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금주 단상

by 프리츠

금주를 한 지 100일이 넘었다. 다행히도 금주를 잘 실천하고 있는데, 술을 끊게 될지 모르고 술 마실 때 했던 그때 생각들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생각 1. 술도 안 먹는 사람이 왜 2차까지 따라오고 깨작깨작 음료수나 물만 마시는 거야?


별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티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술을 한창 즐기던 시절에는 술자리에 술 안 먹는 사람이 끼는 게 싫었다. 또 여러 이유로 오늘은 술을 조금만 마셔야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술자리 흥을 깨는 것 같아서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금주를 시작하면서는 위의 생각을 잠깐 잊었던 모양이다. 문득 2차까지도 따라가고, 열심히 흥을 내보려는 본인을 발견했다. 스스로 발견한 모순. 위의 생각을 어디에 공표했던 것도 아니고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고 치부해 버려도 될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괜히 부끄러워졌다. 예전에 괜히 속으로 싫어했던 술 안 먹는 사람들의 사정이 나와 같아지다 보니 양심에 괜히 찔린다. 또 술 안 먹는 나를 싫어하거나 술을 왜 안 마시냐고 한 번씩 묻는 주변 눈치도 괜히 신경 쓰인다. 물론 신경 쓰여서 마실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2차는 안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수 모임이어서 그냥 도란도란 이야기만 해도 충분한 자리면 모를까, 팀 전체 회식이어서 내가 빠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그런 2차 자리는 굳이 갈 필요는 없겠다.


그때 생각 2. 숙취는 술 때문이야. 술만 좀 덜먹으면 안 피곤할 텐데.


숙취가 심한 몸이었다. 술만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금주를 하면서도 회식 다음날은 여전히 피곤한 건 매한가지였다. 술 대용으로 마시는 제로콜라의 카페인 때문인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각성된 탓인지,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 쉴 시간인데 못 쉰 까닭인지 술 없이도 충분히 피곤했다.


술을 안 먹어도 회식을 하면 이렇게나 피곤한데, 전에는 여기에 술까지 많이 마셔댔었구나. 그러니 몸이 며칠을 고생했던 게 납득이 되었다.


그때 생각 3.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지.


술을 끊기 전, 횟수가 많은 편은 아니나 한번 마시면 폭음하는 습관이 있었다. 적당히 취한 느낌이 좋기 시작해서, 결국 그 즐거움을 한껏 끌어올리려고 했던 탓이다. 또 그런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특히 즐거웠다.


술을 안 마시면서 술자리에 있다 보니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소수였다. 왁자지껄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뭉쳐 앉지만, 그 외 사람들은 적당히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서 음식에 알맞은 술과 함께 긴장이 풀린 그 편안함을 즐기는 게 보였다.


전에는 재미없게 논다고 생각했던 부류인데, 재미의 종류는 다를지 언정 나도 그들과 함께 충분히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 시끄러웠던 그룹의 사람들끼리 한껏 더 친해진 듯 어제 회식자리에서의 술자리 무용담을 곁들이며 하하 호호할 때 느껴지는 약간의 소외감은 아직 어색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런 소외감을 안겨줬을 과거의 술 좋아하던 내 모습도 한번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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