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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면서 살고 싶어요?"

일상의 한마디 . 03


 "뭐하면서 살고 싶어요?"


 이 나이쯤 되면 더이상 들을리 없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일 줄 알았다. 새로운 일을 앞둔 누군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계획을 들려주던 끝에 나에게 물었다.


 "음... 모르겠어요." 


 나는 요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른이 되면 아는게 많아질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게 너무 많았다. 그런 대답 앞에는 늘 그럴리 없다는 듯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정말 모르는게 많은건 나뿐인가 싶기도 했다.


 문득 얼마전에 그렸던 그림 한장이 떠올랐다. 


 직접 그린 그림으로 핸드폰 케이스를 만드는 강의를 들었던 때였다. 강사분께서는 종이를 한장씩 나눠주시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그려보라고 했다. 좋아하는 것들이 가장 예쁘게 그려지는 거라며.


 나는 따끈따끈해 보이는 밝은 빛의 바닥 위로

두꺼운 솜이불 가운데 빼꼼히 고개를 내민 여자애를 그렸다.


그 옆에는 호떡 한봉지, 귤 한바구니를,

몇권의 널부러진 책과 

그 사이에서 잠 들어있는 우리집 멍멍이를,

별이 있는 밤하늘과 그 하늘이 보이는 창문을 그렸다.


 한참을 이것저것 그리다 이거면 되었다 싶을때쯤 내가 그린 그림들을 들여다 봤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몽땅 그려넣었는데도 손바닥만한 종이가 여유로웠다. 


 그에게 대답했다.


 "아, 저는 겨울에는 솜이불 아래서 책 읽는 여유 정도는 주어지는 일을 하면서

봄에는 꽃무늬 원피스가 예쁘게 어울리도록 자신을 가꾸면서

여름에는 한강에서 치킨과 맥주를 뜯고 맛볼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가을에는 깜깜한 밤바다를 찾아가 나눌 이야기를 가족들과 만들어 가면서


그러면서 살고 싶어요."


  대단한 대답일랑 좀 모르면 어때.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정도는,

그리고 사실은 그것들이 자신의 일상에 보란듯이 함께 하고 있단걸 

알고 있다면.



글 . 이지은 www.facebook.com/12comma

사진 . 김송미 www.facebook.com/songm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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