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세가지 질문 #02. 이요셉
[온더레코드 x 틴스토리] 는 씨프로그램이 만나 온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투자해 오는 동안, 프로젝트에 함께한 친구들의 생각도 함께 자랐습니다. 어떤 순간, 어떤 결정들이 쌓여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는지, 청소년들이 어떤 궤도를 그리며 성장하는지,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긴 호흡으로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씨프로그램이 지난 3년간 만난 청소년 5500명 중 10명의 청소년에게 6개월 마다 같은 3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따라가는 긴 여정입니다. 10주 동안 10명의 Teen Story를 전해드립니다.
슈퍼맨처럼 사람들을 돕는 소셜벤처사업가를 꿈꾸는 요셉이는 2017년 고등학자 프로젝트에서 만났습니다. 고등학자는 청소년 스스로 연구자가 되어 청소년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최종 발표회에서 발표하는 사진이 한겨레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그 기사가 교내 모든 교실에 다 붙어 전에 없던 관심을 받았다고 해요. 유명세와는 달리 고등학자 프로젝트에 매진하느라 학생회장 선거에서 떨어졌던 경험까지 롤러코스터같은 한 해를 보내고 난 요셉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Q. 고등학자를 시작할 때 엄청 바빴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도 왜 고등학자를 선택했어요?
네 맞아요. 프로젝트 설명회 전에 박성은 선생님께서 학생회에 먼저 소개해 주셨어요. 학생회에서 하기에는 너무 바빠서 어렵겠더라고요. 나중에 연구 프로젝트를 위한 MERIT라는 동아리가 생기고 나서 살펴보니 주제가 흥미로워서 개인적으로 지원했어요.
'청소년들이 정말 원하는게 뭘까'
저는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교육학과를 가려고 했구요. 그 당시에 소셜벤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교육과 관련된 소셜벤처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청소년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뭘까'라는 주제가 등장했던 거죠. 그저 이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어요. 너무 열심히 한 덕분에 성적이 떨어져서 지금 고생하고 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Q. 해보니 어땠어요?
주제가 매력적이었지만 별 기대 안하고 있었어요. 2학년 1학기부터 여름방학까지 한 학기동안 프로젝트를 하면서 워크샵도 가고 인터뷰도 했죠. 그 때 마다 ‘생각보다 멋있는 일을 하는구나’라고 싶었어요. 이렇게 스케일이 클 줄 몰랐죠. 지금까지 놀던 물이랑 다른 물이었어요.
지금까지 학생들이 뭔가 한다고 하면 지원을 해주는 데가 없고 큰 규모의 뭔가를 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연구비 100만원이 주어졌어요. 할 수 있는 걸 다 할 수 있는 풍족한 지원이었어요. 애초에 이 정도 큰 규모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던건 사실이예요. 그래도 제가 배우고 얻은 게 더 많아요.
Q.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어요?
학생회하면서 알게 된 다른 학교의 학생회장 부회장들과 자체 인터뷰를 2번 진행했어요. 용인 지역 학생회끼리 모여서 자치 활동하는 단체가 있어요. 직접 홍보하고 섭외해서 인터뷰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요. 그 순간이 정말 재밌고 인상적이었어요.
그 때 인터뷰한 분들이 각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회장이라 그랬을까요? 생각이 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같은 고등학생의 생각이라고 하기에 놀라울 정도였죠. 기대 이상이었어요. 건우 형(같은 MERIT팀 동료)이 녹취를 풀면서도 고등학생의 답변이 맞는지 되물을 정도 였으니까요.
Q. 고등학자를 하고 나서 요셉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희망 전공과 진로가 교육학에서 경영학으로 바뀌었어요. 경영 공부를 해보고 싶어졌거든요. 소셜 벤처를 알게되면서 ‘아 여기가 내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꿈도 이 쪽으로 바뀌었어요. 올해 학교에서 과제로 쓰는 개인 소논문에서는 소셜 벤처에 대해 연구하려고 해요.
그리고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죠. 한겨레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 (아직도 학교가 내준 과제로 연구하니? 2017.09.04 한겨레)가 났잖아요. 그 기사가 저희 학교 30개 교실에 다 붙었어요. 친구들이 ‘이게 치킨나눠주면서 설문 조사하던 그거야?’ 막 그러고.
아, 마지막으로 학생회장 선거에서는 떨어졌어요. 고등학자 프로젝트 한창 하던 작년 6월에 선거였는데... (떨어졌습니다.)
저는 공부를 좋아해요. 그만큼 실용음악도 엄청 좋아해요. 악기는 피아노, 기타, 드럼, 베이스같이 밴드 악기들은 다 할 줄 알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많죠. 중3 때 실용음악이 너무 하고 싶어서 고등학교를 정하면서 진학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순간이 제겐 결정적인 순간이예요.
부모님과 선생님은 지금 공부를 잘하고 있으니 음악은 그냥 취미로 하면 안 되느냐고 하셨죠. 그 땐 교육보단 교회음악(CCM) 사역을 하고 싶었거든요. CCM 사역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학교에 적응 못 하거나 학교를 안 다니는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두니 점점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지금은 교회에서 주말에만 연주하고 있어요.
Q. 중 3 때 고민이 진짜 많이 됐을 거 같은데, 공부와 실용음악 그 두 가지 길에서 어떻게 결정했어요?
쉽게 생각해 보면 음악을 시작하기에 늦은 감도 있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제가 받은 재능이죠.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공부였어요. 둘 중에 어느 분야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새로운 걸 배우고 시험에서 잘 배웠다는 걸 보여주는 건 잘할 수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정도의 비전은 없었거든요. 음악은 나중에 대학가서 돈 주고 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음악은 그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생각하니 취미로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도 공부는 지금밖에 못 하는 거고 음악은 나중에 취미로 해도 충분히 즐기고 평생 할 수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근데 사실 그 말은 새겨듣지 않았어요. 물론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곤 하지만 제 주관이 쉽게 변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냥 참고만 했죠. 저 혼자 생각해 보면서 공부 쪽으로 마음을 정했어요.
둘 중에 어느 분야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공부와 음악 중 갈래를 정하고 나니 고등학교가 고민이었어요. 집 앞 포곡고를 갈지, 한국외대부고(구 용인외고)에 지역 우대 전형으로 지원해 볼지 고민을 했거든요. 용인외고에 비싼 돈을 들여서 갔을 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긍정적인 답을 내릴 수 없었어요. 지금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나 다른 것들을 다 미뤄두고 공부만 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포곡고를 선택했어요.
Q. 다른 어떤 걸 하고 싶어요?
공부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거?! 친구를 만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한다던가,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들을 골고루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학교에 정말 만족해요.
Q. 종종 말 안듣는다는 소리 듣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골고루 듣고 책이나 영화같은 자극에 열려있는 오픈 마인드이면서 오픈 마인드가 아니라고 해야 되나? 의견을 열어두고 수용하는 태도와 대화 토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서로 의견을 교환하거나 토론할 때 그 사람의 생각이 충분히 납득되면 물론 받아들이죠. 하지만 애초에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그런 대화를 나눌 만큼의 생각을 깊이 해보지 않고 조언하는 사람의 말은 잘 안 들어요. 조언을 받아들일 땐 저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결론적으로 판단의 주체는 저예요. 맞아요. 저 부모님 말도 되게 안 들어요.
Q. 어떻게 주관을 만들 수 있었어요?
천성도 조금 있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 오래 살진 않았지만 저는 남의 말에 휘둘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을 만나 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굳이 내가 다른 사람들 말에 하나하나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죠. 특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살아오면서 가치관이 이렇게 잡혀온 거 같아요.
조언을 받아들일 땐 저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결론적으로 판단의 주체는 저예요.
경험하는 순간이 쌓여서 제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해요. 부모님 선생님이 막 ‘공부만 해라’ 하셔도 다 안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걸 다 했거든요. 그래서 순간 순간 새로운 걸 할 때마다 배우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배움을 준 건 고등학자 프로젝트가 아닐까 해요. 고등학자를 했던 작년에 제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아직도 많이 어리고 세상을 보는 눈도 좁지만 고등학자 이후에 세상을 보는 관점도 넓어져서 나무보단 숲을 볼 수 있는 큰 마음이 생긴 거 같아요. 하는 동안 마음이 조금씩 커지고 생각이 크고 있다고 느꼈어요.
경험하는 순간이 쌓여서 제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작년에 학교에서 법과 정치를 배웠어요. 선생님이 혁신학교에 관심도 많으시고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 변혁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어요. 매일 아침 뉴스 중에 와닿는 소식을 수업 시간에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면 집에 가서 다시 검색해보면서 더 관심가더라고요. 법과 정치 수업 때 서로 생각을 나누고 입장을 가지고 토론하는 방법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제가 선생님이랑 티격태격 의견을 나누면서 제 생각을 논리적으로 쌓고 말하는 걸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2017년의 순간들이 제겐 의미있었어요.
Q. 그럼 배움의 범주를 벗어나서 10대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을 꼽자면요?
중고등학교 때 학생회 활동이요! 다른 친구들 보다 좀 더 세상을, 이 사회를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부조리, 관료제 폐해, 이런 것도 먼저 경험할 수 있고요. 저는 고등학교 처음 갔을 때 고등학교 3년 내내 꿈이 학생회장이었어요. 학생회를 중2 때부터 3~4년 정도 하면서 생각이 컸어요. 어른들이랑 더 많이 얘기할 기회가 있었고요.
처음에는 학생 회장이 멋있어서 하고 싶었어요. 1학년 때 3학년이었던 학생회장 누나가 제 초등학교 선배라서 잘 챙겨주셨는데 옆에서 활동하는 거 보니까 엄청 멋있는거예요.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선 학교부터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학생회 부회장도 그러려고 한 거거든요. 직접 해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게있는 자리고 그래서 더 멋있는 자리더라고요. 학생회장은 결국 못 했지만 도전해 봤으니 아쉽진 않아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선 학교부터 바꾸고 싶었어요.
Q. 지금 인생의 목표를 세운다면요?
엄청 큰 목표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항상 현재를 가장 열심히 사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후회하지 않는 게 항상 생각하는 순간 순간의 목표예요. 그리고 슈퍼맨처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거죠.
"이미 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은 충분한데도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작업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자, 내 삶을 연구하다> 책에 적힌 요셉의 한 마디입니다. 연구를 위해 끝의 끝까지 고민했던 경험은 요셉이가 성적과 입시 너머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항상 현재를 가장 열심히 사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말하는 요셉이의 오늘 하루는 어떨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6개월 후,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요셉이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미래에서 기다릴게요.
틴스토리 시리즈 읽기
#00 프롤로그. 시간을 달리는 세가지 질문 카드뉴스(페이스북)
#01 최서희. 고등학자 최서희의 삶을 연구하다. 카드뉴스(페이스북) ㅣ 인터뷰(브런치)
#02 이요셉.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학교의 변화에 나서다. 카드뉴스(페이스북) ㅣ 인터뷰(브런치)
#03 이남경. 내 인생을 거꾸로 바꾼 '거꾸로 캠퍼스' 카드뉴스(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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