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의 세 번째 키워드 [다음 세대 : Who's Next?] 시리즈에 이어 흥미로운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다양한 콘텐츠에 담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번 주에는 거꾸로캠퍼스 학생 채현이가 거꾸로캠퍼스의 학생조직을 직접 만드는 1년 6개월 간의 과정을 한 편의 글로 썼습니다. 누가 정해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학생 조직이 아닌 개개인의 성장과 공익을 위해 권한을 정하고 나누는 필요에 의한 학생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다음세대와 조직을 구성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
거꾸로캠퍼스의 학생조직은 일반적으로 구성된 학생조직과는 다릅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던 형태로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만드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반장, 부반장으로 구성된 일반 학교의 조직과는 달리 사업을 진행하는 다양한 부서에서 누구나 활동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건강 및 안전을 주제로 한 활동을 기획하는 건강안전부, 문화사업을 하는 문화행사부, 예산을 관리하는 회계재무부, 재미있는 상상들로 기획해 좋은 사업을 이끌어내는 유캔트라이애니띵부, 학생조직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명예와 부, 조직 홍보 콘텐츠를 기획하는 콘텐츠홍보부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 부서의 부장의 권한을 견제하는 순환 임원과 사업을 진행하고 각 부서의 부장이자 임원으로 회의하는 고정 임원, 총회와 임원회를 진행하고 긴급 결정권을 가진 학생 헤드가 있고 의사결정은 최고 결정 기구인 총회에서 이루어집니다.
학생조직을 갖춘 후엔 평화로운 학교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여기서 저의 진짜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금의 거꾸로캠퍼스는 안전하면서도 아주 유연한 곳입니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학생이 보호받고,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잘 갖춰진 조직과 규칙 이면엔 유연함의 불안보다 안전함의 유혹에 갇히기 쉽습니다. 신입생이 늘어나며 학생조직의 의의를 모르는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임원진에 신청하는 학생들이 부족해 임원회의를 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구성원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임원진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멋진 일들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얼마나 열려있는지 학교의 변화를 눈으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죠. 그렇다고 지난 과정들을 과거 이야기하듯 전달하기보단 구성원 누구나 언제든지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거꾸로캠퍼스에 온 후 이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반장의 역할은 뭐였을까? 선생님들 짐 들어주기? 인사, 종례 하기? 여기는 반장이 없어도 학교가 잘 돌아가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생 수가 30명이 되었을 때에야 반장과 부장들의 존재가 달리 보였습니다. 반장, 부반장의 역할은 함께 성장하기 위한 문화를 잘 다지는 것이더라고요. 더 잘해보려는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한 사람 당 2명만 설득하면 되는 규모였기에 공식적으로 역할을 부여하고 공언하지 않아도 학생들끼리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직관계를 만들기보단 수평적인 관계를 더 유지하길 바랬죠. 하지만, 전교생 수가 40명이 되었을 땐 수직관계가 필요했습니다. 잘해보려는 사람이 10명이라도 혼자 4명을 설득하긴 무리였거든요. 이야기할수록 갈등은 깊어갔고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나중에는 서로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도 했어요.
잘해보려다 지친 10명이 모여 ‘같이 배우는 학생인데, 왜 우리만 이런 문제를 끙끙 앓아야 할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는 없을까?’라며 나누었던 대화를 시작으로 사회시간에 배웠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응용해 학생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총회의도 열지 않고, 누구의 피드백도 받지 않고 한 명 한 명 찾아가 조직 참여를 설득했습니다. 학생조직이 갖춰진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조직이 생긴 후 우리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모두의 공식적인 동의를 받지 않은 이상한 권한이 생겨났으니까요.
구성원이 다시,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서로의 권한’이었습니다. 개개인의 성장과 공동의 이익을 모두 생각하는 학생조직이 필요했으니까요. 전교생이 4시간 내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의외로 더 나은 조직을 위해서는 적당한 수직관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모든 의견을 수렴한 후 학생 조직을 구체화할 ‘학생조직 준비 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정관을 분석하며 써 내려간 거꾸로캠퍼스 학생조직 정관에는 학생조직의 목적과 역할, 역할의 권한을 명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만든다고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 구성원이 지켜야 할 문화와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마구 뒤섞여도 학생조직이 가야 하는 방향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거꾸로캠퍼스 학생조직의 문화를 콘텐츠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게 학생조직이란 콘텐츠홍보부에서 맡은 역할 이상으로 관심사에 깊이를 더하고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큰 경험이자 배움입니다. 나와 우리에게서 시작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학생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경험으로 구성원과 문화를 공유하고 콘텐츠로 가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거든요. 사최수프 프로젝트를 하며 조직의 문제와 연결된 세상의 일로 시야를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예술과 큐레이션이라는 저의 기존의 관심사가 문화 공유와 콘텐츠 가공이라는 새로운 관심사를 만나 세상의 문제를 예술의 관점으로 공유하는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걸 꿈꾸고 있기도 합니다. 모두 다 학생조직을 만든 경험 덕분입니다.
콘텐츠홍보부는 새로운 사업으로 <거꾸로캠퍼스 변천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학생조직의 발전과 학생조직의 의의를 우리의 한 문화로, 이야기로 공유할 계획입니다. 학생조직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갈등과 1년이라는 불안한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해결점을 찾았고, 더 멋진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학생조직은 권한과 역할의 부여로 한정짓기보단 더 나은 성장을 할 수 있는 그릇을 학생들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이니까요.
글 & 디자인. 거꾸로캠퍼스 학생 강채현(다다)
편집.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황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