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자연주의적 오류, 서술적/기술적, 규범적
회사생활을 하며 업무적으로 처음 혼났던 일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감정의 생채기가 남았다기보다는 회사 생활을 하며 갖추게 된 기본 태도를 얻었던 경험이기 때문이다. 혼났다기보다는 지적에 가까웠다.
첫 회사 첫 부서에서의 일이다. 회사생활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시점이다. 선배가 매달 하던 타 부서 앞 회신이 필요한 건이라며, 이전 내용을 참고해서 회신을 부탁했다. 당연히 어렵지 않았고 거의 복사 붙여 넣기에, 기준일자만 변경하여 회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기안 결재를 올렸다. 이어서 부장님이 불렀다.
- A 주임, 이거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나?
- 아 네 맞습니다. 이전에도 이렇게 해오던 거라고 합니다.
- 그렇게 해왔다고 그냥 안 알아보고 하는 게 맞나? 한번 다시 확인해 보세요.
- 아(!!!) 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상황에서 내가 저지른 오류를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한다. 자연에서 약육강식이 흔하게 존재하는 행태라는 이유만으로, 약육강식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말 그대로 자연의 법칙/사실(자연주의적)에서 당위적 가치를 도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사실)로 이렇게 해도 된다(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좁혀나갈 것인지, 그냥 둘 것인지에 대한 정책 공청회 자리에 있다고 해보자. 한 연사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빈부격차는 이미 있는 상황입니다. 자본주의라면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빈부격차를 그대로 두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를 교정하기 위한 일체의 정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빈부격차가 있다고 해서 그게 있어도 괜찮은 것은 아닐텐데 참 이상한 논증이다. 빈부격차를 옹호하고 싶으면 이미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대야 마땅하다. 내가 저지른 업무적 실수도 이런 논증 형태와 동일했던 셈이다.
관련해서 조금 더 확장해 보자. 철학 교과서를 읽다 보면 '서술적(기술적)', '규범적'이라는 용어를 볼 때가 있다.
‘서술적'은 descriptive의 번역어이다. descript 묘사한다는 의미이니, 사실을 다룬다는 뜻이다. '서술'이라는 뜻 자체가 어렵지 않아서 이 표현이 안 읽히는 경우는 없다.
간혹 '기술적'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technical의 뜻은 아니다. (주식의 기술적 분석은 techinical analysis이다.) 여기서 '기술'은 기술(記述)하다 의 뜻이다 : 대상이나 과정의 내용과 특징을 있는 그대로 열거하거나 기록하여 서술하다.
'규범적'은 규범, 즉 지켜야 할 무언가, 당위적인 것을 뜻한다. 영어 normative의 번역어이다.
쉽게 '서술적', '기술적'은 사실에 대한 용어이고, '규범'은 당위에 대한 용어이다. 사실은 '~이다'를 다루고 당위는 '~ 해야 한다'를 다룬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주장이 서술적인 내용인지, 규범적인 내용인지 구분하는 것은 철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볼 때도 당연히 더더욱 중요하다. 워낙 심층적이고 생소한 개념들로 논증을 펼치기 때문에 서술적인지, 규범적인지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철학자들이 직접 쓴 1차 서적에서는 이런 구분을 본인이 명시해서 적는 경우는 잘 있지 않고, 철학자들에 대한 해설서나 교과서 같은 2차 서적에서 철학자들의 논증을 분석할 때 주로 보게 되는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나부터 사실과 당위를 잘 구분해서 글 쓰고, 회사 일도 그렇게 해왔다고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