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을 쓴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부끄러움 그대로

by 김동준

강제로 가게 된 졸업여행.



강제성이 너무 싫어, 여행 자체도 즐기지 못하여 내 삶을 위한 의미라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발버둥이 이 글을 만들었다.



돌담이라는 단편소설(현재 소설이라고 부르기엔 참 부끄럽지만 긴 시간 전 나에겐 칭찬을 보낸다.) 이 글을 쓰기 전 다녔던 4.3 평화공원. 그곳을 다녀온 뒤 어떠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발버둥이 참으로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외로움. 그들의 공허. 그들의 죽음. 남은 자들의 아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난 뒤 머릿속에 생각난 것은 검정 돌이었다. 현무암. 초등학교 때 과학 시간 속 배웠던 돌. 이 돌에는 왜 구멍이 나 있으며, 그 구멍 가운데 얼마나 많은 혼이 지나갔을까. 천천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나의 기억을 소설이라는 장르로 적어 보았다.



아마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당시 나는 당시 내가 살았던 세상을 바라 둘러보았다. 그 당시 세상. 지금이 훨씬 양극화되었지만, 그때도 양극화된 사회였다. 이 가운데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고 서로 혐오하고, 공격하는 것이 당연시된 사회 가운데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 나누고 싶었다.



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살아있는 '빨갱이'라는 단어. 내가 부산에서 살아서, 종교인이라 자주 듣는 이 단어를 없애고 싶었다. 구시대적이고, 참 답답한 단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단어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는 무기로 사용되어서 그런지 훨씬 역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한 국가의 정치 체계가 아닌, 개인의 '행동'임을 나누고자 했다.



내가 나누고자 하는 '빨갱이'라는 단어는 피가 묻은 사람을 뜻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생명을 사랑할 줄 모르고 타자를 인정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소설 가운데 나타났던 북에 있었던 주인공. 그의 기억에 있던 하얀 돌담. 서울로 왔을 때의 콘크리트벽. 제주도로 왔을 때 검은 현무암 돌담. 주인공의 마음이 더욱 어두워진 것처럼 다시는 하얗게 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이를 뜻한다. 그 검정 마음의 끝은 한없이 순수한 이의 목소리 가운데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파멸 속으로 들어간다. 이 파멸 가운데 괴물이 되었을지, 자유를 얻었을지 모든 것은 독자에게 남겼다.


하여튼 소설을 썼을 때의 상황과 지금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러운 글을 공유했다. 여전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 가운데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4.3일이 지난주 지나갔다. 참 많은 이. 그들을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고. 생명을 경시하고, 타자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빨갱이'들이 더는 나타나지 않는 세상이 되길 그저 바란다.



<돌담 후기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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