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참선으로서의 묵언 다도

다도 수업 01. 선禪에 참여하기

by 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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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와 함께 인사동의 한 다원(茶院)을 구경 삼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보이차를 대접해 주셨다. 차를 마시니 몸이 따뜻해졌고, 입술에 닿을 때 느껴지는 보드라움이 좋았다. 그날 난 20만 원어치 정도의 보이차와 그 보이차를 우려 마실 다호(茶壺) 하나를 구입해서 다원을 나왔다. 예정에 없던 충동구매였다. 차 마시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름만 익히 들었던 보이차를 제대로 마셔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머그컵에 녹차 티백을 우려 마시거나 예쁜 찻잔에 허브티를 우려 마시는 등 평범하게 차를 마시다가 어느 날 보이차와 찻주전자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덩그러니 보이차와 주전자뿐이어서 뭔가 기분(?)을 내보려고 해도 기분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지인으로부터 다기세트 하나를 구입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찻자리를 할 수 있는 구색이 대충 갖춰졌다.


내가 다기세트를 구입했던 그 지인은 예전에 팽주(烹主)를 했었다고 했다. 팽주는 차 마시는 자리에서 차를 우리는 사람, 주인主人이다. 그분이 정식으로 다도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함께 차 마시는 자리를 여러 번 갖곤 했었다. 물이 다기들을 옮겨 다니며 만들어내는 모양들을 나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차가 입안을 적시고 식도를 따라 몸 안으로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졌다. 차와 지인들과의 대화 그리고 이런저런 맛있는 먹거리까지, 좋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도茶道는 아니었다.


한 선원에서 생활참선의 일환으로 다도 수업이 개최되었고, 그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나는 불교를 공부하는 수행자이고,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다기세트가 있었다. 참선과 다도, 둘 다 배우고 싶었다. 참선의 일환으로 하는 다도였기에, 우리의 수업은 기본적으로 '묵언다도'가 될 것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참선이라고 하면 스님들이 앉아서 화두를 드는 간화선이 떠오르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 수행법이다. 그렇지만 간화선만이 참선은 아니다. 참선參禪이 글자 그대로 '선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생활 속 어떤 것도 참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禪이라는 글자는 볼 시示와 홑 단單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하나를 봄', 글자를 풀어보면 선은 그런 뜻이다. 마음을 하나에만 두는 것, 생활 속 어떤 일에서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선일 것이다.


다도에는 '순서'가 있다. 일에 순서가 없다면 무언가 하다가도 흐지부지 되고 만다. 예전에 내가 차를 마실 때면 그 일은 금세 길을 잃고 끝나버렸었다. 다기들을 펼쳐놓고 차 마시는 일이 번다하게 생각되고 급기야는 그 시간이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게는 목적도 순서도 없었다. 이제, 다도 수업을 통해 순서를 배워나가게 되며 처음에는 그 다도의 질서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모으게 될 것이다. 질서를 따르는 동작과 동작 사이에는 항상 '멈춤'이 있어야 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이, 나의 '본심'이 잘 깨어서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멈추고 바라보는 거다. 질서를 따르며 반복되는 다도의 움직임들은 점점 다듬어질 것이고 그러는 사이 "생각 없이 사물을 대하는 능력이 길러진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손이 가는 곳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가면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때 나는 항상 여기에 '본래마음'과 있을 수 있다. 깨어서 알아차리고 있는 명상 상태 속에서 일상다반사인 차 마시는 일을 할 수 있다. 이제 그것을 매일 연습하며 일상의 다른 일에서도 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훈련을 한다. 다도라는 참선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