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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서정 Dec 25. 2023

첫 해외출장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 택시에서 겪은 일

입사한 다음해 여행 아닌 출장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갔다. 해외영업직이었으나 문서로만 해외영업을 했고 해외에 나갈 기회가 흔치 않았다. 부서 직원들은 담당 지역에 따라 출장을 자주 가기도 하였지만 내게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동료들이 해외경험을 이야기할 때 나는 입맛만 다시었다.


나는 대만과 동남아를 담당하였는데, 대부분의 업무가 대만이었다. 대만 타이페이는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었고 많은 프로젝트 입찰이 있었다. 회사는 타이페이에 공사현장이 있었고 소장이 대만 타이페이 지사장 업무를 겸하였다. 지사에서 보내온 현지정보를 요약 보고하고 관공서에 제출할 서류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 주요 업무이었다. 경력이 미미한 직원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순작업이었다. 다른 지역을 담당한 동료들은 이미 해외 출장을 가는데 내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비행기를 탈 기회가 왔다. 


5월 어느 날 부장님이 단순한 업무라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장을 지시하였다. 발주처에 서류를 제출하고 관련 인사를 만나 프로젝트 정보를 얻어 오는 일이었다. 자카르타는 대중교통과 치안이 좋지 않으니 밤에 혼자 나다니지 말고, 특히 공항에서 시내 들어갈 때 반드시 모범택시인 블루버드 택시를 타라고 하셨다. 당시 젊은 남성이 해외에 가려면 출국 전에 동사무소에 가서 출국신고를 하고 공항에 있는 병무청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홍콩을 경유하여 자카르타로 향했다.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이 서울에서 자카르타로 직항했지만 회사에서 홍콩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발급해 주었다. 출장시 직항보다는 경유 노선, 국적기보다 외국항공사를 더 많이 이용하였다. 홍콩 공항에 내려 면세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파나소닉사의 녹음기를 구입하였다. 소니 워크맨이 한창 유행하였는데 파나소닉의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홍콩 면세점은 천국과 같았다. 갈아 탈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면세점을 돌아다니는데 전혀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빈 지갑으로 면세점을 기웃거리는 일은 지옥 체험이었다.  


항공기에 승객이 많지 않았다. 자카르타 공항에 다가가자 입국 카드를 작성하는데 앞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몸을 돌려 나에게 입국카드 작성을 부탁하였다. 앞니가 다 빠져서 할머니로 보였는데 여권을 보니 중년이었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 듣지 못했다. 그분 여권과 탑승권을 받아 기본사항을 작성하고 여행목적은 필담으로 확인하였다. 아주머니는 재미 중국인이었는데 영어를 못했고 중국어도 표준어인 보통화를 못했다. 나는 업무상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내가 말하면 그분은 알아듣지 못했고, 그분의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앞니가 없어 발음이 새니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내가 입국카드를 대신 작성하기 시작하자 그분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종이에 한자를 써가면서 몇 마디 나누었다. 딸이 미국에도 자카르타에도 있어 가끔씩 딸과 손주를 보러 오간다고 하였다. 대단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비행기를 타고 척척 이동할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다음날 자카르타 지사에서 이야기하니 지사장은 더 한 경우도 많이 보았다고 그건 별거 아니라고 하였다. 지사장이 미국 출장가는데 입국장 검색대에서 우리나라 할머니가 바리바리 싼 물건을 올려놓고 '난 미국말 못해' 라고 하니 미 이민국 관리가 알아서 다 처리해 주는 것도 보았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김치, 된장, 고추장을 가득 담은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무사통과 하였다고 한다. 그때는 반입물품에 대한 통제가 심하지 않아 가능했을 것이다.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두웠다. 발주처에 제출할 서류를 가득 담은 이민가방을 낑낑거리며 끌고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담당 공무원이 세관 신고할 것 있냐고 해서 없다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가방을 검사대에 올려 놓으라 했다. 아마 2-30kg는 되었을 것이다. 힘겹게 올려 놓고 지퍼를 열어 안의 서류더미를 보여주었다. 그는 서류를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값나가는 물건은 없고 인도네시아 정부에 제출할 입찰서류 뿐이라고 했지만 그는 계속 뒤졌다. 관세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돈 되는 상품이 아니고 그냥 서류라고 반복했지만 그는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세관원이 저쪽 구석을 가리키며 자기 보스에게 가보라 했다. 한 명이 웃으며 손짓했다. 가기 싫었지만 갔다. 그는 세금을 조금만 내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더 이상 우기기 싫었다. 20달러 지폐를 건네 주었다. 그는 웃으며 좋은 결과를 바란다고 덕담을 하였다. 영수증도 없는 비용이니 회사에서 처리해 줄 리도 없었지만 오래 끌었다가 나만 골치 아플 것 같았다. 밤도 늦었고 얼른 호텔로 돌아가 자고 싶었다. 속으로 욕을 해대니 약간 마음이 풀렸다.


입국장 밖으로 나가니 공기가 후끈했다. 높은 온도와 습기로 달궈진 열대도시에서 처음 맡는 이국의 냄새가 났다. 첫 해외여행을 실감했다. 아침에 서울을 출발해서 홍콩을 거쳐 위도 0도 부근의 자카르타에 밤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블루버드 택시를 타야지 하면서 두리번거리는데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시장통 같이 사람이 많았고 봉고 모양의 차량은 흔한데 파란색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눈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많은 호객꾼들이 달려들어 내 가방을 낚아채면서 자카르타 시내까지 가는데 얼마라고 외쳤다. 모두 귀찮았고 관심이 없었다. 그냥 뿌리치면서 블루버드 승강장은 어디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짐 가방을 끌면서 택시 승강장이 있을 만한 곳으로 움직였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주위에 물었다. 대답은 블루버드는 없다는 것이다. 부장님이 반드시 블루버드 택시를 타라고 했는데 블루버드가 없다니 큰일이었다. 내가 부장쯤 되는 간부사원이었으면 지사에서 마중 나왔을텐데 사원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서류가 가득 찬 무거운 이민가방을 끌고 다니자니 무척 힘들었다. 날은 덥고 어둡고 갈 길이 멀었다. 배도 고팠다. 블루버드를 찾을 수 없으니 그냥 아무거나 타기로 마음을 바꿨다. 예약한 호텔 인도네시아까지는 얼마냐고 호객꾼에게 물었다. 몇 번의 흥정 끝에 봉고차 같이 생긴 하얀 소형 버스를 타기로 했다.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내짐을 끌었고 나는 그들을 따라 차를 탔다.

공항에서 호텔가는 길은 꽤 멀었다. 어느 나라나 공항은 시내에서 멀다. 전용도로를 따라 가는데 도로에 가로등이 별로 없고 어두웠다. 운전수와 젊은 조수가 앞에 앉고 나는 조수석 뒤에 앉았다. 어두운 밤길을 한 10여분 달리다가 차 속도를 늦추더니 공항도로 도중에 차를 세웠다. 자카르타는 차량이 우측이 아닌 좌측통행이니 왼편 도로에 차를 멈추었다. 조수가 내려 차 앞을 살피었다. 기사가 차 전조등이 나가서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나보고 내려 다른 차를 타라는 것이다. 황당했다. 내릴까 하다 다시 생각하니 와락 겁이 났다. 물설고 낯설은 곳에서 빛도 드문 야밤에 고속도로 길가에 내려서 혼자 가라니. 내릴 수 없다고 했다. 그냥 계속 가자고 했다. 운전수는 전조등 고장으로 경찰에 걸리면 과태료를 내야 하니 영업을 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 조수는 내려서 차 주위를 서성거렸다. 차 뒷좌석에 놓아둔 서류 가방을 끌어 내릴 기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렸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계속 가자 만약 경찰에 걸리면 과태료는 내가 물어주겠다.” 라며 설득했다. 나는 내리지 않고 차안에서 버티었고 설득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기사는 다시 출발했다.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지사의 차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은 지사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구할 때까지 호텔생활 중이었다. 오는 길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너 잘했어, 내리지 않고 버티었으니 다행이지 중간에 내렸다면 아이고…' 하면서 말끝을 흐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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