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유일한 숨통이던 시기가 있었다. 현실의 틀 속에 나를 태워가며 하루 하루 떠날 날만을 고대하던 그 시절. 매년 새로운 목적지가 내 마음에 영접되었고 난 빙의라도 된 듯 그 곳에 있는 나를 상상하고, 마음의 진동을 일으키며 현실의 속박을 희석시키던 날들.
2017년 그 당시 시베리아가 나에게 손짓하던 해였다. 나는 어떤 거부의 몸짓 없이 짜릿한 두근거림으로 온통 채색이 될 즈음. 인 아웃 비행기 표만 끊고 훌쩍 날아갔다.
그곳에서 어마 무시한 인종차별로 인한 살해 뉴스가 헤드라인에 걸쳐있던 시기여서 떠나기 전, 살짝 겁이 나긴 했다.
죽기밖에 더하겠나 싶고, ‘난 행운이 따를거야’ 라는 맹목적인 주문을 외며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일종의 여행할 때 강해지는 나만의 기복신앙이다.
초심자의 행운이었던지.
설국열차의 꼬리 칸 같은 열차 안, 10일간의 숙식은 온기어린 온돌방 같았다. 작고 귀여운(?) 꾀죄죄하기 까지 한 동양인 여자가 영어도 도통 통하지 않는 열차 안에서 그들의 무심한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꼬리 칸 열차를 탈 정도면 그들은 서민이다. 표정에 삶의 애환과 온정이 그득 스며있다.
차 창밖은 추위에 잔득 얼어붙은 허연 자작나무만이 내 입김 속에 복사 붙여넣기 하듯 창문에 연이어 그려진다. 자작나무의 번식력이 이리도 좋은 건가 싶었다. 시베리아 온 땅이 자작자작하다. 자연스레 나의 시선은 차창 안으로 향했고 하릴없이 열차 칸을 마실 가듯 왔다 갔다하며 곁눈질로 사람구경을 시작했다.
직감적인 촉으로 나와 눈 마주치면 바로 정색하며 눈을 피하던 북조선 동무들, 열차 안에서도 시간마다 돗자리 펴고 절을 하던 무슬림 아재들, 온 팔에 문신을 한 퇴역 군인의 긴장된 눈 빛, 나의 과자를 허락 없이 주워 먹고 러시아말을 알려주던 귀여운 꼬마아이들. 그리고 나에게 하염없는 친절을 베풀었던 나와 같은 칸을 사용했던 러시아 친구들.
다 쓰바씨바다.(러시말로 고맙다는 말)
하루 24시간을 붙어있는 승객들이 저마다의 도착지에 내리는 날들이 다가오면 그 날은 자다가도 깨서 배웅을 해주고 작은 환송식을 거행했다.
‘여행은 만남이 있어 설레고 다시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 있기에 아프고 시리다.
그 순간을 영원한 기억 속에 저장시키고 꺼내 볼 뿐이다.’
꽁꽁 언 알혼 섬에 가겠다고 중간에 내가 내릴 때에도 새벽 4시에 girl이 혼자 역에 가는 건 안 된다고 털모자 쓴 언니가 말렸다. 그때 내 나이 서른 후반이다. girl이라니! 쓰바씨바가 절로 나왔다. 열차 안 주민들이 합심하여 그 곳의 지인들을 수소문해서 택시를 잡아주고 그 새벽에 숙소까지 예약해주는 수고를 해주어서 어리바리 무대뽀는 그들의 선심 덕분에 무사하게 마음을 안착할 수 있었다. 영하 40~5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었지만 그토록 마음이 데일정도로 뜨뜻할 수 가 없다.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하던 날에 인상 푸근한 빵모자를 쓴 시골 할아버지를 만났다. 같은 칸에 있었지만, 우리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에 맞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호기심어린 눈빛과 오며가며 미소로 인사한 날들이 4일이 넘어설 즈음 서로의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언어적인 소통의 힘이다. 그리고 옆 사람의 핸드폰 번역어플로 간단한 이야기 해볼 수 있었다. 동쪽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그 할아버지는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농업관련 포럼에 참석한다고 한다. 그것도 초행길이라고. 다행히 나와 목적지가 같아 동지를 얻은 기분이었다.
새벽5시가 못되는 시간에 도착하는 기차여서 택시를 탈지, 첫 지하철 시간까지 기다릴지 고민하던 차에 아는 사람이 생겨 안심이 되었다.
난 한 달여간의 배낭여행이었기에 배낭가방과 캐리어에 두둑히 짐을 밀어 넣어 챙겨왔었다.
새벽에 도착하자마자 시골 할아버지는 내 캐리어를 번쩍 들고 앞장서 역 안으로 갔다.
뒤따르는 나는 무섭기도 하고 언제 치고 빠지나 계산을 돌리고 있었다.
타인의 선심에 뒷걸음질 치는 나였다.
택시를 혼자 타려고 인사하려는 나를 할아버지가 말렸다. 비싸고 여자 혼자는 위험하다고 한다.
그렇게 첫 지하철이 개통되는 시간까지 그 넓은 지하철을 왔다리 갔다리 했다. 모스크바 역은 어찌나 크던지, 그리고 죄다 러시아말이어서 초행길이라 헤매는 그 할아버지라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할아버지가 헤매고 헤매 겨우 지하철을 탔는데 어먼 곳에 내린 것인가.
그 깜깜하고 꽁꽁 얼어붙은 빙판길을 한 시간 넘게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나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이국적인 새벽녘 정취에 취해 뒤따라가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할아버지는 보자기 들 듯 번쩍 든 나의 캐리어를 단 한 번도 땅에 내리지 않은 체 앞장서 걸어갔다. 흡사 뒤에서 보면 ‘좀머 씨 아저씨’ 같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속의 주인공)
너무 고맙고 미안하여 보답하고자 짐을 숙소에 두고 밝은 아침에 식사를 같이 하자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 시골 할아버지는 안전하게 짐을 숙소에 넣어주고는 내가 체크인을 하는 사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나는 아무런 보답을 못한 체 말이다.
너무 면목 없고 감사해서 지하에 있는 어두침침한 방에서 한동안 멍했다.
부담을 주기 싫었을 테고, 자신의 일정이 있는 곳으로 가야했기에 친절만 베풀고 떠나갔으리라.
러시아 할아버지 하면 의례히 떠오르는 강하고 무서운 이미지에 대한 편견이 와장창 깨지던 그 날.
여행 중이라 풍경에 마음이 빼앗겨 마냥 좋았던 날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도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감사하다. 그 푸근한 미소와 뒷모습은 평생 내 안에 살아 숨 쉴 듯.
그 할아버지로 인해 그 나라에 대한 나의 기억의 이미지는 한 순간에 다르게 조각되었다.
따뜻한 우연을 간직한 채로 나도 타인에게 기꺼이 손 내밀 수 있는 멋짐이 번지고 자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