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토톨로지(Tautology, 항진명제)
유치원 다니는 아들의 사고력과 어휘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보며 우리 부부는 깜짝 놀라곤 한다. 또 때로는 뱉는 말들이 너무 웃겨서 재밌기도 하고 내심 흐뭇할 때도 많다.
그중에 부쩍 올해 하반기 들어서 많이 쓰는 아들의 말버릇이 오늘의 주제이다.
- 아빠! 오늘 키즈카페 가면 또 용현이 와?
- 응? 모르지! 가봐야 알지 않을까?
- 맞지~ 용현이 오늘 키즈카페에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
(키즈카페에 도착해서 한참을 놀다가, 용현이가 없는 것을 발견한 아들)
- 아빠! 오늘은 용현이 없네! 맞지? 오늘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고 했지?
- 그렇네! 오늘은 안 왔네!
- 아빠! 장난감 언제 와?
- 으음, 오늘 저녁에 저녁밥 먹고 나면 오지 않을까?
- 맞지~ 저녁 먹고 나서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
- 어 맞아 ㅋㅋㅋ
(다행히도 저녁을 먹자마자 장난감이 도착했다.)
아들이 자주 쓰는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표현은 논리학에서 다루는 토톨로지(Tautology, 항진명제)의 한 예시다. 형식 논리학에서는 단어의 의미와 무관하게 명제의 형태만 가지고서 그 명제의 진리값(참/거짓)을 판단하고 추론규칙을 살펴본다. 이 중 토톨로지는 항진, 즉 항상 참이 되는 형식을 다루는 개념이다.
아들의 표현을 정식화하면 p V ~p이다. ('명제 p이다 또는 명제 p가 아니다.' 기호 표기 의미는 다음과 같다. p: 명제 p, V: 또는, ~: 아니다) 토톨로지의 한 가지 형태이며, 토톨로지가 될 수 있는 명제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들이 이런 표현을 자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아들의 자아가 강해지고, 본인은 부모와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다. 자기 인식이 커감에 따라 동시에 엄마의 따뜻한 품 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밖에 없게 되고, 그에 따라 생기는 불안감 때문이지 않을까.
예전에는 부모가 말하는 이야기에 의존해서 세상을 인식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두 눈과 머리로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려니 힘든 것이다. 혼자 힘으로 인식하다 보면 틀릴 수가 있는데,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으로는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하는 말 표현으로 절대 틀릴 수가 없는, 항상 참인 형태의 명제를 자주 쓰는 게 아닐지.
아쉽지만 토톨로지는 연역 추론이라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낳지는 못한다. 아들이 세상에 대해 새로 배워가고, 지식을 늘리는 귀납 추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정리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아들의 독립적인 세계 인식을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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