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츠 Jan 05. 2024

돈까스라고 다 같은 돈까스가 아니다

개념: 보편자/개별자, 일반/특수

며칠 전 회사 동료와의 점심 약속에 나가기 전, 상대방과 메신저를 나누며.


- 점심 뭐 먹을까요?

- 저한테는 매일 돈까스죠!

- 돈까스가 그렇게 맛있어요?

- 돈까스라고 다 같은 돈까스가 아니거든요.


"돈까스"라고 같은 이름이 붙지만, 일식 돈까스, 경양식 돈까스 등 다양한 종류가 많다. 또 일식 돈까스에는 히레, 로스, 돈까스 나베 등 하위 메뉴도 많다. 같은 히레까스라고 해도 사보텐, 하코야, 동네 돈까스집 A, B, C 각각의 레시피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집 돈까스라도 오늘은 왠지 지난번 왔을 때랑 맛이 다르다. 기름을 방금 막 새로 바꿨나? 그래서인지 깔끔하긴 한데 풍미가 적다. 다음 돈까스는 좀 더 나을 거라 기대해 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한다.


(설령 완전히 동일한 돈까스가 서빙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기분 상태에 따라서 또는 공복감의 정도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질 수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이 영역은 돈까스라는 객관을 이루는 내용이 아닌 돈까스를 먹는 주체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글 바깥의 논의이다.)


이제, 글 제목처럼 돈까스가 다 같은 돈까스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실 것이다.


위의 '돈까스' 분석 또는 다양한 돈까스들 간의 관계는 철학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또 가장 오래 다뤄 온 내용이기도 한, '보편자'와 '개별자'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수 있다.


회사 옆자리의 과장 차장 부장 사원 대리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이처럼 모두 다 다른 것 중의 공통적인 것을 뽑아서 포착한 개념을 일반화하여 "보편자"라고 한다. 같은 사람이지만 과장 차장 부장 사원 대리 모두 생긴 게 다른 사람이며 그 각각에 집중하면 그때는 "개별자"라고 할 수 있다. (보편자/개별자는 각각 일반/특수로 바꿔서 쓰이기도 한다.)


보편자와 개별자와 관련해서는 어떤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1. 플라톤의 '이데아'가 바로 이 사례다. 개별적인 것들 사이의 공통적인 것들을 추려낸 뒤 이상적인 모습을 뽑아내어 '이데아'를 상정한다. 이데아론에 의하면 각 개별자들은 이데아를 나눠 갖는 것뿐이다.


2. '보편자', '개별자'라고 개념을 만드는 것 자체가 '보편'의 사고방식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것들의 개별성이 아니라 공통점에 집중하고, 차이점을 버릴 때 그들을 한데 묶는 개념을 만들 수가 있다.


3. '나'라는 사람은 보편자라기보다는 개별자다. 그런데 '나' 또한 하나의 보편자가 될 수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100일 뒤의 나는 다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나'라고 이름 붙이며 파악한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 중 다음 문제가 있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 자신의 총합인가?'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하지만 보편자와 개별자의 틀로도 충분히 생각을 정리해 볼 수도 있겠다.


4. 역사 서술과 해석의 관점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역사는 국가/민족 단위의 큰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거시사가 메인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삶이나 문화 등은 무시되고 버려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개별적인 것, 작은 것들에 집중하려는 미시사의 흐름이 대두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개별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보편자적 관점에 대한 반발로, 상대적으로 개별자에 대해 더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다양한 이야기도 가능하다. 여하튼 '돈까스'는 매일 먹어도 질리기가 불가능한 최애 음식임이 증명되었다. 이렇게 글감도 되어주고 사랑스러운 음식일 따름이다.



Image by crocodelicacy on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유치원생 아들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