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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Jul 07. 2018

정의감이라는 망치를 든 청소년들

정세청세 자기인터뷰 #01. 최호용 

정세청세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인문 토론의 장입니다. 2017년까지 전국 28개 지역에서 2만 명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해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같은 큰 질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C Program은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기 힘든 질문을 고민하고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을 의미 있게 담아내는데 필요한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2017~) 정세청세를 함께 한 청소년들이 자신을 인터뷰한 글을 소개합니다. 



 나는 인간에게 ‘정의감’이라는 감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2016년 겨울, 거리에 촛불을 들고 나왔을 때, 그리고 정세청세를 하며 토론할 때나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때론 뭉클해질 때도 있다. 정의감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나의 일로 여기게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바로 이 감정과 질문이 인간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는 힘은 정의감으로 통한다.



정의감을 배우기 어려운 교육

 진정한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윤리적인 고민을 하게 하고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정의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내가 경험한 학교 교육은 내가 이런 고민을 하도록 해주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윤리나 도덕과목에는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공리주의, 칸트, 흄, 롤스’ 등 많은 도덕 이론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우지만 정작 ‘나’는 어떤 사고를 하고,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나’는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윤리적 사고를 ‘외울’ 뿐 나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찾고 세우도록 돕지 않는다. ‘나’가 중심이 되지 않는 교육은 공허할 뿐 내 삶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정세청세는 내가 중심이 되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게 해준 토론의 장이었다. 정세청세 기획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청소년은 자신이 정세청세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학교와 정세청세의 어떤 면이 다르냐고? 바로 ‘공부의 목적’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교육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축에 속한다.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어 보면, 단순히 개념과 문제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창의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이나 심화 탐구가 가능한 제시문들도 상당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 활동을 우리가 직접 접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과목을 막론하고 선생님들은 시험 진도를 맞추기에 급급해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 부분은 넘어가기 일쑤고, 우리가 국어, 영어, 수학을 배우는 이유도 시험 고득점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시험에서 한 문제라도 더 맞혔는지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일렬로 줄을 세우고 그 순위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로 인식하는 게 당연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은 ‘공부’에만 치중하지 공부의 ‘목적’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런데 정세청세에서는 다르다. 정세청세의 공부는 우리가 배움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고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배운 내용이 시험 문제가 되어 우리를 오답으로 유도하지도 않는다. 아니, 애초에 정답(正答)이 없으니 그럴 수도 없다. 각자가 내놓은 해답(解答)이 있을 뿐이다. 그 해답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하나의 정답을 확립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각자의 의견을 들어 보고, ‘이런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구나’라는 점을 깨달으면 그걸로 된 거다.
 
 우리는 기존의 학자와 사상가, 교육자들이 집대성해 둔 내용을 암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확장적인 사고로 그들의 생각을 때로는 비판하기도 하며 더욱 성장한다. 배운 내용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내용을 이해하려 기를 쓸 필요도 없다. 기존의 프레임에 국한되지 않고 내 나름대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겠는가. 정세청세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주는 능력은 남의 답을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닌, 나의 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 울산 기획팀원 이재빈(19세)


 내가 생각하는 정세청세의 매력은 내 안의 정의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나는 정세청세를 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오름을 느낀다. 정세청세에서 우리는 나의 일상과 다른 일상이 담긴 영상을 보고 다양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서로 마주 보고 대화 나누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느껴진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생각한다. 정세청세의 영상을 시청하면서 복잡해진 생각들은 토론을 통해 조금씩 해소된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던 불평등이, 다양한 삶의 모습이 실제로 나의 곁에 항상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더 나은 삶,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나아가다

 그러나 언제나 정세청세가 즐겁고, 행복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정세청세를 하다 보면 아쉽고, 후회되고,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게으른지, 상대에게 무관심한지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전국 기획팀원이 온라인에서 공부 모임을 할 때나 지역 공부 모임 때에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어휘력이 부족하여 다른 기획팀원 분들이 말씀해주시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내 그릇이 너무 작은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또, 행사를 준비하며 ‘내가 배운 내용들을 참여자분들과 모두 공유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막상 참여자분들을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꺼낼 때는 긴장해서 말도 두서없고 정리 안 된 상태로 막 한 것만 같다. 결국, 처음 준비한 것의 3분의 1도 채 내 몫을 다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자괴감이 들었다. 맨날 이런 식이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지에 대해 팀원들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2회에는 1회 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겠다. 행사 때 참가한 참여자분들이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공부에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금산 기획팀원 성예림(16세)

 

 정세청세에서 공부의 밑바탕은 반성에 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내 삶의 전반을 거쳐 고민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공부이다. 그 때문에 정세청세에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안의 모순을 발견하고 나의 행동과 이상 간의 괴리를 끊임없이 마주한다. 스스로 답이라고 내렸던 결론을 수정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세청세에서 이야기가 오가는 정의 속에는 항상 ‘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의감이라는 망치를 든 보편적 개인

 나는 ‘보편적 개인’이라는 말을 믿는다. 정세청세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통된 가치들이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불평등을 없애는 것’과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 생명을 보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두 가지 가치는 절대 당연하지 않다.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러한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그 힘든 여정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의 강요도 주입된 생각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본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가장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이 “왜 정세청세를 하나요?”였다. 이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명쾌하게 할 수 있다. 정세청세는 우리가 ‘정의감이라는 망치를 든 청소년’임을 일깨워준다. 정의로운 사회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사고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공부는 나의 경험과 하나가 되어 나의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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