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세가지 질문 #05. 정윤서
[온더레코드 x 틴스토리] 는 씨프로그램이 만나 온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투자해 오는 동안, 프로젝트에 함께한 친구들의 생각도 함께 자랐습니다. 어떤 순간, 어떤 결정들이 쌓여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는지, 청소년들이 어떤 궤도를 그리며 성장하는지,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긴 호흡으로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씨프로그램이 지난 3년간 만난 청소년 5500명 중 10명의 청소년에게 6개월 마다 같은 3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따라가는 긴 여정입니다. 10주 동안 10명의 Teen Story를 전해드립니다.
윤서는 2017년 1월 한창 추웠던 겨울, 유스벤처 활동상을 소개하는 스토리텔링 데이 (Storytelling Day) 에서 똑부러지게 발표하는 모습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유스벤처(Youth Venture)는 초, 중, 고등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입니다. "교실과 세상이 연결될 수 있다면, 스스로 찾고 공감한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다면, 청소년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아쇼카 한국과 시도한 실험은 전국 200개가 넘는 학교에서 동아리, 수업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현재 유쓰망고에서 유스벤처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내 운동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가 수업을 만든 윤서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Q. 윤서는 왜 일반고등학교가 아닌 전인고등학교를 선택했어요?
세 살 터울 친오빠가 춘천에서 전인고를 다니다가 목포로 내려왔는데, 학교에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프로젝트도 하는 게 부러웠어요. 저는 목포에서 중학교를 나왔는데 사실 맨 처음에는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가고 싶지 않다. 다른 어디든 괜찮다!’라고 생각해서 춘천에 있는 이 학교로 왔어요.
학생 수는 적지만 친구들끼리 서로 잘 챙겨주는 것도,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가 자기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아요. 발표도 많이 하고, 선생님이랑 친구들끼리 피드백을 많이 하니까 계속 자기를 되돌아보면서 배우거든요. 여기선 많은 친구들이 자기를 숨기지 않고 솔직해지는 거 같아요. 제 성격이 내향적에서 외향적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춘천 전인고등학교는 인성과 창의력 향상에 중점을 둔 특성화고등학교입니다. 2012년부터 동아리학급인 소스쿨(小school)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윤서의 소스쿨 활동이 담긴 기사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Q. 본가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일상은 어때요?
주말에는 주로 학교에서 주말 자습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만 서울에 있는 고모댁에 가요. 방학 때는 체인지메이커 캠프나 영상을 배우고 싶어서 여러 프로그램도 알아봤고요. 그러다가 1학년 입학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김성광 선생님덕분에 유스벤처를 만났죠.
Q. 유스벤처에선 어떤 걸 했어요?
먼저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문제점을 찾아보고, 뉴스 기사도 찾아 읽어봤어요. 그 때 헤럴드 뉴스에 ‘학생 운동량 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뜬 걸 보고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제의 심각성을 다른 친구들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PPT를 만들어서 발표를 한 거죠. 교내에서도 했고, 체인지메이커 캠프에서도 했고, 교육청에 가서도 했어요.
운동 부족 문제를 요가, 배드민턴으로 해결한 ‘Re:Jeon-in’ 팀 활동을 마무리짓고 ‘동전’ 팀으로 청소년 수면 부족 문제를 새로 하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같은 팀이었던 친구들이 지금은 다 다른 소스쿨 소속이 됐고, 이제 고3이라 모이기 어렵게 됐어요. 그리고 수면 부족은 학교에만 적용하기 힘든 문제라… 전체적으로 봐야하는 거잖아요. 전인고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운동 부족 문제는 중고생 비교, 남녀 비교 통계치가 있었는데 여학생이 훨씬 심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문제를 학교에 대입해서 여학생 운동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같이 배드민턴도 하고 요가도 했어요. 올해부터는 남학생들은 학교 밖 농구장이 있는 곳에 가서 농구하고, 여학생들은 수영장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요가도 하고싶은 학생들이 생기면 계속 할 거 같아요.
지금은 김성광 선생님께서 체인지메이커 활동을 수행 평가로 만들어서 학교 안에 체인지메이커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계속 알리고 계세요. 수행평가로 교내 캠페인을 해보고, 뭘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하시더라고요. 거기서 실제로 작년에 유기견 문제 해결을 위한 팀도 나왔어요.
Q. 유스벤처하면서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일단 발표 자료를 만들어서 심각성에 대해서는 알리고 있었지만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는데, 발표한 내용을 가지고 교육청에 가서 똑같이 말을 했어요. 여학생들이 운동이 너무 부족하다! 그랬더니 거기 계신 선생님께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느 날 갑자기 요가 선생님이 학교에 오시고 매트가 생기더라고요.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그전엔 요가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유투브틀고 매트없으니까 장판깔고 하고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갑자기 요가 선생님도 오시고 매트도 지원되니까, ‘아, 이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죠.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어요. 거의 1년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랬더니 ‘장판가지고 어떻게 하겠냐’ 하던 애들 중에도 하고싶어 하는 애들이 많이 생기고, 여자애들 말고 남자애들도 하고싶어 했어요.
교육청에 직접 문제 의식을 이야기했더니
생각보다 빨리 변화가 왔어요.
지금은 요가를 하지는 않지만 계속 하고싶어하는 애들이 있어서 기숙사에서 매트관리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녁에 기숙사들어가면 아예 운동을 안 하니까 저녁 운동을 하자고 해서 자기들끼리 하는 애들도 있어요. 공식적이진 않지만 계속 이어지고 있죠.
전인고와서 정치, 경제 쪽에 밝은 남자 아이를 한 명 만났는데, 목포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는 그런 쪽으로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경제를 잘 아는 친구가 말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여서 저도 좀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랑 같이 경제 소스쿨에 들어갔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한테 계속 뭔가 배우면서도, 빨리 따라잡아서 라이벌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면서 언론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게 되는거예요.
그리고 그 친구가 또 언론 미디어 동아리였거든요. 그래서 ‘나도 공익 광고같은 걸로 사람들한테 사회 문제를 알려서, 어떻게 해결할지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 그걸 어떤 식으로 해나갈 것인가를 체인지메이커 활동이 도와준거죠. 이 활동 자체가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찾아서 알리고, 집단 지성으로 다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잖아요. 문제점에 대해 피드백받아보고 그걸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교육청, 경찰서도 가보고 캠프가서 스토리텔링 활동도 해보면서 ‘아, 이게 해결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문제를 잘 아는 똑똑하고 멋진 친구를 닮고 싶어요
그래서 체인지메이커 활동을 이어서 아까 말씀 드렸던 친구와 같이 소방관 처우 문제에 대한 영상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같이 했어요. 직접 인근 소방서에 가서 소방관들을 인터뷰하고나니 좀 더 정확한 사실을 듣게 된거죠. 보통이면 라디오나 뉴스만 찾아보고 말았을텐데, 직접 인터뷰를 한 게 저한테는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지금도 걔를 못 따라가고 있거든요. 항상 따라갈 만 하면 이미 2배를 알고 있더라고요. 제가 내신 성적으로는 좀 더 나은데 그 친구는 노동, 인권, 정치같은 사회 문제를 엄청 잘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 아는 척 하다가 부끄러웠던 적도 있고요. 좋은 친구인데도 많이 싸웠어요, 의견이 안 맞아서도 그랬고 조금 깔보는 거 같기도 해서요. 확실히 어른스러워서 애들보다 선생님들이랑 더 친하고, 친구들은 살짝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하다가 싸우고, 선생님한테도 많이 혼났어요.
보통이면 라디오나 뉴스만 찾아보고 말았을텐데,
직접 인터뷰를 한 게 저한테는 인상적이었어요.
목포를 떠나는 건 아무 미련이 없었어요. ‘나중에 목포대를 가더라도 중학교 때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냥 그 때는 좀 창피했어요. 대학에 갔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이 또 교실에 있어서 같이 사진첩 열어보고 이러는 모습이 너무 상상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여기만 아니고 어디든 된다는 생각을 했고. 사실 서울을 좀 동경했던 거 같아요. 꼭 서울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조금 더 큰 곳에 나가보고 싶었고 조금 다른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같은 학생들이랑만 있으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 거 같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조금 더 큰 곳에 나가보고 싶었고
조금 다른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초/ 중학생 때 ‘착한 아이 컴플렉스’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서울에 살다가 목포로 전학갔었는데, 애들이 저를 서울에서 온 바른 아이 이미지로 본 거예요. 사실 똑같은데. 그 때부터 윤서는 착하니까- 하니까, ‘아, 나는 바른 아이여야 해, 이래야 해’ 이러면서 계속 속으로 썩히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다른 데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전인고를 왔는데, 여기가 제 자신을 표출하기에 딱 맞았던 거 같아요. 누굴 만나든 꾸밈없이 솔직할 수 있거든요.
Q. 고등학교 이후, 대학입시를 결정해야할 때는 어떤 기준이 중요할까요?
아무래도 제 생각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 게, 제가 잘하든 못하든 제 탓을 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대학을 꼭 가야겠단 생각은 안 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하고 싶은 영상 제작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쪽이잖아요.
학교가 나한테 좋을까?
오히려 틀에 박히고, 옛날에 있던 것만 배우게 되지 않을까?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는건데,
그런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학교에서 굳이 배워야 하나?
라는 생각에 굳이 안 가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인맥도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서 요즘엔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도 사귈 수 있고, 교수님 생각보다는 제가 제 생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친구 관계도 중요하죠. 학교들어와서 내신, 독서, 소스쿨 활동 다 바쁘니까 친구 관리를 정말 못 했거든요. 그래서 저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한테 미안한 일도 생겼고요. 그래도 지금은 수시랑 면접 생각밖에 안 나요. 친구들한테 지금은 바빠야 할 때같으니 이해해 달라고 이야기했고, 다행히 친구들이 괜찮다고 해줬어요.
글읽는 건 진짜 못 해서 책도 잘 안 읽고, 대신 영상이나 음성을 많이 찾아봐요. 책읽을 것도 그냥 강의를 듣거나, 영화를 진짜 많이 봐요. 그래도 중학교 3년동안 책 2권밖에 안 읽는 수준이었는데, 고2 때 꿈이 캠페인 기획자로 명확해 지고 나서는 꿈에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거예요.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내 꿈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책을 하나씩 읽었는데 그게 다 광고, 글쓰기, 말하는 법, 에세이, 경제 쪽이더라고요. 되게 재미가 없어요. 그러다가도 박웅현 선생님이나 재밌게 글 쓰시는 분들 책 읽으면 많이 배우죠. 책은 도끼잖아요. 진짜 제 멘토에요.
책이랑 사회 배경에 관심이 많아요. 저희 나이대가 살아가는 사회가 너무 뒤죽박죽이고 잘못된 정보를 접하기도 쉽고 뭐부터 알아야 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과정에서 더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찾아보면서 많이 배워요.
학교에서는 사실 광고를 하고 싶었는데, 그 외의 것들을 배우는 경우도 많이 생겨요. 예를 들면 학교 뉴스를 제작하면 아나운서 대본을 쓰게 될 때도 있어요. ‘나랑 관련이 없는데 이걸 왜 해야하지?’ 고민되서 선생님이랑 상담도 해 봤는데,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다’라고 말씀해 주시긴 했어요. 그래도 제 생각엔 이게 절대 저한테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죠. 선생님 말씀에 힘은 나지만 그렇게 귀담아 듣진 않아요.
더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찾아보면서 많이 배워요.
Q. 윤서는 하고싶은 게 뚜렷하네요. 공익 광고 캠페인 기획자라.
이거 때문에 경제 동아리에서 영상/언론 미디어 동아리로 바꿨어요. 공익적인 성격을 가진 봉사활동도 하고, 관련 분야 종사자 분들 인터뷰도 많이 하면서 영상 제작을 배우고 있어요.
Q.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모님은 제가 수학이랑 과학을 좋아하니까 수학 교사나 빅데이터 관련된 직업을 가지라고 하셨지만 저는 공익 광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별 다른 말씀없이 그냥 ‘너가 하고싶으면 해야지’라고 하세요. 중학생 때까지는 화가나 예체능 쪽을 하고 싶었는데, 그건 현실성이 없다는 부모님 말씀이 있어서 생각해보다가 이거 하고 싶다- 라고 마음먹었어요. 중학교 때는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고등학교 올라오니까 더 이상 터치를 안 하시더라고요.
Q. 분명한 꿈이 있으니 물어보고 싶네요. 윤서의 좌우명은?
궁금해하고 이해하자.
박웅현 선생님 책을 다 읽어봤는데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항상 관찰하라” 더라고요. 관찰하고, 거기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 세상이 달라보일 거다, 산다는 것 자체가 제일 행복한 거다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뭐든 소소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들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냥 광고도 아니고 ‘공익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아주 구체적인 꿈을 향해 단단하게 한 발씩 내딛고 있는 윤서. 친구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자극을 주고 받고, 책도 읽고, 교내 프로젝트도 부지런히 진행하면서 고3 생활을 다른 의미로 알차게 채워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개월 뒤 윤서의 ‘아, 이게 되는구나’ 깨달은 일들의 목록에 어떤 항목이 추가되어 있을까요? 미래에서 기다릴게요.
유스벤처의 활동은 유쓰망고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청소년과 지지하는 어른들의 플랫폼, 유쓰망고의 활동을 살펴보세요.
- 빠띠 (청소년 체인지메이커 교류 플랫폼) https://youthmango.parti.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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