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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Nov 17. 2023

369 슬럼프 그리고 그 이후 (1)

직접 겪어본 369 슬럼프와, 그 극복 또는 버티기

369 슬럼프 : 직장 생활 3년차, 6년차, 9년차에 찾아온다는 슬럼프


3개월, 6개월, 9개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좀 너무 나간 것 같다. 자잘한 스트레스나 어려움은 3일, 6일, 9일 단위로도 찾아오는 법. 그런 것까지 "슬럼프"라고 했다가는 오히려 그 생각으로 인해 더 힘든 직장 생활이 되어버릴 것이다.


회사 생활에서의 슬럼프는 무엇일까? 내 경험을 돌아보면 다음 특징들이 보였던 것 같다.

• 주위 동료들하고 말하기 싫어진다.
할 일은 많은데 일을 그냥 하기가 싫다.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왜 나만 힘들지?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재미있는 취미 활동을 해도 회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미리 지친다.
이러한 시기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계속 지속된다.

(혹시 이런 생각이 매일 같이 든다면, 일시적 슬럼프라기보다는 만성적으로 직장이 싫은 상태이니 이직이나 다른 직업을 알아보거나,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상황에 가까울 것 같다.)


3년차 슬럼프는 이런 모습이었다.


입사하여 처음 배치받은 부서에서 제법 일이 익숙해지고, 주어진 일을 곧잘 해내어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상황. 같은 부서의 공채 선배 2명은 금융권 특유의 부서 순환 이동으로 인해 이미 다른 부서로 이동한 상태.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부서의 선배들도 순환되어 우리 부서에 새로 오게 되었다. 이 부서의 일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상황이어서 새로 온 선배들에게 일을 알려줘야 했으나 연말 고과 평가는 C.


"네가 고생한 건 알지만 새로 온 선배들이 곧 과장 승진 대상이니 좀 양보해 줘라. 미안하다."


다행히도 선배는 염치가 있어서 따로 맛있는 밥을 사주면서 미안하다고 해주긴 했었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래서 더 하기가 싫어졌다. 당시 회사는 업무에서의 성과 여부 상관없이 승진 대상이면 고과를 몰아주는 것이 디폴트였다. 차라리 빨리 승진을 시켜야 그다음 순번이 차례로 고과에서 혜택을 보게 되는 구조. 이 구조로 직접 피해를 받았다는 생각이니 구조를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이겠으니,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보자. 부랴부랴 공부를 했고 시험도 치렀으나 만족스러운 점수가 나오진 않아서 금세 다시 포기.


그 길로 방황을 하다가, 혼자서 7박 9일 일정으로 좋아하는 축구를 보러 런던과 맨체스터를 다녀왔다. 체류 기간 1주일 남짓 동안 축구 경기 4경기 보고 원 없이 즐기고 왔다. 응원하는 팀의 2경기를 보고 왔는데, 2경기 모두 패배. 시즌 10패도 안 하는 팀인데 2연패를 눈으로 지켜본 건 함정.


그 이후에는 하고 싶었던 업무를 직접 추진해 보면서 신규 사업을 맡고 오픈까지 잘 마치면서 스스로 즐겁게 일을 했다. 오히려 평가를 신경 쓰지 않으니 더 자유로워지고 점점 슬럼프가 극복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또 부서 순환을 기다리며 가고 싶은 부서에 가고자 기존 업무에서의 힘을 조금 뺀 채로 열심히 자격증 공부도 하고, 인사 어필도 하여 원하는 부서로 이동할 수 있었다. 3년차가 지나면서 4년 차에는 국내외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6번인가 탔을 정도로 정신없이 놀러 다니며 일부러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렇게 3년차 슬럼프는 봉합이 되었다.


6년차 7년차 슬럼프는 이런 모습이었다.


원하는 부서로 이동해서 잘 적응하고 있었는데 SOS 요청에 따라, TF 인사 발령으로 첫 부서 업무와의 연관 업무를 다시 하게 되었다. 또 결혼도 하고 육아도 시작했다. 밤에 잠도 잘 못 잘 때가 많고 체력도 달렸다. 6년차 당시에는 결혼/육아로 정신이 없었고, 본격적인 슬럼프는 7년차에 찾아왔다.


이제 승진을 1~2년 앞두고 있어서 고과를 잘 받을 때가 되었다. 이 회사 구조라면 가만히 있어도 결국 승진이 될 테지만 기여를 하고 나서 승진을 쟁취해야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또 이왕이면 동기들 중 빠르게 승진하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업무를 받게 되었고, 업무 자체의 스트레스도 엄청 많아졌다. 또 육아와 병행하며 체력 관리로 애도 먹었다. 설상가상 그때가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20년도여서 스트레스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퍼졌다. 이 회사에서 혼자 고생하는 것 같았다. 세상 모든 어려움은 다 짊어진 느낌이었다.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육아와 코로나로 인해 할 수 있는 외부 활동도 제한적이었고, 업무 자체도 그냥 쳐내야 할게 많았던 시절이다. 그래도 8년차가 되면서 과장 승진을 하게 되고 보상받았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그냥 지나갔던 거 같다.


다행히도 9년차 슬럼프는 없었다.


과장 승진 직후에는 우선은 기존대로 대리처럼 일을 계속했다. 그 후 부서 이동을 하면서 과장으로서 업무를 본격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부서장과 다이렉트로 업무 논의를 하였고, 아래에 대리 한 명과 같이 둘이서 똘똘 뭉쳐 일을 해나가는 책임을 갖게 되었다. 재밌었다. 그런데 외부 계열사 파견 나갔던 선배가 복귀하며, 내 파트에 선임으로 오게 되었고 내가 1번 책임자로서 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재미가 없어졌다. 부담도 되지만 파트를 꾸려가고 업무를 책임져 나가면서 성장하는 재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슬럼프에 빠질 것 같았다.


재미를 잃어가던 시기에 이직을 했다. 새 회사는 담당자 1명이 자기 일을 직접 모두 도맡아 일을 하는 분위기이다. 딱 원하던 업무 방식이었다. 만족하며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이직 덕분에 슬럼프에 빠질 뻔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369 슬럼프는 자주 이야기 되는데 10년차 이후의 슬럼프에 대한 논의는 왜 적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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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



Image by christopher lemerci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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