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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서정 Dec 25. 2023

무뢰한

중국 우한에서 만난 삼륜차 기사 

혼자 하는 여행은 자유롭다. 가고 싶으면 가고 배고프면 먹고 원하는 곳에서 잘 수 있다. 첫 유럽 여행을 직장 동료와 같이 했다. 이름을 알고 스치면 고개 인사를 하는 사이였다. 리비아에 근무할 때 3주 휴가를 쪼개 2주 유럽 여행을 하는데 일정이 겹쳐 동행했다. 첫날부터 알아 챘다. “아! 나와 성향이 전혀 다르구나.”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의 옛 모습을 간직한 소도시를 순례하는 낭만가도 여행 버스를 탔다. 동료는 중간중간 들르는 독일의 중소도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영어가 서툴러 주위 외국인과 이야기하는걸 꺼려했다. 그를 두고 나 홀로 얘기에 끼어들자니 미안했다. 낭만가도 종점 부근의 유명한 백조의 성에 가고 싶었는데 그는 반대했다. 중간에 헤어졌다. 그 이후 패키지 여행이나 신혼 여행을 제외하고 홀로 여행을 다녔다.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 대부분 경치만 찍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고 숙박비가 더 든다. 자유롭지만 어려움에 처하면 홀로 감당해야 하고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중국어 어학연수 시절 여름방학에 장강(양자강) 삼협(三峽 중국어로 산샤, 세곳의 협곡이라는 뜻) 을 여행했다. 방학 전에 학교 선생님이 외국인 연수생에게 삼협 여행을 추천하였다. 삼협은 유명한 절경인데 역사적 문화적인 사연이 많은 곳이다. 삼협댐이 완공되면 장강 삼협이 물에 잠기어 많은 절경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세계 최대의 수력댐이라는 삼협댐은 1993년에 착공하였으니 내가 여행을 떠났을 때 한창 공사중 이었고 물을 가두기 전이었다. 


상하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경(重慶 중국어 발음은 충칭)으로 갔다. 장강 여행은 중경에서 시작하여 무한(武漢, 우한)에서 끝났다. 중경 선착장에는 여행사가 많았고 다양한 상품을 판매했다. 삼협 여행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며 주위의 협곡과 유적지를 구경하는 프로그램이다. 2박 3일짜리 상품을 구입하고 배를 탔다. 선실은 8인실이었다. 우리나라 제주를 오가는 카페리처럼 큰 배였다. 객실은 특실부터 8인실 일반 객실까지 다양했다. 특실은 방에서 밖을 구경할 수 있는 1층이었고 내가 택한 일반실은 지하에 있었다. 밥은 식당에서 먹거나 매점에서 해결했다. 아침이면 갑판으로 올라가서 강 밖 풍경을 구경하다가 배가 유적지에 정박하면 내려서 돌아다녔다. 강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다 보면 강 양안에 엄청난 높이의 협곡이 나타난다. 그 협곡 중 유명한 3곳이 장강 삼협이다. 강은 바다와 달리 평온했다. 멀미도 하지 않았다. 협곡을 지나기 전에 선내 방송으로 미리 안내를 하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1, 2층 갑판에 기대어 양안의 협곡을 구경했다. 협곡 이외는 평범했다. 애들은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아낙네는 채소를 씻고 빨래를 했고 어부는 고기를 잡았다. 강가 양쪽의 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 많았다. 


여행의 종점인 무한에 도착했다. 모두 배에서 내려 갈 길을 갔다. 내가 묵은 선실에 하얼빈에서 온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중경에 회의가 있어 참석했다가 삼협 구경을 하고 돌아 간다고 하였다. 무한시 구경을 같이 하자고 하여 따라 나셨다. 그분들은 나를 손님으로 대해 친절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베풀었다. 내가 한국인이고 상해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그들은 여행 안내인을 자처했다.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구경하고 얻어 먹었다. 돈 한푼 쓸 필요가 없었다. 내 몫을 내겠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 그럼 우리 체면이 서지 않는다.” 라고 하며 받지 않았다. 헤어질 시각, 그들은 하얼빈 행 기차를 타러 역으로 가고 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야 했다. 그들이 알려준 대로 공항버스를 타려면 버스 터미널로 가야 했다. 어느 도시든 공항은 시내에서 멀다. 택시를 타고 바로 공항으로 갈 수 있지만 택시비가 많이 나온다. 공항버스를 타면 경제적인데 그들과 헤어진 곳에서 터미널까지 거리가 좀 있었다. 길가에서 삼륜오토바이를 잡았다. 오토바이 택시인데 뒷좌석에 2인용 수레를 매달았다. 타기 전에 가격 흥정을 했다. 미터기가 있는 택시를 타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삼륜차의 경우 미리 요금을 정하고 타야 한다. 정하지 않으면 바가지를 쓸 수 있다. 중국인은 타인의 일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중국어에 别管闲事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다. 외국인이라 하면 온갖 질문을 퍼붓는다. 나이, 결혼, 직장, 급여 수준 등등. 중국이 어떠냐는 질문은 꼭 한다. 답하기 곤란하면 그냥 웃는다. 문제는 돈과 관련될 경우이다. 당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중가격제를 실시하던 때이었다. 관광지 입장료는 외국인이 2배를 내야 했다. 서양인과 달리 한국 일본인은 중국인과 외양이 비슷하므로 여행지에서는 외국인 티를 낼 필요가 없다. 남쪽 지방인 광동성이나 광시성에서 왔다고 하면 “촌놈이어서 표준어를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몇 마디 하다 보면 외국인인지 중국 지방사람인지 금방 알아챘다.


삼륜차 기사와 가격에 합의하고 올라탔다. 가는 도중 기사가 이런 저런 질문을 계속 던졌다. 간단한 질문에는 답을 했지만 거리와 오토바이 소음이 섞인 무한 사람의 말은 갈수록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중에는 질문을 무시했다. 공항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려서 배낭을 메고 합의한 돈을 건넸다. 그는 갑자기 안면 몰수하면서 금액이 다르다고 하였다. 정색하며 3배를 요구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1만원 정도를 요구했던 것 같다. 예상보다 거리도 멀었고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타기 전에 얼마 준다고 약속했고 당신도 그러자고 하지 않았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는 돈을 받지 않았다. 대신 저쪽에 서있던 청년을 불렀다. 같은 패거리인 모양이었다. 둘이 다가왔다. 기사와 요란스레 몇 마디 하더니 한 명은 나의 왼편에 다른 한 명은 나의 오른편에 섰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나는 다시 조금 전에 한 말을 반복했고 기사는 자기 주장을 되풀이 했다. 갑자기 오른쪽에 있던 청년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나 이런 사람이다” 라면서. 문서 상단에 ‘교도소 출감 증명서’라 박혀 있었다. 이름, 출감일, 범죄명이 있었고 서류 아래쪽에 붉은색 중국 정부 직인이 선명했다. 출감일이 엊그제였다. 그가 나를 위아래 한번 훑어 보는데 왼쪽에 있던 청년이 한걸음 다가섰다. 앞에 서있던 삼륜차 기사는 실실 웃고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버스를 타면 건장한 청년이 타서 “어제 교도소에서 나왔는데 먹고 살고자 하니 도와주십쇼.” 라고 하며 물건을 강매한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일부 손님은 샀지만 나는 무시했었다. 이번은 다르다. 나 혼자이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러다 칼 맞는 것 아냐.’ 라는 두려움이 일었다. 돈 만원 더 받자고 칼을 꺼내지는 않겠지만 지갑을 꺼내면 다 털릴 것만 같았다. 여행하면서 돈은 몇 군데 나눠 넣고 다녔다. 주머니를 더듬어 지폐 몇 장을 집어 기사에게 주었다. 그는 돈을 받더니 “가 봐!” 라며 고갯짓을 했다. 배낭 어깨 끈을 단단히 조이고 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뒤통수가 간질간질했다. 쫓아 오는지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들이 쫓아 올 것 같았다. 최대한 평상시 걸음을 유지하면서 앞만 보고 걸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며 뒤돌아 보았다. 그들은 길가에 한가롭게 서 있었다. 공항버스가 출발한 후에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무한(武漢)은 무뢰한(無賴漢)과 관련이 없다. 무한을 생각하면 친절했던 하얼빈 선생님들과 무뢰한이 떠오른다. 어느 여행 유투버는 차비와 식비를 가지고 현지인과 다투지 않는다고 하였다. 현지인에게는 많은 금액이겠지만 그에겐 감당할 수 있는 액수이므로 다투면 스트레스가 커서 자기가 손해라고 하였다. 많이 공감하였다. 내가 전에 깨달았더라면 여행이 더 즐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출감증명서는 진짜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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