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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자"

일상의 한마디 .05


 나는 내 어린 시절 사진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마다 금빛 테두리의 안경을 코 끝에 걸치고 있는데다가 엄마가 씌워놓은 바가지 머리에 못난 남자아이가 따로 없다. 스스로도 남자아이라 생각했는지 집순이로 살아가는 지금과 다르게 밖에서 활동적으로 뛰어노는걸 참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 살았던 5층짜리 빌라에는 작은 앞마당이 하나 있었다. 지하까지 열두집이 살고 있던 이 빌라 아이들은 운이 좋게도 대부분 또래여서, 다같이 그 앞마당에서 자전거도 타고, 땅따먹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했다. 어찌나 뛰어 놀았는지 아직까지도 옆구리와 무릎에는 그때 그 곳에서 다친 상처들이 흉이 되어 남아있을 정도다. 


 유일하게 두발 자전거를 탈줄 아는 꼭대기층 형제들은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아랫층에 사는 꼬마가 찌그덕 거리는 세발 자전거를 꺼내와 그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바퀴가 네개 달린 스케이트를 신고 꼬마의 뒤를 바짝 쫒던 참이다. 땅과 플라스틱 바퀴가 마주쳐 촥촥 멋진 소리가 났다. 노는걸 좋아했을 뿐 운동신경은 제로였던지라 늘 뒤쳐졌지만 달리는 폼과 효과음만은 일등이다.  


 " 밥먹자! 들어와라~"


 엄마의 이 한마디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과도 같았다.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는 이미 진 후다. 한낮의 땀을 파랗게 물든 바람이 이제막 식혀주는 참인데, 사실 놀기에 이 시간만큼 쾌적한 시간도 없는데 늘 딱 이때쯤 휘슬은 울렸다. 


"알겠어요!!"


 대답만큼은 우렁찼지만 달리기는 멈추지 않다가, 


"들어와~!"


 두번째 경고도 네에네에 넘기다가, 


 "안먹을거면 다 치운다!!"


 엄마의 협박이 시작되고 나서야 아쉬움 탓인지 스케이트 탓인지 무거운 다리를 끙차끙차 옮기곤 했다.         


 생선 구이가 있던 날도 있었고, 촉촉한 계란말이에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있던 날도 있었다. 소세지볶음에 멸치와 시금치가 올라왔던 상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밥 냄새. 그때는 그 상이 그리워질줄 몰랐다. 세일러문을 보겠다느니, 꾸러기 수비대를 보겠다느니 하며 먹는둥 마는둥 얼른 해치운채 텔레비젼 앞으로 달려가기 바빴으니까.


 주말하루를 짧게 집에서 보낸채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딸에게 엄마는 또 김치며 곰국이며 반찬들을 바리바리 들려 보내주셨다. 그만줘, 무거워~ 투덜댔으면서 막상 들고오고 나니 든든해진 냉장고. 작은 상위에 엄마의 반찬들을 늘어놓으니 어제 보고 온 엄마가 오늘 또 그립다.


 "밥먹자!"


  저녁하늘에 스며들던 목소리가 있었다. 건방진 꼬맹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참 고마운 시간들이 있었다. 조만간에는 꼭 내가 우리 엄마 상을 차려드려야지. 꽤나 미식가인 우리엄마라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외쳐야지.


 "엄마, 밥먹자!"




글 . 이지은 www.facebook.com/12comma

사진 . 김송미 www.facebook.com/songm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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