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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혼자 지하철도 잘타."

일상의 한마디. 01

 


어둠에는 무게가 있는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냥 가벼워야할 퇴근길 발걸음이 이리도 지칠 수 있나. 회사 건물을 빙글 돌아나와 지하철 입구로 향했다. 지하철 입구는 만나야 할 사람들을 기다리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다. 설레임을 안고 두리번거리거나, 뿌듯한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힐끗이거나 이미 성사된 반가운 만남에 소란스런 인사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같은 어둠아래에서도 따스한 에너지를 방방 쏘아대는 사람들 사이를 무심히 비집고 들어갔다. 모두 이 거리를 비추려 빛을 뿜어대고 있는데 나 혼자만 전기가 나가버린채 꺼져 있는 가로등 같았다.


 별 생각 없이 꺼내든 핸드폰 화면 속을 들여다 보며 한계단, 또 한계단을 내려 걷는길. 나에게는 무의미한 광고들과, 웃기지 않은 웃긴 이야기들,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열두번은 더 본것 같은 화장품 리뷰, 그 사이에서


"이제 혼자 지하철도 잘타." 


 해외로 여행을 떠난 친구의 SNS 에 뿌듯하니 올라온 문장이 있었다. 대수로울것 없는일이 대수로워 지는 여정, 사실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시간, 그래서 사람들은 지칠 때 이곳을 떠나나 보다. 혼자 버스를 탄다거나 시장에가서 가격을 흥정한다거나 오늘 밤 잘곳을 찾아가는, 그 소소한 것들로도 잘했다, 스스로 격려해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때때로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필요해서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환승이 빠른칸의 문을 버릇처럼 찾아 걷다가 문득 안전 문 위로 흐르듯 비치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헐. 저 안쓰러운 모습의 아가씨가 내 모습이라니. 아마도 그 친구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사실 나에게도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너도 혼자 지하철 잘타.'


 누가 들었다면 미쳤다고 할까봐서 속으로 중얼거린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 역시 지쳐있었지만, 나는 이곳을 지켜야 했다. 어디론가 떠나는 대신, 떠나온척 떠올려본 한마디에 볼에는 발그레한 빛이 돌았다. 


'지하철만 잘타니? 너는 오늘 출근도 누구보다 빨리했고, 정말 일도 잘했어.

마감 기한도 모두 맞췄고, 손님이 고맙다고 했던거 기억하지?

그만큼 열심히 했어. 나는 알아.'


 사실 다른 날들과 크게 다를바 없는 하루였지만, 그렇다고 소홀했던 하루는 아니였다. 모든 날들에 열심이었을 뿐이지. 언제부턴가 진이 빠지도록 일한 뿌듯하고 대견한 하루가 너무나 당연한 하루가 되어 있었다. 한마디에 보태 건넨 스스로를 향한 격려에 맞은편에 비춰진 아가씨는 다행히 생기를 되찾는 듯 했다. 


"따다따다따안~따다따다단~따따따따딴 따라단 딴!다안!"


 트럼펫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멀리서부터 지하철이 밀려 들어왔다. 


 정신을 토닥였다면 육체를 토닥여줄 마지막 한방이 필요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김밥천국에 들렸다. 그곳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있었는데, 김밥에 쫄면 돈가스까지 푸짐히 나오는 스페셜 돈가스였다. 매콤한 쫄면으로 달달한 돈가스를 빙빙 감싸안을 생각에 혀 끝부터 설레였다. 검은 봉지에 한가득 포장된 스페셜 돈가스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하얀 일회용기를 묶어둔 노란 고무줄을 팅팅 풀어내고 하나하나 꺼내어 상을 가득 메웠다. 김밥의 참기름 냄새가 솔솔 방 안에 퍼져나갔다. 그렇게 집은 천국이 되었다. 


 어둠에는 무게가 있는게 분명하다. 

그만큼의 확신으로, 당신 안에 빛이 있는것 역시 분명하다.

다만 당신은 거리의 가로등과는 조금 달라서 

진실어린 격려, 맛있는 음식으로도 

반짝반짝 제 빛을 찾는다. 


사실 그 원리란 가로등 보다 단순하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그런 단순한 당신이, 우리가 좋다.


#당신의 불을 밝혀주는 한마디,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글 . 이지은 www.facebook.com/12comma

사진 . 김송미 www.facebook.com/songm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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