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보편자/개별자, 일반/특수
며칠 전 회사 동료와의 점심 약속에 나가기 전, 상대방과 메신저를 나누며.
- 점심 뭐 먹을까요?
- 저한테는 매일 돈까스죠!
- 돈까스가 그렇게 맛있어요?
- 돈까스라고 다 같은 돈까스가 아니거든요.
"돈까스"라고 같은 이름이 붙지만, 일식 돈까스, 경양식 돈까스 등 다양한 종류가 많다. 또 일식 돈까스에는 히레, 로스, 돈까스 나베 등 하위 메뉴도 많다. 같은 히레까스라고 해도 사보텐, 하코야, 동네 돈까스집 A, B, C 각각의 레시피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집 돈까스라도 오늘은 왠지 지난번 왔을 때랑 맛이 다르다. 기름을 방금 막 새로 바꿨나? 그래서인지 깔끔하긴 한데 풍미가 적다. 다음 돈까스는 좀 더 나을 거라 기대해 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한다.
(설령 완전히 동일한 돈까스가 서빙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기분 상태에 따라서 또는 공복감의 정도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질 수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이 영역은 돈까스라는 객관을 이루는 내용이 아닌 돈까스를 먹는 주체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글 바깥의 논의이다.)
이제, 글 제목처럼 돈까스가 다 같은 돈까스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실 것이다.
위의 '돈까스' 분석 또는 다양한 돈까스들 간의 관계는 철학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또 가장 오래 다뤄 온 내용이기도 한, '보편자'와 '개별자'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수 있다.
회사 옆자리의 과장 차장 부장 사원 대리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이처럼 모두 다 다른 것 중의 공통적인 것을 뽑아서 포착한 개념을 일반화하여 "보편자"라고 한다. 같은 사람이지만 과장 차장 부장 사원 대리 모두 생긴 게 다른 사람이며 그 각각에 집중하면 그때는 "개별자"라고 할 수 있다. (보편자/개별자는 각각 일반/특수로 바꿔서 쓰이기도 한다.)
보편자와 개별자와 관련해서는 어떤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1. 플라톤의 '이데아'가 바로 이 사례다. 개별적인 것들 사이의 공통적인 것들을 추려낸 뒤 이상적인 모습을 뽑아내어 '이데아'를 상정한다. 이데아론에 의하면 각 개별자들은 이데아를 나눠 갖는 것뿐이다.
2. '보편자', '개별자'라고 개념을 만드는 것 자체가 '보편'의 사고방식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것들의 개별성이 아니라 공통점에 집중하고, 차이점을 버릴 때 그들을 한데 묶는 개념을 만들 수가 있다.
3. '나'라는 사람은 보편자라기보다는 개별자다. 그런데 '나' 또한 하나의 보편자가 될 수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100일 뒤의 나는 다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나'라고 이름 붙이며 파악한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 중 다음 문제가 있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 자신의 총합인가?'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하지만 보편자와 개별자의 틀로도 충분히 생각을 정리해 볼 수도 있겠다.
4. 역사 서술과 해석의 관점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역사는 국가/민족 단위의 큰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거시사가 메인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삶이나 문화 등은 무시되고 버려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개별적인 것, 작은 것들에 집중하려는 미시사의 흐름이 대두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개별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보편자적 관점에 대한 반발로, 상대적으로 개별자에 대해 더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다양한 이야기도 가능하다. 여하튼 '돈까스'는 매일 먹어도 질리기가 불가능한 최애 음식임이 증명되었다. 이렇게 글감도 되어주고 사랑스러운 음식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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