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 쓴 소설.
8년 전.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반강제적으로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다.
무척 가기 싫었던 여행이어서, 당연히 안 가야지 생각했지만, 당시 학과장님이 제가 많이 존경하는 분에게 연락하여 저를 보내 달라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갔다.
그래도 의미있는 상황을 보내고 싶었던 아해는 그 당시에 있었던 여러 사회적 갈등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제주도라는 섬에 얽힌 가슴 아픈 역사인 [제주4·3]에 관심을 가졌다. 7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 전쟁'에 구토를 느끼며, 본 글은 여전히 아해이고, 지금도 아해인 필자가 풋풋 했을 때 쓴 글임을 밝힌다.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 괴물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질문과 답. 글을 쓰며 필자의 머리를 참 괴롭게 했었음을 밝힌다. 여전히 답은 모르지만, 괴물이 되지 않게 노력하게 만드는 이 글을 몇 번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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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모두가 따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는 그 순간, 갑자기 누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다들 조용히 안하간!” 누가 그랬는지 사람들은 전부 뒤를 돌아봤다. 흰 돌담을 넘어서 보이는 사람은 작년에 아버지의 몸종이었고, 동수가 어렸을 때 항상 업어주던 효성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어디서, 상놈이 소리를 지르간! 도망간 놈 잡지도 않고 보내주니깐 은혜도 모르간!” 그러자 효성이는 옅고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권총을 꺼내서 아버지 가슴팍에 총을 쐈다.
동수 아버지의 가슴에 그 어떤 것보다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고, 흰 돌담은 피에 젖어서 빨갛게 변해갔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다. 그때 효성이는 또 하늘에다가 총을 쐈다. “탕!”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다들 조용히 안하믄 다 쏴버리갔으!, 저 놈은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고, 돈만 축내는 부르주아야. 저런 놈들은 다 죽어야 해.”
동수는 정신이 없었다. 효성이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들을 새도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피가 묻은 흰 돌담 앞에 쓰러져 숨이 멎어가는 아버지 옆에 붙어서 소리 질렀다. “아바이, 죽지마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숨을 멎을 듯했고, 동수네 아버지는 한 마디를 남기고, 죽었다. “동수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한다이.” 동수네 어머니와 동수는 정신없이 울고만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효성이 아니었다. “부르주아 여편네나 그 아들놈도 다 똑같은 놈들이고, 여기에 빌붙어 밥 처먹은 너희들도 다 똑같다. 동무들 이놈들 전부 싸그리 끌고 가자우.”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인민군들이 잔치에 있던 모두를 포박했고, 산 중턱으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움직이면 쏴버린다고 말하고, 땅을 파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가로로 백발자국, 세로로 오십 발자국이나 되는 구덩이를 깊게 파는 것이었다. 2시간여 지났을까. 효성이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 다 제삿날이라. 이때까지 인민들의 고생은 생각 안 하고 허구헌 날 놀고 처마셨으니, 너희같은 버러지들은 죽어야 해”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동네 사람들을 자기들이 파놓은 웅덩이 앞에 세웠다. 그리고 총을 쏠 준비를 하였다.
동수는 동수 어머니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너무나 무서워 동수의 바지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동수 어머니가 말했다. “사랑하는 동수야, 어떻게든 살아야한다이, 절대 움직이지 말고, 죽은 척해야 한다이.” 동수는 이 말의 뜻을 몰랐다. 하지만 이내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효성이의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동수 어머니는 동수를 끌어안고 총을 맞고 웅덩이로 떨어졌다. 동수의 하얀 옷은 동수 어머니의 붉은 피로 젖었다. 뜨거운 그 느낌이 너무나도 싫은 동수가 발버둥 치자 어머니는 동수를 꽉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절대..살아있는 척하지 말아야한다이..” 그리고 동수는 가장 가까이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바라보았다. 귀가 찢어질 듯했던 총소리는 끝이 나고,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효성이가 말했다. “날도 더운데 다시 덥지 말고 그냥 가자우 동무들, 딱 보니 다 죽은 것 같으니, 어서 반동분자들 집이나 털어서 돈이나 가져 가자우!” 그리고 발자국 소리는 멀어져갔다. 숨죽인 채 얼마나 지났을까. 동수는 펑펑 울면서 일어났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어있었다. 공실이, 진성이형, 춘심이 모두 눈이 뒤집어진 채로 죽어있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움직임 없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동수는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악!”.
동수는 잠에서 깼다. 가장 지워버리고 싶고 가장 기억하고 싶던 기억을 꿈으로 꾸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일주일 내내 이 꿈을 꾸는 바람에 동수는 미칠 노릇이었다. 땀이 흥건히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소리쳤다. “아야들 어야 일어나라. 빨갱이들 죽이러 가자!” 동수는 소리를 지르자마자, 총을 챙기고 대검을 장착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다음 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