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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Nov 03. 2023

이런 스몰 토크는 불편하다 (1)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냐?

몇 년 전의 기억이다. 외근을 둘이서 나가는데, 선배가 나에게 물어본다.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냐?"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든지 얼렁뚱땅 회사 이야기로 다시 넘어갔었던 거 같다. 초 예민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을 거쳐 10년 여를 직장에 다니다 보니 많은 것들에 익숙해지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지금 듣는다 해도 낯설고 불편할 거 같다. 그리고 불편해서 나는 절대로 남에게 하지 않을 질문이기도 하다.


왜 불편할까?


1. 질문자-답변자의 권력 구조를 드러냄


후배가 선배한테 성심성의껏 존댓말을 다하여 다음과 같이 물어도 된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대뜸) "요즘 재미있는 거 뭐 없으세요?"


표현만 예의 있을 뿐 내용은 무례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질문자는 현재 몹시 심심한 상태인데, 재미있는 거리를 주위 사람이 찾아서 나를 웃겨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선배-후배의 관계가 수평적이거나 굉장히 친한 경우 가능할 수 있지만, 만약 일반적인 후배가 선배에게 저 질문을 한다면 후배는 속으로 선배를 자기보다 낮게 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재미있는 거 없냐?'라는 질문은 질문자가 선배이고, 답변자가 후배일 때나 상황 상이라도 어색하진 않다. 이처럼 이 질문은 위-아래의 권력 구조에 어울린다.


2. 같이 재미를 만들어 가려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것을 요구하여 불균형을 드러냄


왜 위-아래에 더 어울리는 질문인지를 생각해 보자. 질문자가 답변자에게 재미를 요구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실망한다. 적어도 기대에 어긋나게 되어 유쾌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재미있고 싶으면 서로 같이 노력해야 한다. 불쾌하지 않은 주제와 적절한 리액션과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즐거운 대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은 같이 노력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에 해롭다. (이 질문을 내가 해본 적은 없으므로)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절히, 즉 질문자의 재미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내 기분도 나빠졌었다.


'아니 내가 무슨 개그맨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재미없나?'


재미있는 대화를 원하면 질문자 본인도 구체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대화의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그냥 툭 던지고, (본인에게) 재미있는 대답이 나오면 그때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애초부터 동등하게 대화하려는 게 아니다.


3. 재미는 주관적이어서 명확한 소통이 어려운 주제


애초부터 '재미' 자체가 불분명하다. 대화를 하고 나니 재미있었다는 감상이 아니라, '재미'라는 통을 채우기 위한 대화를 하려면 제 각각의 재미 통이 어떤 모양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건 굉장히 어렵다. 그러므로 자기 통을 채우고 싶은 사람(질문자)은 자기의 니즈를 명확히 이야기해줘야 한다. 더 나아가 자기의 결핍을 남을 통해서 채우려 할 필요도 없고 재미는 알아서 찾되, 지금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서로' 대화를 해야 할 일이다. 본인이 미성숙한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이전 글, <'성숙'의 의미>)



그럼 뭐라고 물어봐야 하냐고? 대화를 꺼내기에 좋은 스몰 토크 주제는 엄청 다양하다. 가장 만만한 날씨부터, 또 같이 육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아이 이야기만 해도 끝이 없다. 영화, 책, 운동 등등... 그래도 묻고 싶다면 차라리 주말에 뭐 했냐, 뭐 할 계획이냐고 물어보면 될 거 같다. 그러면 적어도 질문자의 재미를 100% 충족시킬 순 없겠지만, 답변자가 (주말의 짧은 시간에 하는 행동이 자기가 재밌어서 하는 행동이라면) 스스로에게 재미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꼬리를 물어서 더 재미있는 대화로 나아가면 된다.


글을 마치기 전에 스스로를 위한 변론을 하나 하고 싶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니 글이 여기까지 온 것이지, 사회 초년생 시기를 훌쩍 지난 글쓴이 본인은 이제 스몰 토크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티타임을 즐기는 편이며, 어느 누구와도 적당히 즐거운 대화를 잘해 나간다는 점이다. (검증 불가) 또 주위 사람들이 내게 내리는 흔한 평은, MBTI의 'E' 같다는 것이다. (애독자에 따르면, 글만 봐서는 그렇게 안 보일 거 같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다음에는 '주말에 뭐 했냐?' 또는 '주말 계획 뭐야?'라는, 위에서 대안으로 추천한 질문마저도 예민하고 불편하게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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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


Image by kues1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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