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 쓴 소설.
8년 전.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반강제적으로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다.
무척 가기 싫었던 여행이어서, 당연히 안 가야지 생각했지만, 당시 학과장님이 제가 많이 존경하는 분에게 연락하여 저를 보내 달라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갔다.
그래도 의미 있는 상황을 보내고 싶었던 아해는 그 당시에 있었던 여러 사회적 갈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제주도라는 섬에 얽힌 가슴 아픈 역사인 [제주 4·3]에 관심을 가졌다.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 전쟁'에 구토를 느끼며, 본 글은 여전히 아해이고, 지금도 아해인 필자가 풋풋 했을 때 쓴 글임을 밝힌다.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 괴물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질문과 답. 글을 쓰며 필자의 머리를 참 괴롭게 했었음을 밝힌다. 여전히 답은 모르지만, 괴물이 되지 않게 노력하게 만드는 이 글을 몇 번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
4. 분 열
동수는 얼굴에 피가 묻은 채로 살아있는 주민들에게 외쳤다. “확실히 봤나우? 누구를 숨기거나, 갑자기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중턱으로 사라지게 되면, 모두 이렇게 되는기야? 알아들었간?” 어른들은 겁에 질려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냐하면 자기 앞에서 펼쳐진 잔인한 광경을 보니 도무지 말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와’하는 괴성이 산중턱 멀리서 들려왔다.
그 순간 한 서북청년단원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대장님 저기 횃불을 가지고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동수는 급히 뒤를 돌아봤다. 한 100명 정도가 되는 사람들이었다. 동수가 소리쳤다. “자 다들 총 들어라 저 빨갱이 새끼들 다 쏴버리라우!” 그 순간 남아있던 주민들도 자기들도 해코지를 당할까 마을의 집들과 검은 돌담 사이에 숨기 위해 뛰었다. 서북청년단들은 한 사람도 긴장하지 않고 다들 총을 들고 뛰어오는 곳으로 대검을 착검하고 뛰어갔다.
막상 내려온 사람들을 보니, 죽창과 녹이 슬어 쓸 수도 없을 것 같은 총들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들은 힘차게 달려가서 서북청년단원들의 가슴팍에 죽창을 박으려고 했지만, 총을 들고 있는 서북청년단원들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총소리가 온 마을을 휩쓸었다. 내려온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하늘도 반응하는지, 비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서북청년단원들이 중턱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살육했다.
그렇게 살육이 일어나고 있던 순간 큰 소리로 누가 외쳤다. “다들 날래 도망가라우!” 그 순간, 동수의 눈이 번쩍했다. 이북 말에다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그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동수는 그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효성이었다. 그 순간 동수는 이성을 놔버렸다. 다들 도망가고 다들 잡으러 가는 상황 속에서 동수는 오직 효성만 보고 뛰었다. 효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려, 빈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소리가 없자 효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문을 살짝 열었다. 그 순간 소리를 질렀다.
왜냐하면 집 대청마루에 서북청년단원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고 한 번 더 놀랬다. 동수였기 때문이다. 동수가 효성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간나새끼 잘 지냈니?” 효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비명소리만 외쳤다. “왜, 내가 살아있으니 깜짝놀랬나우? 우리 어마이가 내 어떻게든 살릴라꼬, 나를 꽉 안아주서간 내가 살았다우! 이제 네가 총 맞을 차례다야!” 효성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살려주라우, 내래 네가 어렸을 때, 업어주고 밥 다 맥여주고 안했간?” 이 소리를 들은 동수는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닥치라우, 내 너를 죽이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너를 죽여야갔으!” 한 발의 총성이 들렸다.
효성의 머리는 힘없이 뒤로 떨어졌다. 멈추지 않고 동수는 “간나새끼 죽으라우!” 라고 소리치면서 총을 쐈다. 정말 서북청년단원 중 한 명이 와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탄창에 있는 모든 총알을 썼을 것이다. 이성을 찾은 동수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빨리 다른 놈들 잡으러 니는 날래가라우!” 부하는 뛰어갔다. 그리고 동수는 죽어있는 효성과, 피가 잔뜩 묻은 옷, 그리고 피가 범벅으로 묻은 검은 돌담을 바라보며 힘없이 밖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그 집 창고에서 소리가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동수가 소리쳤다. “누구야, 무기를 버리고 나온다면 죽이지 않갔으.” 그러자 그 순간 창고 문이 열리더니 9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왔다. 사실 동수는 어른이었으면, 바로 쏴버리려고 했지만, 어린아이를 보고 그 생각을 지웠다. 그리고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니는 집이 어디간?” 그러자 뜬금없이 여자아이가 말했다. “왜 아주바이는 온몸이 빨가요? 빨갱이 아니괌?”
그러자 동수는 망치가 뒤통수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동수가 처음부터 빨갱이를 싫어한 것은 효성이가 자기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을 죽였을 때다. 효성한테 복수하는 것만 바라보고 달렸던 동수는 그가 죽으니 처음으로 그 단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것이다. 그 순간 동수에겐 자괴감이 밀려왔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효성과 같은 사람이 자신이었던 것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빨갱이간, 나도 정말 빨갱이간.’ 그 생각은 동수의 온몸을 지배했다. 동수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총을 꺼내서 자기의 머리에 겨눴다. 그 장면을 본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동수는 잔뜩 오는 비를 맞기 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하늘을 찢고, 여자아이의 울음도 그쳤다.
뜨거운 핏물이 검은 돌담을 흐르고 하나의 질문만이 그곳에 남았다.
과연 누가 빨갱인가. 빨갱이는 무엇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