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다면 더 좋았을 이야기들 #1
언제나 그렇다. 짝사랑의 상대에게 나는 늘 초라해지는 법이다. 내 마음이 더 크니까 그렇다. 그리고 상대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면 더욱 그렇다.
으레 그렇다. 짝사랑의 상대는 나에게 뭘 원하는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최선을 다한다. 어떤 날은 그걸 보며 웃어주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그걸 보며 인상을 찡그릴 때가 있는데, 정작 나는 왜인지 알 수 없다.
취업이 그렇다. 회사가 늘 원하는 게 있긴 있다. 경험. "열정을 발휘한 경험이 있나요?", "희생해 본 경험이 있나요?" 자소서부터 면접까지 지겹도록 듣는 단어인데 막상 듣고 나면 어김없이 낯설다. 자꾸 나한테 경험을 묻는데 도대체 왜 묻는지를 모르면 상대의 마음에 들 방법이 없다.
나는 연애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짝사랑에 대해서는 조언해 줄 수 없지만 다행히도 취업에 대해서는 100% 확신을 가지고 조언해 줄 수 있다. 특히 경험과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조언은 특히 자신이 있다.
여러분도 나처럼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조언이다.
시간이 흘러간다. 흔히 하는 이야기다. 나의 경우는 시간이 쌓여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은 경험도, 나쁜 경험도, 잘했던 경험도, 못했던 경험도 다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특히 이 얘기를 자신 있게 해줄 수 있는 까닭은 취업의 트렌드가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2010년 이전까지의 트렌드는 스펙의 시대였다. 스펙이 좋으면 좋은 회사에 가기 쉬웠다. 그러니 스펙을 쌓는 기간이 취준생인 우리에게는 값진 경험이었다.
2010년 이후에는 스토리의 시대였다. 회사들은 지원자가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해야 특별해진다고 믿었고,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회사에서 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5~6년부터 트렌드는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직무의 시대다. 지원자가 얼마나 이 직무와 잘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즉 'right person'을 뽑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스펙이나 특별한 경험은 더 이상 직무역량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간 회사들이 쌓아온 경험이다.
여러분에게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는 더 이상 스펙을 보지도, 특별한 경험을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행히도 회사의 직무라는 것은 대부분의 취준생들에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고로 대부분의 취준생들은 스펙이나 경험과 관계없이 같은 스타트라인에 서 있고, 이 직무에 어떤 지식, 스킬, 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를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지금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젠 다 끝났어... 난 특별한 경험이 없어...'라고 주눅 들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가고자 하는 직무를 공부하고 이해하면 된다. 시간은 충분하다. 나 같은 현직자가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정확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멘토가 될 것이다.
직무에 관해서는 다음 편에 다룰 예정인데, 워낙 중요하니 간략하게라도 언급하겠다.
직무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는 총 3가지(a.s.k)가 있다. 'attitude', 'skill', 'knowledge' 다. 지금까지 쌓아온 여러분의 경험으로 's', 'k'는 어느 정도 확정이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여러분이 가장 난감해하는 영역이다. 왜냐하면 직무역량이라고 하는 부분은 의외로 굉장히 다양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가장 많이 지원하는 영업관리를 예로 들면, 매출에 필요한 '분석력', '숫자 감각', 컨설팅에 필요한 'OA 능력', '경영학', '경제' 이런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얘기되는 's'와 'k'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분석력', '숫자 감각', 'OA', '경영', '경제' 이런 것들은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할뿐더러 4년 전공을 하거나 자격증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경험을 대입하거나, 혹은 지금이 12월이니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직무와 관련된 경험이 없다고? 아래와 같이 정리하면 된다.
e.g. 영업관리 직무에 대해 본인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근거를 들어 설명하라.
→ 매출 증대에 필수요소인 분석력과 숫자 감각, 그리고 OA 능력을 두루 갖춘 3툴 인재라고 자신합니다.
첫째, 4년간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며 대내외의 정세나 흐름이 사회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찾는 데에 익숙해졌습니다. 현장은 늘 빠르게 변하고 변화에 대한 고객의 반응에 대해 민감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관성을 찾아 실시간으로 변하는 니즈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데에 저의 분석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둘째, 어릴 때부터 가계부를 쓰는 것이 습관입니다. 단순히 지출내역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산과 지출을 정리하여, 월말 마감액을 예상하며 자연스레 목표 달성이나 숫자 감각에 대한 스킬을 익혔습니다. 매출과 비용을 효과적으로 계산, 이익을 남기는 것은 대리점 컨설팅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저와 파트너가 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셋째, OA 능력은 실무에서 바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번 방학기간 동안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며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단순히 이론 지식뿐만 아니라 실무에서 많이 쓰는 각종 툴을 익히고, 그에 들어가는 함수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늘 저에게 부족한 점이 있을 때는 즉시 개선을 시작하고, 빠른 시간 내에 목표 달성하는 신입사원이 되겠습니다.
아까 말했다.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모든 시간은 쌓여간다. 여러분이 가령 2017년 11월을 아무리 허무하게 떠나보냈다고 생각해도 막상 그렇지 않다.
경험은 경험을 하는 그때 당시에만 실시간으로 뭔가를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경험이라도 지금 떠올려 보면 또 다른 배울 점이 있고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이게 내가 오늘 얘기할 핵심이다.
한 마디로,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라는 것이다.
A. 저는 인사직무 역량을 쌓기 위해 이상형 월드컵을 정기적으로 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 사람이 내가 원하는 인재상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B. 대학시절, 저는 이상형 월드컵을 좋아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경험이 인사직무에서 내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잘 알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위의 두 가지 예시에서 쓴 경험은 같다. 보통 여러분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이 직무를 위해 이렇게 노력해왔다'는 식으로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 회사에서 그것을 원한다고 여러분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한 직무만을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회사에서 선호하는 인재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한 직무를 위해 열심히 경험을 쌓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장되게 쓰는 것보다는,
'내가 지금껏 쌓아온 경험이 생각해 보니 이 직무에서 필요한 역량인 것 같습니다' 가 훨씬 더 담백하다.
단 여기에서 '생각해 보니'가 중요한데, 이 시점은 경험을 했을 당시가 아니어도 좋다. 경험이라는 것은 경험하고 나서 한참 뒤에도 배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3년 전에 밥을 안 먹고 다이어트를 했는데, 당시에는 몰랐어도, 3년이 지난 지금 문득 생각해보니 그건 잘못된 것이었군, " 하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경험을 지금 잘 정리해보면서, 그때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해 보면 훨씬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정의한 직무역량에 대입하면 된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할 일은 경험 정리부터 하는 것이다. 자소서를 쓰는 연습? 경험을 먼저 정리해라. 인적성 공부? 경험을 먼저 정리해라.
지금부터 정리하면 된다. 아직 12월이니 여러분의 지난 20대를 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뭐든 상관없다. 비트코인에 무리하게 투자해서 실패한 경험도 좋고, 불쌍한 연애를 했던 것도 상관없다. 길에서 동전을 주운 경험도 좋고, 가다가 문득 하늘의 별을 올려다본 경험도 좋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라는 단서를 하나 더 붙이면, 뭐든 자소서에 쓸 수 있는 경험이 된다.
반드시 그렇다.
단, 모든 경험을 샅샅이 정리해 봐야 한다. 마치 오픈북처럼 꺼내볼 수 있게. 그래야 하나씩 꺼내어 보고 그 경험이 내게 어떤 의미였을지 지금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위의 4가지 구분법을 썼었다.
1. 교내 경험
2. 대외활동
3. 자격증과 수상경력
4.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소소한 경험
개인적인 거라 위에는 잘라냈지만, 거기에는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입학식을 갔던 경험, 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보고 가슴 아팠던 기억, 스노우보드 S턴을 처음으로 돌았던 기억 등 사소한 경험들까지 있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뒤져보면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생각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잘 정리하고, 내가 쓰고 싶은 역량에 맞춰 오픈북처럼 꺼내어 쓰시면, 이런 식의 자소서가 가능해진다.
[포스코 합격자소서]
2. 본인의 장단점
저는 몸치입니다. 그런데 스노우보드만큼은 꼭 즐기고 싶었습니다. 계속 넘어져도 넘어지는 매 순간을 즐기며 처음으로 S턴을 성공했을 때, 환호성을 지를 만큼 기뻤던 이유는 그만큼의 노력을 보상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단순한 성공경험이 우직하게 노력하는 저의 자양분입니다.
성공경험은 저의 다음 개선과제를 찾게 하고, 목표를 보다 높게 설정하게 하며,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사소한 일상의 경험에서도 늘 배우는 자세로 끊임없이 개선하겠습니다.
위의 4가지만 잘 기억하면 된다. 특별한 경험은 이제 필요가 없다. 트렌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험은 그저 나의 역량을 잘 어필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고, 특별한 경험이 특별한 게 아니라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차별화가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경험이라도 공감할 수만 있으면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예전에는 특별한 경험이 효과 만점이었다. 몇 명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특별한 경험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이 갈 만한 경험들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읽는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꾹 누를 수 있도록 공감 가는 자소서를 써라.
마지막으로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다.
여러분이 이야기하는 일주일의 특별한 프로젝트가, 한 달의 짧은 인턴생활이, 그 짧은 시간이 여러분의 역량을 대변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만약 경험의 기간이 직무역량의 가장 중요한 factor라면 7년 차인 나는 8년 차인 선배의 직무역량을 절대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남의 SNS를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남의 경험은 다 특별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 특별한 생각을 하고, 그걸 담백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
여러분이 쌓아온 지난 시간들이 결코 남들보다 헛되지 않았다는 걸 믿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는 믿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바람이 차다. 지금은 조금 움츠려 있어도 좋다. 춥고 아픈데 애써 괜찮은 척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국 이 또한 지나간다. 따뜻한 봄이 왔을 때 다시 자신 있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게,
지금 각자의 마음을 잘 추스르자.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다."
저는 늘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더 많은 조언이 듣고 싶다면,
친절한 히로의 취업고민상당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