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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May 08. 2020

좋은 시험 문제는 어떤 문제일까요?

선발의 목적이 유지되어도 무엇을 볼 것이냐에 따라 시험은 달라집니다.

책첵토크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 또는 자료를 보고 대화하는 자리로 해당 주제를 깊이 있게 사고하는 호스트와 함께합니다. 이번 첵책토크에서는 '좋은 시험문제는 어떤 문제일까요?'를 주제로 다양한 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의 기록을 공유합니다. 



어떤 시험문제를 마주해왔나요? 


'다음 시에서 빠진 구절의 빈칸을 알맞게 채워 넣어라'


'다음 영어 본문의 빈칸을 알맞게 채워 넣어라'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위 문제는 제가 중고등학생 때 지필평가때 만나온 문제들입니다. 시의 구절과 영어 본문을 통째로 외우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지요. 시 해석능력, 영어 독해력과는 거리가 있지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학생들은 참고자료의 제시문을 달달 외우곤 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에 와서도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험을 만납니다. 그중에는 공부한 내용을 평가하는 시험도 있었고 타고난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해온 모든 시험 문제들이 적절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적절하거나 좋은 시험 문제란 어떤 문제일까요 ?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출처. ebs 다큐 <시험> (1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모임 전 함께 나누어본 다큐멘터리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에는 인도 비하르 주의 고교 졸업시험과  중국의 대입시험인 가오카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독일의 아비투어 등 다양한 나라의 시험이 등장합니다. 네 나라의 시험은 문제 유형도 시험을 맞이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다 다릅니다. 이런 차이는 시험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대한 각 나라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겠지요.  




좋은 시험 문제는 어떤 문제일까요? 


오늘의 대화에서는 좋은 시험문제로 나아가기위해 현재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시행되는 시험의 목적과 한계 그리고 이상적인 시험문제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비교적 최근 초중고등학교의 시험을 거친 대학생 책첵토커와 현재 교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며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 책첵토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어려워진 시험문제에 좌절하고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 책첵토커와 함께했습니다. 그 날의 질문과 대답들을 전해드립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시험들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생님 책첵토커 : 우리나라 시험은 선발과 성장의 중간 정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의 목표는 여전히 선발에 초점 맞춰져 있지만 요즘엔 교육혁신이 많이 이루어져서 학생 개개인의 교육을 하자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대학생 책첵토커 : 시험은 학생들을 줄 세우고 변별하는 목적과 성취도 자체를 평가하고자 하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제가 봐온 시험 특히 수능과 같은 경우는 변별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책첵토커 :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행평가는 수업 중에 일어나는 학생들의 성장 과정과 활동 과정 안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이해하는 지를 보기 위함인데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같은 정기고사에는 객관식 문제가 많고 채점 후에도 성취평가제에 따라 학생들을 1등급에서 9등급까지 나눕니다. 다만 최근에는 등급을 세 개 내지 다섯 개로 줄여 기존 변별의 목적을 약화하고 학생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고려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상대평가, 즉 변별의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책첵토커 : 우리나라에선 대학이 누군가의 선택이 아니라 그 후에 무엇을 하든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틀에 들어서기 위해 고등학교와 중학교 등에서도 선발이 중요시됩니다. 개인의 성장 측면이 중요함을 모두가 인지함에도 대학이라는 큰 틀이 있기 때문에 선발에 주목적이 맞춰져 있는 것이죠.  지금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암기 위주의 지필고사나 수능 시험 등을 볼 때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이게 내 삶에 어떤 배움을 주나'하는 회의를 갖는데, 대학 입학이라는 중요한 통과의례 앞에 공정성이 너무나 중시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학부모 책첵토커 : 가장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상대평가를 한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학은 가장 고등교육기관이고 소통과 학문의 전당인데, 그곳에서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를 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의 모든 시험이 변별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보여주는 창의력 교육 등을 보면 매우 선진적인데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로 대학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관문도 좁아지고 변별의 목적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학생 책첵토커 : 제가 겪은 거의 모든 시험, 초중고 포함해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험들에서 선발의 기능이 컸습니다. 다만 제가 암기를 해야 하거나 스스로 습득해야 하거나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때 그 목적이 선발이었다고 해도 도움이 되었던 적은 있어요.  '내가 이 정도를 이해하는가?'에 대한 평가가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고 '이걸 왜 공부해야 하지?'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되나'와 같은 의구심을 늘 갖게 되는 것은 문제입니다. 



선발이라는 목적이 계속 유지된다면
지금의 시험 형태를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요? 

학부모 책첵토커 : 선발의 목적이 유지되더라도 '무엇을 볼 것이냐'에 따라 평가의 형태 혹은 양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축구를 잘하는 사람을 선발할 거라면 지필평가로 축구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는 것과 실제 축구를 잘하는 역량을 보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어떤 경우는 지필평가가 아닌 수행평가만으로 선발을 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발의 목적이 현재의 암기식 평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시험도 처음 선발할 때 이루어지는 것 졸업 시에 이루어지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현재까지는 인구 등의 문제로 입학 시의 선발을 해왔습니다. 유럽 한 나라의 미술 수업에서는 학급의 아이들이 스스로 교과서를 만드는 방법으로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한 학급에 20명의 아이들이 있다면 20개의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셈이지요. 그리고 그 교과서에 대한 평가를 학생들이 서로서로 합니다. 서로의 눈높이에 가장 좋은 교과서를 만든 친구가 좋은 평가를 받는데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에 대한 평가를 누군가, 위에 있는 사람이 컨트롤의 차원에서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상적인 시험은 어떤 시험일까요? 
출처. ebs 다큐 <시험> (1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선생님 책첵토커 : 학생 개개인별로 성장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는 시험문제도 학생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한 학급당 학생의 수도 장애물이 되겠지요. 저는 현재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데, 한 해동안 혼자 가르쳐야 하는 학생의 수가 350명 정도 돕니다. 개인화된 평가를 하려면 현재 교육과정이 정해놓은 틀 내에서도 학생 개개인을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의 환경에서는 물리적으로 교사 한 명당 학생의 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대학생 책첵토커 :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바칼로레아의 경우처럼 시험 자체가 내 삶과 공부를 연결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의 한국에서는 시험을 통해 얻어지는 보상 즉 대학 입학이 너무나 중요하게 여겨지다 보니 시험 자체에 굉장한 공정성을 요구합니다. 한국에 바칼로레아가 도입된다면 촘촘한 평가기준을 마련한다 해도 지금의 수능에 비해선 채점에 대한 객관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대학의 서열화 문제를 논하지 않고서는 기존 시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책첵토커 : 주변 학교의 영어 시험이 학생들의 생각을 묻는 아주 독창적인 문제로 출제되어 주변 학원에서 대비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변 학원에서 강의식으로 대비해주기 어렵고 아이들의 생각을 묻고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시험문제가 좋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객관식 문제는 몇몇 학생들이 고민도 해보지 않고 아예 쭉 찍는 경우도 많아서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더 생각할 기회를 주기 위해 서술형 문제들을 더 비중 있게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시험 후 채점의 측면에서 채점 기준표를 아무리 촘촘히 만들어도 채점 기준표대로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채점해야 하는 학생의 수는 너무 많기 때문에 교사로서 채점의 고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시험은 학생들의 성장 과정인 사고 과정을 교사가 볼 수 있는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 책첵토커 : 좋은 문제는 수업과 평가가 괴리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업 내에서 강의식 수업보다 참여형 수업을 하고자 발표를 독려하고 조별 활동을 진행더라도 시험은 여전히 암기식, 객관식으로 수업 과정과 별개가 되어버리는 일이 잦습니다. 이렇게 수업에서 학생들이 배운 내용과 평가 내용이 연계되지 않다면 배움은 배움대로 마무리지어지지 못하고 시험은 무의미해집니다. 


학부모 책첵토커 : 평가의 방법론들이 점점 더 발전되겠지만 시험 문제가 객관식이더라도 충분히 좋은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처럼 객관식, 암기식 시험이 주가 되더라도 암기의 내용이 학생들의 실제 삶과 연관되고 암기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좋은 시험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학생 책첵토커 : 고등학교 때 국어 수업에서 '제망매가'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는데 시험문제에서 시의 모든 구절을 외워서 써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수업 목표에 따라 수업이 진행되고 그 목표를 잘 이루었는지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 되어야 하는데 수업 목표가 시를  그대로 외우는 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시험은 수업 내용과 연관되어야 하고 수업 목표를 학생이 잘 따라왔는지를 확인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서 나눈 대화에 등장한 것처럼 시험은 변별의 기능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 자체에서 어떤 내용만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글을 쓰는 능력이나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등을 배운다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출제하되 변별도 할 수 있습니다. 




출처. ebs 다큐 <시험> (1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어떤 시험문제가 좋은 문제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향한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문제의 방향에 대해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은 대화의 시간이었는데요, 이런 고민과 대화가 쌓이고 반복된다면 미래엔 학생들의 삶과 연결되는 시험문제, 수업과 괴리되지 않는 시험문제 그리고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시험문제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편집&글. 온더레코드 인턴 장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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