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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
어떤 음악을 듣고 싶어?"

일상의 한마디 .06

 

 새벽이 적당히 무르익은 술자리였다. 진부한 술게임도, 몇번이나 반복한 이야기들도 지루해져 갈 무렵 무리 중 한명이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어 테이블 가운데에 올렸다.


 “지금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고 쳐.

삶의 마지막 순간, 딱 한 곡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5분 가량이 주어진거야.

그때 어떤 음악을 듣고 싶어?”



 그가 먼저 자신의 답이라며 Verve 의 BitterSweet Symphony 를선곡했다. 


 무엇인가 시작될 것만 같은 설레임을 주는 몽환적인 도입부, 밝고 웅장한 느낌의 멜로디, 그러나 뜻밖에도 가사는 냉소적이었다. 삶을 달콤하지만 쓰디쓴 교향곡이라 노래하고 있었는데 현실의 틀 안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차갑게 서술되어 있었다. 나는 음악도, 이런 장르는 더욱이 잘 모르지만 하나의 곡은 가사에 쓰여진 메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곡 역시 노래하는 사람과 멜로디, 가사가 모두 어루어져 또 다른 메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란 그래, 너도 알다시피 그런 곳이야. 삶은 달콤하다기 보다는 씁쓸하지. 

그런데 그래서 뭐? 슬플것도 나쁠것도 없이 그게 삶이야. 너도 나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


 쓰디쓴 삶에 그저 좌절하기 보다는, 이런 메세지를 시크하게 전하려던 것 같던 곡. 그의 설명도 비슷했다. 아둥바둥 열심히 살고 있지만 꿈꾸는 모든것을 이룰 수 없는 현실, 그 앞에서 너만 그런게 아니야 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던 곡이랬다. 그래서 죽기전에 밀려든 온갖 잡념과 후회들을 모두 받아들여 인정하고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했다.


 그가 선곡한 음악이 긴 여운과 함께 끝을 맺었다. 


 다른 누군가는 이루지못한 사랑의 노래를, 어떤 이는 밝고 경쾌한 리듬의 곡으로 선곡을 이어 나갔다. 모두 제각각의 사연이 있었는데 한 곡의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그들의 삶의 모습, 인생관이 보이는 듯 흥미로웠다.


 그리고 돌아온 내 차례.





 내가 선곡했던 음악은 '섬집 아기'. 


 모두가 와하하 웃었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 그 상황을 상상했을 때 떠오르는 음악이 그것 뿐이었다. '섬집 아기'는 어린 시절, 엄마가 동생을 재우기 위해 가만가만 불러주시던 노래였다.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멀쩡하다가도 하품이 나고 동생 대신 내가 먼저 단잠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죽음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내가 사라져가는 순간에도 삶이며, 꿈이며, 사랑에 대한 온갖 미련에 죽는다는게 너무나도 무서울 것 같다. 그때 엄마의 자장가가 들려온다면, 등을 토닥이던 손길이 떠오른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그보다 안전한 곳은 없었던 그녀 곁에서 달게 잠이 들던 때처럼 조금은 편안하게 세상을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치 죽음이 죽음인줄 모르는 아이처럼.




당신에게는 어떤 곡일까?

삶의 마지막 순간, 듣고 싶은 한곡의 음악.




글 . 이지은 www.facebook.com/12comma

사진 . 김송미 www.facebook.com/songm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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