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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May 29. 2019

배움에 진지한 사람들의 학교

히로시마에서 만난 TGS

THINK Global School(이하 TGS)은 소은 님의 소개만으로도 매력적이었지만, 실제로 수업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대안으로 등장하는 많은 학교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배우는 학교는 있지만 TGS 만의 학생 선발 방식, 수업 방식, 평가 방법, 교사의 역할, 지역과의 연계성이 모두 흥미로웠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전합니다. 


메인 거리에서 멀지 않은 건물 2층 공간을 빌려 교실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진짜 로컬에서 배우는 건 이런 것이지 


수업은 서로 다른 세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두 곳은 히로시마의 메인 거리인 혼도리 거리와 멀지 않은 곳에, 한 곳은 히로시마 중심 부의 평화기념공원을 끼고 흐르는 모토야스 강 근처에 있어서 수업을 오가면서 도시의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종종 간단한 대화는 세 곳 사이의 카페에서 하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학교로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옆 건물 1층에는 지역의 장애인들이 만든 굿즈와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가, 맞은편에는 도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컨벤션 센터 건물이, 한 블록만 가면 히로시마 사람들도 줄 서는 소바 맛집이, 코너를 돌면 게임과 관련한 모든 것을 파는 큰 상점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도시의 면모를 보기에도 최고의 교실입니다.


요리 수업까지 가능한 넓은 조리 공간을 갖춘 이 곳이 교실!

  수업은 VR, 에너지, 마케팅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참관 첫날엔 이런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VR 모듈 : 히로시마의 곳곳을 촬영해 히로시마까지 올 수 없는 사람도 마치 직접 온 것처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영상 만들기

에너지 모듈 :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본 일본의 미래 에너지를 찾는 것을 목표로 히로시마현 의회 환경과를 찾아가 강의를 듣고 질문 주고받기

마케팅 모듈 : '히로시마 브랜드' 제품 디자인 공모에 출품하는 것을 목표로 패키지를 관찰하고 따라 그려보기 

 

저는 마케팅 수업을 선택했습니다. 교실에 준비된 눈금 도화지와 종이 패키지에서 기술 시간의 제도 수업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생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패키지를 무작정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함께 떠올려보는 마인드맵핑으로 시작해 더 이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뒤에야 따라 그리기 시작합니다. 교사는 비율을 계산하는 방법은 알려주지만 완벽하게 그리기를 요구하진 않습니다. 대신 잘 관찰하라는 조언을 덧붙이죠.


과연, 여기서 '히로시마 브랜드'가 될 제품이 나올까요?

히로시마는 굴과 레몬이 특산물이라 같은 브랜드 제품이라도 맛을 달리해 한정판으로 판매되기도 하고,  '히로시마 브랜드' 디자인 공모전에서는 히로시마의 특색을 잘 살린 제품 디자인을 공모받아 1년에 한 번씩 시상하기도 합니다. 물론 출품을 목표로 하기엔 8주 안에 제품화까지 성공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교사는 나라를 넘나들어서도 연결해볼 수 있도록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만들어볼 수 있는 종이 패키지를 수업 재료로 선택했습니다. 히로시마 모듈이 끝나더라도 이곳에서의 마케팅 프로젝트를 더 이어가고 싶은 친구들은 출품을 목표로 계속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배움을 디자인하는 거라
마음껏 길게 할 수 있어요.
저는 나라를 넘나들며 연결될 수 있는
배움의 소재를 선택합니다. 
- Chunb Man Chan, TGS 마케팅 모듈 교사



배움에 진지하다는 것 


TGS의 학생들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모두가 배움에 진지하다'는 것입니다. 배움에 진지하다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저는 필기를 열심히 하거나 곧은 자세로 책을 읽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TGS 학생들이 배우는 모습은 떠들썩합니다. 수업시간의 대부분은 학생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쏟아내거나 현장에서 전문가와 대화하며 실습하는 과정으로 채워지기 때문이죠. 


다만 각자의 방법으로 몰입하며 길을 찾고 있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는 간단한 질문도 의아한 점이 있다면 그냥 넘기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들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선생님과 주변의 친구들을 설득해 대화의 자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전에 머물렀던 나라에서 떠오른 질문을 계속 이어서 고민하기도 하고 새로운 질문을 찾아 교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매 모듈이 달라서
제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전통적인 학문은
계속 과목을 구분 짓지만 
여기선 그냥 다 섞으면 되거든요.
- Isabella, TGS 학생 


포트폴리오의 레이아웃을 잡는 단계예요.

 

진지한 배움은 프로젝트를 이끄는 질문(Driving Question)으로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과정에서 기준이 되는 질문을 설정합니다.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을 때 자신이 설정한 질문과 평가 기준을 반영해 스스로에게 내린 학점을 바탕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보츠와나, 인도를 거쳐 일본에서 세 번째 모듈을 시작한 친구들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 단계이기에 수업 전반부에 질문을 설정하고 함께 리뷰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질문이 정해지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의 기관과 협업하기도 합니다. 



기본기부터 탄탄히

 

 TGS를 참관하며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 수업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리서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수업으로 참고문헌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법, 출처를 명시하는 법 등을 알려줍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각자의 방법을 공유하면서 신뢰도의 기준을 정하기도 하고, 프로젝트에 보강할 자료를 찾는 데 바로 적용해보기도 하죠.


바로 자신이 필요한 자료를 찾으며 기준을 찾거나(좌), 모두가 함께  모여 협업툴을 배웁니다(우)


다른 하나는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메일 쓰는 법, 구글 드라이브 정리법, 용도별로 어플을 쓰는 법 등 다양한 협업 툴을 배우는 수업입니다. TGS는 개인 프로젝트도 있지만 협업기반의 과제도 많기 때문에 필요한 다양한 협업 툴을 함께 배웁니다. 저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고등학교에서 앞서 접하게 되는 거죠. 

 


지식만 배우는 건 아니니까 


사람이 모인 곳에는 늘 관계가 화두입니다. TGS도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함께 하는 데다, 다양한 나라에서 서로 다른 문화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기에 발생하는 충돌이나 갈등도 가지각색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학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무언가를 한참 준비하더니 교사 무리가 방에 입장하며 작은 워크숍이 시작되었습니다. 워크숍의 오프닝은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게임이었어요.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게임의 룰은 간단합니다. 서로 다른 그림의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지도를 두고 정해진 순서대로 이동하여 길을 건너야 합니다. 앞뒤, 양옆, 대각선 방향으로 모두 이동이 가능하지만 한 번이라도 틀리면 다음 사람에게 순서가 넘어갑니다. 서로에게 소리를 내서 알려주어서도 안되고, 모든 사람이 순서를 틀리지 않고 이동할 때까지 계속합니다. 


게임이 끝난 순간 진짜 워크숍은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결승선에 섰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게임 구성 의도는 무엇인지, 게임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협업을 할 때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난 모듈에서 미처 조율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다툼들을 이야기하면서 오해를 풀기도 합니다. 협업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기에 마주하게 되는 문제나 충돌을 해결할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TGS의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고수의 느낌


TGS @히로시마 탐방을 앞두고 일정이 궁금하던 차에 TGS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호텔 추천, 수업 일정, 도움이 될 수업에 대한 설명, 수업 중간에 잡은 필요한 미팅들, 구글 캘린더 초대까지. 한 통의 메일에 복잡하지 않게 궁금했던 모든 내용을 잘 정리해 담은 덕분에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없이 빠르게 결정했고 차질 없이 히로시마에 도착했습니다. 첫 미팅은 TGS 운영진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간단한 소개부터 수업의 내용과 일정의 꼼꼼한 부분까지 서로의 이해를 맞추었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교사들과 학생들도 이미 우리의 방문 일정을 잘 알고 있어서 실제로 매 수업을 참관한 후엔 교사, 학생들과 별도의 소개 절차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자료를 함께 보고, 수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히로시마에서의 마지막 여정으로 TGS 교사회의에 초대받았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자 구글 드라이브와 오늘 회의 안건이 적힌 공유문서를 켜서 각 항목에서 교사의 의견을 빠르게 모으고 다음 회의까지 해야 할 일을 정하는 동시에 정리를 끝냈습니다. 중요한 평가 기준을 두고 단어를 고르며 함께 문장을 고치는 작업도 공유문서로 뚝딱.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알려준다고 생각했던 협업 툴의 사용 법을 알려주는 수업은 아마 누구보다 협업 툴을 잘 사용하는 교사회의로부터 시작된 것이겠지요.


TGS 수업 참관을 마치는 날 받은 선물과 응원의 편지



쇼케이스, 배운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포맷

 

한 달 후, 히로시마 모듈을 마무리하는 쇼케이스를 찾아갔습니다. 행사에는 일본어 통역이, 포스터와 안내 책자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같이 표기되어있어서 지역에서 관심 있는 누구나 올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관중의 20%는 현지인이었어요. 직접 오지 못하더라도 페이스북 라이브로 쇼케이스를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쇼케이스는 VR, 에너지, 마케팅 모듈 별로 배운 내용에 대한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발표자는 1-2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해당 모듈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관중이 던지는 질문에 함께 답변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두 가지는 모든 모듈의 프로젝트가 지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결과물로 프로토타이핑을 도출했다는 점입니다. 


VR 모듈에서는 직접 찍은 영상을 VR기기로 체험할 수 있는 부스를 마련했습니다. 제가 체험했던 영상은 한 학생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고 마치 함께 걸어가는 것처럼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이어지는 영상이었습니다. 필요한 영상과 자료는 멈춰 서서 볼 수 있어서 정말 가상현실에 와있는 기분이 듭니다. 여기서 다루는 역사적 내용은 홈페이지로 정리해서 VR 체험 전 후로 살펴볼 수 있도록 준비해서 이해하기도 편했습니다.


(사진 @TGS 인스타그램)


에너지 모듈은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반영한 에너지 플랜을 세우기 위한 과정에서 배운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지리적 요소와 정부, 환경 NGO, 시민 등 다른 이해관계자가 얽혀 에너지가 작동하는 방식을 하나의 보드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여러 상황을 잘 살펴야만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게임입니다.



마케팅 모듈에서는 제품을 기획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내년 '히로시마 브랜드' 출품을 목표로 했기에 레몬, 단풍 과자를 포함한 히로시마의 특산품을 내세워 리패키징한 제품이 많았지만, 주 타겟층을 고려한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까지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은 히로시마에 관광을 오는 분들이 호텔에 머물며 도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 결과 레몬향을 포함한 다양한 향의 '럭셔리 바스 솔트'를 기획했고, 개별 포장해 담을 수 있는 패키지를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었더라고요. 



이외에도 히로시마 원폭 피폭자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인터뷰 영상을 만들고 ,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던 현장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고, 히로시마 지역의 아티스트를 연결하고, 전 세계의 청소년 또래 친구들에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묻고 답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개인 프로젝트도 흥미로웠습니다. 


TGS는 짧다면 짧은 8주 안에 할 수 있는 모든 지역의 이점과 요소를 연결해 배우고, 학생들은 해낼 수 있는 역량만큼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주제를 다룰지 기대될 정도로요. 앞으로의 TGS와 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기대됩니다. 


글 : 러닝랩 매니저 황혜지 


매주 수요일 온더레코드의 뉴스레터가 새로운 배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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