며 당직 사관이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불렀다. 잠이 확 달아났다. 얼른 뛰어갔다. 그 앞에서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의 목소리로 경례하고 이름을 밝혔다. 그는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순간 쫄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하면서 터질 듯한 불안감을 안고 들어갔다. 그는 한쪽 책상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책상 위에는 죽은 파리를 담은 상자가 하나 있었고, 그 앞에 편지지와 물풀 한통이 놓여 있었다. 나무 젓가락도 있었다. 편지지에는 훈련병이 그날 휴식시간에 잡은 파리가 한 줄 가지런히 붙어 있었다.

그날 아침 소대장의 지시가 있었다. 날이 따뜻해 음식물에 파리가 많이 꼬이니 쉬는 시간에 파리를 잡으라고 했다. 한명이 잡아야 할 목표도 알렸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60마리 정도였다. 파리채나 파리약을 주지도 않았다. 저녁에 실적을 점검한다고 했다. 훈련병이 가진 건 맨손과 옷, 운동화 뿐이었다. 명령이었고 저녁 점호시간에 검사한다고 하였으니 파리가 우글거리는 화장실이나 잔반 처리장이 있는 곳으로 몰려 갔다. 사람의 손으로 잡기에 파리는 너무 빨랐고, 운동화를 휘두르면 파리가 짓눌려 흔적 없이 사라졌다. 모자를 벗어 덮치면 상대적으로 잘 잡혔으나 파리를 꺼내다 놓치곤 했다. 잔반 처리장은 허리 높이의 시멘트 담으로 둘러 있었고 그 안에는 파리가 드글드글 했지만 음식물 쓰레기 위로 몸을 던질 수는 없었다. 대충 하다가 대부분 포기했다. 나는 10마리 정도 잡았다.

저녁 점호 시간에 지시사항 점검이 있었다. 각자 잡은 파리를 손위에 펼쳐 놓으라고 내무반장이 명령했다. “목표를 달성한 훈련병은 한 걸음 뒤로” 라는 외침에 반응하는 훈련병은 없었다. 모두 “머리 박어”를 몇 번 반복해야 했다. 팔굽혀 펴기를 하면서 불이행을 반성하고 군률의 엄함을 되새겨야 했다. 머리를 침상 끝 선에 맞춰 박은 채로 내무반장이 말하는 다음날의 목표를 여러 번 복창했다. 점호를 마쳤다. 

내가 할 일은 훈련병이 잡은 파리를 편지지 위에 가지런히 붙이는 것이었다. 기간병이 하다가 그만 둔 파리 붙이기를 계속해야 했다. 구식 편지지를 기억하시는가? 큰 테두리는 빨간색이고 줄은 파란색으로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체는 20-30줄이었을 것이다. 상자에 들어있는 파리를 한 마리 꺼내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물풀을 들어 몸통에 칠한 후 편지지 위해 살포시 놓았다. 그렇게 한 줄에 20마리씩 붙였다. 상태가 온전한 파리를 먼저 붙이고 일부 훼손된 파리는 옆으로 제쳐 놓았다. 다음 줄은 비우고 한 줄 건너서 윗줄에 맞춰 파리를 한마리씩 붙여 나갔다. 편지지 한 장을 정한 숫자의 파리로 채워야 했다. 마치 가로와 세로를 맞춰 열병식을 하는 군인처럼 한 눈에 전체가 들어오게 파리를 풀질해 나갔다. 처음에는 젓가락을 이용했으나 효율이 오르지 않았다. 파리를 집어 들고 몸통에 물풀을 칠하다 보니 다리나 날개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작업방식을 바꿨다. 먼저 편지지에 물풀을 칠했다. 윗줄에 맞춰 물풀로 20개 점을 찍고 파리를 한 마리씩 들어 물풀 자리에 놓고 살짝 눌렀다. 잘 붙었고 속도도 빨랐다. 두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차곡차곡 쌓인 전사한 파리 부대(적어도 연대 병력은 되지 않았을까)의 편지지를 보니 나의 작업 성과를 금방 측정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간밤에 있었던 일을 내무반 훈련병에게 이야기했다. 성과관리 방식에 모두가 놀랐다. 파리 포획 목표치가 대충이 아니었음을 통렬하게 깨달았다. 그날은 식사 시간에 주위로 날아드는 파리도 그냥 날려 보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내무반에서 빈둥대는 훈련병은 없었다. 모두 화장실로 잔반 처리장으로 뛰어 나가 파리를 잡았다. 파리를 으깨지 않도록 신발 보다는 상의를 둘둘 말아 파리채로 이용했다. 목표를 달성한 훈련병은 못한 동료를 도와주거나 잡은 파리를 거래했다. 훈련병의 위생을 위협하는 해충 잡기 목표를 그날은 달성했다. 훈련병의 체력이 좋아지거나 전투력이 충만해지지는 않았다.


과거 군대는 가장 선진적인 조직이고 엘리트 집단이었다. 여전히 정치 후진국이나 못사는 나라에서는 군인이 가장 교육받은 집단이고 선진제도를 습득한 집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사관학교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인기가 덜하다고 한다. 병역이 국민의 의무인 분단국에서 군대 가는 걸 기꺼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 면제자를 신의 아들이라고 부러워하고 일반 사병을 사람의 아들이라 한다.


현대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직장 다닐 때 많이 들었다. 회사에서 보통 일년에 상하반기 두번 평가를 하였다.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 항목과 지표를 정해야 한다. 상사는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고, 자신이 하는 일 중 중요한 일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인에게 평가는 진급과 급여에 반영되므로 무척 예민하다. 누구나 평가를 잘 받고 싶고 자신에게 유리한 지표를 적용하고자 한다. 영업직의 경우 실적을 객관적인 정량지표로 측정할 수 있으니 이견이 별로 없지만, 영업을 잘하기 위해서 지원부서의 도움도 필요하다. 기획이나 관리 등 지원부서의 경우 성과지표를 숫자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정성지표를 많이 적용하면 인맥, 학맥, 팀맥(같은 팀에서 일한 인연)에 기반하거나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한다고 싫어한다. 반면 평가자는 어느 정도 자신의 재량으로 평가를 하길 원한다. 정량적으로 객관화된 수치 이외에 부하의 태도, 성실성, 충성심 등을 주관적으로 평가하길 원한다. 정량지표 만으로 평가할 수 없거나 팀웍이 중요한 경우 또는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고려할 경우이다. “무얼 측정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측정 지표 자체에만 치우쳐 일의 본질이나 중요성과 상관없는 쉬운 측정, 편한 측정에 치우지기 쉽다. 측정하는데 자원이 많이 들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측정지표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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