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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물 한컵 마시고 일혀"

일상의 한마디. 02

"8년차 직장인에게도 흘릴 눈물이 남았을 줄이야."

"대박! 너 벌써 8년차야?"

"그래~ 우리가 벌써 그렇게 나이를 먹었단다 친구야~"

"시간 정말 빠르다, 그런데 왜 울었어? 누가 괴롭혀?"

"야야 내 얘기를 좀 들어봐봐."


 주말이었어. 이 아름다운 봄날에 나는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지. 우리 병원에서는 1층에서 접수를 먼저 하시면 어느층에서 진료를 받으실지 그 다음에 안내를 받는단 말야?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예약도 접수도 없이 바로 내가 있는 2층으로 올라오신거야. 그래서 나는 안내를 드렸지.


"접수 먼저 하셔야 하는데, 여기는 진료 받으시는 층이세요."


 그때까지는 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조차 할 수 없었어.


"잠시만요, 제가 전화 넣어 드릴게요. 2층에 환자분 접수먼저 하셔야 하는데 진료층에 와 계세요. 내려가시면 접수 도와드리세요."


 그리고 시작되었지.


 "야!!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냥 니가 좀 해주면 되지! 

내가 니 앞에 이렇게 서있는데 잘못한 사람 취급을 해?!"


 순식간이었어. 


"너 같은 것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모양인거야!!"


 난 졸지에 나라까지 책임져야 했지. 너무 놀래서 그 이후로는 무슨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억도 안나.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알지도 묻지도 못한채,


"죄송합니다."


 죄송해야 했다니까? 아주머니의 고함과 내 죄송합니다가 두세번 오간 끝에 다른 분들이 간신히 아주머니를 진정시켜서 데리고 접수층으로 내려갔어. 이래뵈도 8년차잖아? 자리에 앉아서 한숨 길게 내쉬고 마음을 다잡았어. 그래, 이정도야 뭐, 괜찮아, 괜찮을 수 있어- 하면서.


"탁"


 누군가 내가 있는 데스크에 뭔가를 탁 하고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어. 이번에는 또 무슨일일까. 아니, 무슨일이면 어떠랴- 하는 삐뚤어진 마음이 들었어. 고개를 들어보니 주름이 자글한 할머니께서 날 바라보고 계시더라구. 데스크에는 물이 담긴 컵이 한잔 올려져 있었고.


"아가씨 하루 다 망치겄네~ 자, 물 한컵 마시고 일혀. 잘 참았어, 수고했어!"

 


 그런거 있잖아, 누군가 토닥토닥 달래주거든 괜시리 더 서러워지는거.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컵을 받아 들었는데 꺼이꺼이 울음이 나는거야. 

물한모금 제대로 삼키질 못했다니까?


 나는 내가 이제 꽤나 어른이 되어서

그런일 정도에는 아프지 않고 서럽지 않아서 울지 않는줄 알았거든?

근데 그런게 어딨어, 그저 담아두고 참아 두었던거지.


 너네 말야, 혹시 이런 광경을 목격하걸랑 

꼭 물 한컵 건네줄줄 아는 사람이 되기다?

서럽고 슬프고 아픈 마음 토닥이는데는

그 한컵의 물로 충분할테니까.

아이참, 정말 그거면 되더라니까?

 

글 . 이지은 www.facebook.com/12comma

사진 . 김송미 www.facebook.com/songm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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