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순수'한 글을 써야겠다

AI 시대에 스스로 글을 쓴다는 것

by 프리츠

1. 연말 회식자리다. 작년 하반기, 회사 팀 내에 'FIRE'한 동료 때문에 팀원 모두의 마음이 싱숭생숭하게 된 때를 떠올리며 모두들 한 마디씩 해본다. 내년도 계획은 무엇인가요? 언제까지 직장 다니실 생각이신가요? 직장 이외의 돈 벌이는 어떤 것들을 준비해 가며 살고 계신가요?


2. 브런치 프로필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친한 동료 몇몇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 00님은 글 쓰시니까 글 계속 써서 그쪽으로 수익 만들어가 보면 어때요? 특히나 요즘 챗GPT 같은 거 이용하면 글 금방 쉽게 쓸 수 있다고 하던데요.

- 네. 맞습니다. 생각은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저는 '순수주의'로 남아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글쓰기에서의 '순수주의'란 어려운 말은 아니다. 글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글 자체를 목적으로 바라보며 쓴다는 의미이다. 물론 글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100% '순수'한 글을 쓰는 게 가당키나 한 지는 모르겠다. 이 글도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누군가에 읽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최소한이나마 담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내 글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썼으면 한다는 의미에서만이라도 순수하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4.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또 아들 뒤치닥꺼리를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부족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개인적인 시간을 냈을 때조차도 잘 팔릴 글이나, 자기 계발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시간을 때운다면 하루가 너무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AI 툴을 이용해서 쉽게 글을 쓰는 건 어떨까? 그렇지만 AI가 쓴 글은 '순수'하지 않을 것 같다.


5. '순수주의'의 두 번째 의미는 AI툴 같은 것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내 사고과정을 통해 나온 순도 100%의 내가 쓴 단어 조합, 문장 구성을 이용한 글을 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내 프로필로 쓰인 글이라면 진짜 누가 썼는지는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막말로 나만 비밀로 하면, 또 타인이나 다른 시스템에 의해서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간파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것이다.


6.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것은 위 4의 맥락에서 남는 시간에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또 그 자체로 즐거운 활동으로서의 취미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순수'하지 않게 글을 쓴다면 대체 그게 내게 무슨 글이냐는 말이다.


7. 때때로 힘든 날에는 (내가 잘하는 여러 가지 중에 그나마 수익 창출로 전환할 기회가 조금이라도 높아 보이는) 글쓰기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책도 내고 그걸로 유명해져서 강연료를 받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공상에 빠져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8. 그래도 아직은, '순수'한 글을 계속 써야겠다.


9. '순수주의'의 역설 : 계속 더욱 이렇게 '순수하게'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색깔이 생기고 남들과는 차별되는 포인트가 확실해져, 책 출간에 대한 제의도 받고 돈벌이 수단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니까. 취미 생활로 돈 번다면 얼마나 좋을까? 취미 생활로 돈을 벌면 일이 되어서 안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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