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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Nov 01. 2023

이직하고 나서야 알게 된 심리적 상황들

이직 전에는 피부에 와닿지 않던 것들

올해가 지나면 이직한 지도 만 2년이 된다.


기존 회사보다 네임밸류 있고, 연봉도 높아지고, 업계 사람들이 선망하는 회사로의 이직. 이직 전부터 이직 후 얼마 간은 다행히도 모든 게 좋아 보이기만 했다. (불행히도 이직은 하긴 했는데 초장부터 좋지 않았다는 경험담도 종종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 좋아 보이는 건 말 그대로 '보이는 것'에 해당했다. 즉, 물리적인 업무 환경이나 물질적인 보상 또는 자유로워진 근무 복장 등. 이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직을 해야 하는지? 에 대한 pre-이직 이야기는 많지만 post-이직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듯하다. 이 글은 이 지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심리적인 영역들을.


나는 만 8년을 채우고 처음 이직을 하게 됐고, 자신 있는 직무를 수행하게 됐다. 또 통근 시간이 편도 1시간 더 늘어난 점을 제외하고는 외적인 조건으로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또 모두들 각 회사/팀에서 에이스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모인 느낌이었다. 신생 회사에 공채가 없어서 경력직들만 모인 회사라는 점도 적응에 도움이 됐다.


그렇게 이직하고 만 2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 여러 가지를 느낀다.


1. 혼자라는 외로움


이전 회사에서 지금 회사로 이직한 첫 사람이 나였다. 새 회사에는 나랑 같은 출신 회사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직 후 처음에는 팀 규모가 작기도 하고 구성원들의 출신 회사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다가 팀이 점점 커지고 인원이 늘어났는데, 특정 몇 개 회사에서 주로 채용이 되었다. 또 그 회사들에서 이 회사의 다른 부서에도 이직해 온 사람이 더러 있었다. (나의 이전 회사에서는, 다른 부서로만 1명 이직해 왔다.) 그러면서 외로움을 한 번씩 느끼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출신 회사들끼리 뭉쳐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저녁에 술 한잔도 하는 것이다. 평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료들이지만 내가 극복할 수 없는 사유(출신 회사)로 어울릴 기회가 차단되었다. 경력직 위주의 회사인데도 이러한데, 공채 위주의 회사에 경력직으로 이직해 갔다면 더 외로움을 느꼈을 것 같다. 혼자 잘 놀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더라.


2. 하소연하지 못하는 답답함


일하다가 스트레스 받을 때, 같은 상황에 처한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푸는 것은 직장 생활의 원동력이 된다. 이전 회사에서는 보통 동기들과, 또 같은 부서 공채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직하고 이게 사라졌다. 경력직은 동기가 없다. 입사 날짜가 같을 수 있겠지만 연차도 직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냥 우연에 불과한 같은 날짜이지, 공채 기수의 동기 느낌은 전혀 없다.


업무에 비해 사람이 적다 보니, 힘든 것은 디폴트이다. 그래서 누구 하나 더 힘들다고 이야기해 봐야 저 정도 연차가 됐는데도 투덜거린다고 (나부터도) 속으로 별로 좋지 못하게 볼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별로 힘든 티를 내기도 어렵다. 또 맘에 안 드는 사람에 대한 뒷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영 생기지 않아서 마음속에 화병이 생기는 느낌도 든다.


이처럼 외롭고 답답하지만, 이것들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3. 날 아는 사람이 없는 자유로움


나는 동일한 사람이지만, 이전 회사에서 보였던 페르소나와 지금 회사에서의 페르소나는 다르다. 조직 문화와 동료들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과거의 페르소나를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원래 나다운 성격을 조금 더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답고 편하다.


이전 회사에서는 공채로 들어와서 막내부터 선배로, 주임에서 과장으로 사다리를 올라감에 따라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애썼던 것 같다. 게다가 이직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평생 같이 근무할 동료, 선후배이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게 행동하기보다는 최대한 사고를 치지 않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방향으로 소극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직 후에는 선배 대 후배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니 나의 특성을 조금 더 잘 드러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회사에서의 내 모습과 회사 밖에서의 내 모습에서 오는 괴리감이 조금 좁혀진 느낌이 들어 직장 생활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만약 나보다 먼저 이직해 온 같은 회사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이 나를 잘 알든 모르든, 이전 회사에서 알던 내 모습에 대한 인상이나 평을 새 회사 사람들에게 전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사람과 내가 맺었던 관계 방식을 서로 간에 계속 의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같은 회사 출신이 많으면 외롭지는 않겠지만 조금 덜 자유로울 것 같다.


4. 뒷담화를 잘 하지 않게 됨


뒷담화를 하고 싶은데 풀 곳이 없다가 답답해지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잊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답답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개는 별 거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게 또 회사 일이고, 우리 인생이지 않은가 싶다. 그 답답함의 순간을 지나고 나면, 그냥 어디 가서 이야기 못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신나게 회사 동기들과 뒷담화하고 나면 그 순간에는 공감받고 스트레스 풀리고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 때로는 오히려 더 악화되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적당히 푸는 것은 좋지만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더 확대되기도 했다. 또 잘못하면 뒷담화의 내용이 다른 맥락에 잘못 전해져서 곤경에 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적당히 배출할 곳은 필요했는데, 그래서 찾게 된 곳이 이곳 브런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뒷담화 나눌 동료가 다행히 아예 없진 않다.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외로운 동료에게 감사하다.)



이직처마다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위 내용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이직 이후에 느끼게 되는 이러한 부분은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지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려를 하기보다는 자기의 커리어 발전, 연봉 인상 등을 우선하여 이직하는 게 맞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모든 선택들이 그러하지만, 이직이 100% 정답 이거나 모두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는 균형 잡힌 생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Image by dooder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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