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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Dec 04. 2023

나는 ‘형’이 없다

회사 내 사적 관계 비판

직장에서 형 동생하는 거 싫어한다. 반면 가끔씩 자기는 회사에서도 형 동생하는 거 좋아한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곤란하다. 나에겐 친형이 없기 때문일까? 그래도 사촌 형이 하나 있긴 한데.


'동생'에게도 회사에서 말을 놓고 나면, 꼭 후회했다. 남동생이 없기 때문일까? 내가 '형'을 모시기 싫은 거와 같은 이유를 '동생'이 느끼는 것만 같아서 그런 듯하다.


내가 (특히 회사에서) '형'을 두지 않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1. 건설적인 업무 논의가 불가능해짐


한국에서 연장자란 대개 다 ‘옳고’, 연소자는 연장자를 따라야 하는 법. 업무를 하다 보면 한 사람이 모두 파악하고 다 옳을 수는 없다. 반대로 한 사람이 다 틀리기도 어렵다. 더 나은 것을 판단할 때는 화자가 누구인 지가 아닌, 말의 내용에 따라 판단되어야 건강한 조직일 것이다. 나이 관계가 아니라 상급자(팀장)-하급자(팀원)의 직급 관계라면 의사 결정된 사항에 무조건 따라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직급 내에서도 나이에 따라 의사 결정이 이뤄진다면 건강한 조직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수평 조직이 드문 한국 회사에서는 나이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런데 이런 수직 문화의 회사에서 형-동생까지 등장한다면, 선-후배의 위계는 더 견고하고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대개 형들은 동생에게 자기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라는 의미로 형-동생 하자고 할 것이다. 대신 잘 챙겨주겠다고 하면서.


만약 형-동생이 수평 문화를 표방하는 회사에서 등장한다면 그 자체로 회사 문화의 적이라고 할만하다. 더 자유로운 소통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인데, 형-동생이 등장하면 동생이 형의 의견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면 수평 문화의 장점은 사라질 것이다.


2.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하게 됨


형-동생은 되게 친밀하다. 형이 먼저 동생 하자고 해주었다면, 동생은 간이고 쓸개고 내줘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적인 영역에서의 비밀이나 회사 생활에서의 고민 등을 먼저 토로하여, 형이 동생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챙김 받는 동생이 될 것이다. 굳이 먼저 동생이 이야기를 못 꺼냈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조만간 회사 업무 무관한 것에 대해서도 알아서 관심을 갖고, 여러 조언을 쏟아낼 것이니까.


3. 주위 사람들에게 위화감 조성


형-동생은 그 관계의 이외 사람들을 배제한다. '형'은 자기가 원하는 '동생'만 동생으로 관계 맺는다. 모두를 동생으로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너도 동생이 되고 싶으면 나에게 잘하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동생도 형의 테두리 안에서 편하게 회사 생활이 가능해진다. 물론 그 형이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므로, 형이 필요하거든 골라서 모셔야 할 것이다.


형-동생이 되지 못한 사람은 그 둘이 업무적으로 친해지는 걸 뛰어넘어 사적인 많은 부분을 교류하게 되는 걸 보고, 눈에 띄게 친밀해지는 게 부러워진다. 나도 부러워했다.


'나도 이참에 형-동생 맺어야 하나...'


맨 정신에는 어려우니 술자리에서 말도 놓고, 형-동생이라고 불러보기도 했다. 그다음 날부터는 다시 도루묵이 되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직에서 위화감이 문제인 이유는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유발하고, 그에 따라 의사소통에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형-동생이 아니라서 괜히 나에게 업무 비판을 하는 건가?

형-동생이라서 저렇게 그냥 무조건 인정해 주나?


업무 그 자체에 집중하고 소통하기가 어려워진다. 다른 데에 힘을 더 써야 하는 부담감이 생긴다.


회사 내에 형-동생 관계 맺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회사에서 공적으로 구축하려는 문화는 기능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사적 문화 코드를 익히는 게 회사 생활 적응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회사에서 '형'과 '동생'을 만들지 않아도, 또 말을 놓지 않아도 회사 생활 하는데 문제없다. 비공식적인 위계인 형-동생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딱 그 정도이고 대체로 형-동생은 잘 보이지 않아서 실제 회사 생활할 때 피곤한 경우가 많진 않다. 만약 형-동생이 모두 사라지면 더 좋겠지만, 일개 직원으로서 형-동생 삼는 사람들의 자유까지 막을 건 아니다. (그런데 회사 차원에서는 이런 부작용 때문인지 사적인 관계 호칭을 부르지 말라는 교육이 있기도 했었다!)


그냥, 직장 인간관계에는 '불가근불가원'이 딱 알맞다. 좋을 때는 형-동생이지만 안 좋을 때에는 선배-후배보다 더 차가운 위-아래 관계가 되는 걸 보면 말이다. 머리 다 컸는데 매번 동생 노릇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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