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세가지 질문 #03. 이남경
[온더레코드 x 틴스토리] 는 씨프로그램이 만나 온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투자해 오는 동안, 프로젝트에 함께한 친구들의 생각도 함께 자랐습니다. 어떤 순간, 어떤 결정들이 쌓여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는지, 청소년들이 어떤 궤도를 그리며 성장하는지,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긴 호흡으로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씨프로그램이 지난 3년간 만난 청소년 5500명 중 10명의 청소년에게 6개월 마다 같은 3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따라가는 긴 여정입니다. 10주 동안 10명의 Teen Story를 전해드립니다.
거꾸로 캠퍼스는 여타 '프로젝트'와 달리 학교 생활 자체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무학년제 대안 고등학교입니다. 교과목도 시험도 없는 대신 학생들끼리 주제별 맵핑(mapping)을 통해 한 학기동안 어떤 내용을 어떻게 공부할지 같이 계획하고 관심사를 바탕으로 하고싶은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거꾸로 캠퍼스에서는 이름대신 서로를 별명으로 부릅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남경이를 '양갱'으로 부르죠. 꿈도 좋아하는 것도 많은양갱은 거꾸로 캠퍼스에서 겪은 변화를 '양아치 탈출'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했습니다. 친구들과 노는 것만 좋아하던 양갱이 노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것들이 생겼다고 말하는 게 뭘까요?
Q. 거꾸로 캠퍼스의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인연으로 오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네. 아빠가 거꾸로 캠퍼스의 선생님이예요. 여기로 오시기 전 아빠가 거꾸로 교실 수업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공부를 엄청 싫어할 때였는데 아빠가 집에서 같이 해보자면서 수업 시간에 쓰는 게임을 한 번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 때 이후로 '거꾸로 교실'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죠. 어느날 아빠가 거꾸로 캠퍼스에 가게 된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에요. ‘아빠는 이런 데 가게 된다. 너는 어떻니’하고 제안해 주셨어요.
Q. 학교를 그만둔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 때는 사고도 많이 치고 성적도 많이 떨어지던 때라 생각이 많았어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하고 일주일동안 고민을 했어요. 거캠을 가는 건 좋은데 친한 친구가 처음 같은 반이 됐을 때라 헤어지기 싫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긴 이유죠. 그 친구에게 거꾸로 캠퍼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이런 도전을 내켜하지 않더라고요. 대답을 듣고 나니 ‘친구한테 인생을 걸 순 없으니 잘 판단하자’싶더라고요. 그 길로 거꾸로 캠퍼스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 친구와는 가끔 연락은 하는데 만난 지는 오래됐어요.
거캠에 있으면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고민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더 좋더라고요.
요즘엔 제천 집에 내려가도 친구들 만나는 게 재미없어졌어요. 애들만나도 이야기하는 게 '쟤네 사귄대', '쟤네 싸웠대' 이런 거 밖에 없고 항상 똑같이 놀아요. 근데 거꾸로 캠퍼스에 있으면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가 나와요. 고민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더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집에 가도 방에서 할 거 하면서 지내요. 엄마보러 가는거죠 뭐.
거꾸로 캠퍼스에 들어온 순간이요. 아마 여기서 제가 제일 많이 바뀌었을 걸요. 스스로 몰랐던 걸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제 안에 있었는데 건드리지 않고 냅뒀던 부분들도 알게 되었죠. 그 중에 하나가 제가 여기 오기 전엔 그렇게 감정적인지 몰랐어요. 거꾸로 캠퍼스 와서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으니까요. 계속 제 자신을 관찰하다 보니까 어떤 부분인지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제천에서 진짜 사고를 많이 쳤거든요. 싸우고 학생부도 많이 불려가고 공부 안 하고. 근데 그 때는 제가 감정적인 사람인 줄 몰랐고 ‘감정적이다, 이성적이다’라는 말 자체도 몰랐어요. 몰라도 검색할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갔어요. 바꿔야 한다고 생각만 하다가 아빠가 거꾸로 캠퍼스에 대해 권유해 주셔서 큰 마음 먹었죠. 최근에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 놀러갔었는데 다들 제가 얼굴이 순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이야기할 때 최대한 제 감정을 숨기고 이야기하려고 해요.
'양아치 탈출!'
거꾸로 캠퍼스에서 1년 동안 준비가 끝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됐죠.
Q. 감정적이라는 걸 가장 크게 깨닫는 순간은 언제예요?
피드백 받을 때예요. 여기선 발표듣고 피드백을 포스트잇 종이에 써서 줘요. 처음에 제가 그걸 받고 너무 기분이 나빠서 찢어 버렸어요. 근데 종이는 버려도 그 메시지는 되뇌이게 되잖아요. 생각해 보니 제가 진짜 그런 거 같더니,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거꾸로 캠퍼스에서 24시간 같이 생활하다 보면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엄청난 감정과 의견들이 충돌하는 게 눈에 보여요. 원래는 제가 충돌했었는데 이제는 관찰자 입장에서 보게 됐어요. 어떤 부분에서 충돌할 지 보이니까 중재하려고 노력하죠. 철 들었어요.
Q. 벌써 철이 들다니. 거꾸로 캠퍼스는 양갱의 큰 터닝포인트군요.
저는 거꾸로 캠퍼스에 올 때 ‘한 번 제대로 살아보자’하고 마음먹었어요. 진짜 인생걸고 왔어요. 16살에 여기 오면서부터 마음을 확실히 리셋하고 왔죠. 1학기 때부터 절 봐왔던 사람들은 많이 바꼈다고, 대단하다고 이야기하죠. 근데 그 때의 저를 몰랐던 사람들은 '그냥 그렇구나.' 정도에요. 선생님들을 대하는 제 태도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막 대들고 수업 시간에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땡땡이치고 그랬었거든요. 노는 걸 너무 좋아해서 공부하는 걸 자연스럽게 싫어했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학교에 있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건가?’ 싶기도 해요. 수업받는 게 재미가 없을 뿐이지 공부하거나 앉아있는 건 어렵지 않았거든요. 그 때의 저는 저도 잘 이해가 안 가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Q. 제천에선 어떻게 지냈어요?
‘학교에서는 못 지내겠다!’고 생각했어요. 학교다닐 때 친구들이랑 너무 놀았거든요. 시험기간에도 독서실 바닥에 누워서 핸드폰하고 맨날 놀러다녔어요. 사고만 치고 아무 것도 안 했죠. ‘차라리 제천이 아니라 다른 지역이면 뭔가를 더 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했었어요.
제천이 엄청 좁아서 지나가다 누굴 만나면 제가 몰라도 제 옆에 친구 사촌이고 이런 식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애들끼리도 다 알아요. 그렇게 있다 보면 공부할 애들은 공부하는데, 안 하는 애들은 안 하는 애들끼리 모이다 보니까 놀 애들이 엄청 많아요. 저도 그렇게 독서실가서 공부한다고 거짓말하고 놀았어요. 친구에 죽고 친구에 산다는 느낌이었어요.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거꾸로 캠퍼스에 오는 걸 되게 고민했어요. '여기 오면 친구도 없는데.' 하는 걱정때문에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는 뭐 때문에 친구를 그렇게 좋아했나’ 싶어요. 그리고 제천을 벗어나면서 친구가 자연스럽게 걸러지게 됐어요.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걔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게 거꾸로 캠퍼스에 오면서 명확해 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4명 정도만 만나요.
제천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것만 좋아하던 제가
거꾸로 캠퍼스 와서 제일 많이 달라졌어요.
Q. 예전엔 친구가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 지금은 어떻게 결정해요?
거꾸로 캠퍼스와서 우선순위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젠 친구들이랑 노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예요. 노는 건 제가 여유로울 때만요. 예전에는 노는 건 친구들이 원할 때나 부를 때 언제든! 이었는데 지금은 노는 거보다 제 프로젝트가 더 급해요. 더 하고싶고요. 제가 하고 싶은 걸로 프로젝트를 하니까 숙제라는 생각도 한 번 안 해봤어요. 그러고보니 놀자는 말도 안 한 지 꽤 됐네요.
Q. 요즘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영상은 발표할 때 효과적이니까 가끔 작업하고 있어요. 화니쌤이 지난 번 영상 알려주셨을 때 했던 작업 마무리한걸로 다시 작업하기도 해요. 요즘은 아직 학기 초 워밍업 중이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없어요. 발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있어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발표는 재밌어요. 어떤 주제로 뭘 하든 제가 그냥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오히려 요즘엔 뭘 안 하면 불안해요.
거꾸로 캠퍼스에서는 수업 시간에 발표할 일이 진짜 많아요. 특히 거꾸로 캠퍼스에서 작년 7월에 첫 성과 발표회했던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반 년동안 거꾸로 캠퍼스에서 뭘 했고 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발표하는 자리였어요. 그 때가 ‘내가 원래 이런 아이였는데 이렇게 변하게 되었다’라는 걸 스스로 인지했을 때였거든요. 발표를 하고 나서 스스로 더 분명히 알게 됬죠. 사람들도 많이 와서 들어주셔서 제일 뿌듯했어요. 성과 발표회 같이 외부 사람들이 많이 올 때 자신감이 더 많이 생겨요. 더 발표할 맛이 나요.
Q. 변화를 인지 하게 되었던 때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학기 별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1~2학기 때는 교과 지식보다는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제가 감정적이란 걸 인지한 것처럼 기본을 잡았죠. 3학기인 이번 학기부터는 프로젝트나 활동에 더 중점을 두려고 해요. 지난 1년 동안 준비를 마친 것 같아요.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할 사람이 없었어요. 갑자기 누구한테 가서 '저 준비 끝났어요!' 할 수도 없고요. 인터뷰할 때가 제일 솔직한 거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Q. 배움의 방법도 많이 변했을 것 같아요.
모든 순간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있을지 유심하게 관찰하고 배우는 습관이 생긴 거 같아요. 지금 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순간 순간 끊임없이 생각이 떠올라요. ‘아, 이런 건 내가 나중에 이렇게 갖다쓸 수 있겠다.’ 하구요. 노는 순간에도 프로젝트를 생각할 정도예요. 일단 필요할 것 같으면 다 해둬요. 거꾸로 캠퍼스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도 모든 것에 연결점을 찾아요. 기승전 연결! 안 보려고 해도 연결 지점이 보이니까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찾기도 해요. 그럴 땐 소름끼치죠. 지금도 머릿속에서는 연결할 것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거꾸로 캠퍼스 사람들의 특징이예요. 이상한 곳이예요.
Q. 양갱은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어디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은 디자인이 좋아요. 카페나 인테리어 분위기 좋은 공간들이 눈에 띄어요. 공부할 때도 분위기를 많이 타서 집에서는 집중을 잘 못 해요. 모든 건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하고 싶어요. 하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잘 몰라서 진짜 좋아하는 건지 고민하고 알아보는 단계예요. 부모님은 제가 디자인에 관심있는지 아직 모르세요. 아직 말씀은 안드렸거든요. 그래도 라파랑 거꾸로 캠퍼스 달력도 만들어서 나눴어요. 아직 계획 중이긴 하지만 디자인 쪽으로 프로젝트를 하나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어릴 때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고 운동을 좋아해서 태권도, 복싱, 주짓수도 했어요. 학교에서는 피구와 축구부를 꾸준히 했고요. 다만 선수가 될 꿈까지는 가지지 못했어요. 주변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게 신경쓰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끔 쭉 적어 내려가다 보면 좋아하던 것들도 안 좋아지는 순간이 와서 목록이 자꾸 바뀌어요. 그만큼 한 개를 진득하게 못 하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양갱은 가슴에 품고 있는 좌우명같은거 있어요?
없어요. 멋있는 말들도 찾아봤는데 아직 마음에 딱 와닿지 않더라고요. 새벽에 “그 느낌, 그 향기, 그 날이 우리를 기억하더라.” 라고 적어봤어요. 어때요? 이런 문구를 친구들이랑 만들어서 거꾸로 캠퍼스 달력에 넣었어요. 옛날에 시 쓰는 것도 좋아해서 문구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좌우명은 그냥 제가 직접 하나 만들려고요.
Q. 졸업하면 뭐 할거예요?
아직 대학을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미래를 위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만점받고 싶어요. 그러려면 고등학교 과정을 좀 더 알아야 하니까 내년이나 내후년에 보려고요. 사실 대학을 안 가도 제가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겠지만 좀 더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을 때가 오면 대학을 가야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너무 먼 미래까지는 생각을 못 하겠어요. 당장 내일 프로젝트 생각만 생각해도 벅차요.
그래서 가끔 인터뷰할 때 ‘나중에 졸업하고 뭐 할 거에요~?’ 하는 질문이 되게 막막하게 들려요. 저도 PaTI(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같은 데 그냥 찾아본 정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요.
아직 대학을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미래를 위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만점받고 싶어요.
Q.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요?
원래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요. 요즘은 미니멀하게 살아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는 생각으로 바꼈어요. 평생 거꾸로 캠퍼스에서 프로젝트만 하면서 살고 싶기도 해요. 제일 마음이 편하고 재밌거든요. 60세 쯤에는 놀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기반이 있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여행다니고. 그렇다고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오래 살기 위해 난리를 치는데 오래 살아서 뭐가 좋죠? 아픈 것도 더 아플텐데…. 그래서 저는 한 70대까지 건강하게 적당히 살고 싶어요.
당장 내일 프로젝트 생각하느라 바빠서, 너무 먼 미래까지는 생각만 해도 벅차다고 말하는 양갱의 목소리에는 스트레스보다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재밌어서 평생 거꾸로 캠퍼스에서 프로젝트만 하며 살고 싶다고까지 말하니까요. 제천에서 서울로 옮겨오면서 생활의 중심이 180도 바뀐 양갱은 과연 6개월 뒤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관심사와 고민을 풀어놓게 될까요? 미래에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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